[공연리뷰] 트로이전쟁 소재 창작오페라 ‘인형의 신전’
[공연리뷰] 트로이전쟁 소재 창작오페라 ‘인형의 신전’
  • 권지연 기자
  • 승인 2019.03.12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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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경제신문 권지연 기자] ‘트로이전쟁’ 이야기를 재해석한 창작 오페라 ‘인형의 신전’이 관객들의 호응속에 성황리에 막을 내린 후 재공연 여부에 관심이 쓸리고 있다. 

구로아트밸리예술극장에서 지난 8일과 9일 양일간 올려진 영산오페라단(단장 조용찬)의 이번 작품은 ‘2018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신작’ 창작 오페라 부문에 선정된 오페라로 이목을 끌었다. 

서양 역사와 문학의 출발점이라 여겨질 만큼 신화적 요소를 갖고 있는 트로이전쟁을 재해석한 ‘인형의 신전’은 감당할 수 없는 상실 앞에 선 인간의 슬픔을 표현하는데 집중했다. 

그리스 왕 메넬라우스의 형이자 총사령관인 아가멤논,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딸 카산드라, 트로이의 장수 아이네아스의 이야기를 통해 극단적인 상실 앞에 처한 인간의 모습을 처절하게 그려냈다는 평을 얻고 있다. 

오페라 '인형의 신전' (출처=영산오페라단)

◇인간의 해결되지 않는 갈등을 다룬 이야기... 트로이전쟁 

서구사회에서 인간의 갈등을 다룬 가장 유명한 이야기로 거론되는 트로이 전쟁을 둘러싼 여러 가지 전설이 내려온다. 인간뿐 아니라 신들의 불화와 갈등이 뒤섞인 트로이전쟁은 기원전 850~800년경 문학작품 속 신화적 이야기로 간주돼 왔으나  하인리히 슐리만이 1870년부터 트로이 유적지를 발굴함으로써 두 나라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는 역사적인 근거를 얻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궁금증을 남긴 트로이전쟁은 그간 영화의 소재로 사용돼 오기도 했다. ‘인형의 신전’은 이 복잡한 이야기를 단순화해 한 가지 주제에 집중했다. 바로 ‘상실’이다. 

◇공들여 쌓아올린 탑을 다시 깎아 만든 공연 

아가멤논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랑하는 딸 이피게이나를 신에게 재물로 바친다. 트로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거대한 목마를 만드는 아가멤논은 전쟁은 승리로 이끌지만 딸을 상실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거짓 예언으로 모든 것을 잃은 카산드라를 자신의 딸로 착각해 고향으로 데려간다. 아가멤논의 아내 클뤼타이메스트라는 카산드라를 아가멤논의 첩으로 생각하고 이 두 명을 모두 죽인다. 죽음을 통해 아가멤논은 오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카산드라는 신이 허락한 자유를 깨닫게 된다. 

이처럼 주인공 아가멤논과 카산드라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현실을 왜곡하거나 외면하고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인형의 신전’은 주인공들의 비장함으로 점철된 슬픔을 무대에서 살풀이하듯 풀어내고 있다. 공연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주인공은 두 명 뿐이지만 슬픔의 무게는 수십, 수백 배로 무겁게 느껴진다. 그만큼 처절하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고통이 그렇듯. 

신영선 작가가 2011년 소명의 상실을 경험하며 써낸 대본에 김천옥 작곡가가 곡을 얹으면 작가가 다시 수정하고, 지휘자가 다듬는 매우 복잡한 과정과 고도의 노동력이 함축돼 있으나 결코 번잡스럽지 않다. 어두운 무대 구성은 단순 명료하게 각자의 내면에 묻어 두언던 상실과 슬픔, 왜곡하거나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을 돌아보도록 돕는다. 한국 음악의 승무와 그리스 리듬의 결합으로 동서양의 감정 선을 아우르는데 만족스런 결과를 얻었다. 

오페라 '인형의 신전' (출처=영산오페라단)

◇위로하지 않는 위로 

스토리의 극적 구성에 주연들의 높은 음악적 기량이 더해지면서 후반부로 갈수록 관객의 몰입도를 높여갔다. 공연은 깊은 상실 앞에 선 인간을 섣불리 위로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죽어야만 끝나는 슬픔의 끝을 함께 체험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신영선 작가는 “이 작품을 보고 속이 후련했으면 좋겠다. 그래 ‘이런 감정이 있지’.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이라는 것이 있지’ 라는 것을 함께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면서 “감당할 수 없는 상실 앞에 선 누군가에게 아픔을 강요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저 슬픔을 표현하고 대화하는 것. 그것이 인간 공동체라면 해야 할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인형의 신전’은 시종일관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며 관객들의 심리를 파고든다. 

“당신의 모든 것이 사라진 후에 남는 것이 무엇인가” 

이는 왜곡, 자기도취 또는 현실부정과 도피 등에 빠져 진실을 바로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도전의 메시지로도 들린다.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 고통, 갈등이 죽음 앞에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깨닫게 하고, 자신이 자랑하던 모든 것을 던져버릴 때 비로소 ‘자유’를 맛보게 된다는 희망을 역설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로 하여금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린 우상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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