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숙 의원 “은행권 휴먼예금 제 주머닛돈 잡수익 처리 방지 법 개정 불가피”

시중 금융권의 휴먼예금은 지난해 9월 이른바 '휴먼예금법'으로 불리는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서민금융 지원자금으로 활용하기 위해 서민금융진흥원으로 출연되도록 규정하고 있다.(사진=KBS 보도화면 캡처)

[소비자경제=고동석 기자] 2008년 이후 지난 10년간 금융당국의 무관심으로 서민금융 지원 자금으로 사용돼야 할 9313억원이 시중 금융권의 배만 불려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휴면예금법’은 2008년부터 시행됐다가 지난해 9월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로 전면 개정돼 적용되고 있다.

금융권은 이 법률안에 따라 금융소비자가 청구하지 않은 휴면예금을 서민금융 지원자금으로 서민금융진흥원에 전액 출연해야 한다. 금융소비자가 인출하지 않은 휴먼예금 중에는 미청구 자기앞수표 금액도 포함돼 있다.

금융권은 2008년 이후 2016년까지 모두 4538억원을 휴면예금관리재단(현재 서민금융진흥원)으로 출연했다. 그러나 2013년부터 출연 금액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2012년 8월 대법원이 ‘정기적으로 이자가 지급되는 예금은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한 이후 시중은행들이 서민금융진흥원에 넘긴 600억원 이상의 휴먼예금을 대폭 줄여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 동안 겨우 7억원을 출연하는데 그쳤다.

이렇게 큰 폭으로 휴먼예금 출연금이 감소한 데에는 시중 금융권이 휴먼예금을 자기 잇속으로 챙기는 꼼수가 숨어 있었다.

◆금융권 잡수익 포함된 장기 미처리 자기앞수표 기존 휴면예금의 1.75배

문제는 은행권이 2008년도부터 2016년까지 잡수익으로 처리한 장기 미청구 자기앞수표 금액이 무려 7936억원에 달한다는 데 있다. 이는 같은 기간 은행권이 휴면예금관리재단에 출연한 4538억 원의 1.75배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당연히 휴면예금으로 출연해야 할 돈이 자체 수익으로 처리돼 왔다.

국민의당 박선숙 의원실에 따르면 은행권이 휴먼예금으로 분류되는 ‘미청구 자기앞수표’ 금액을 잡수익 처리한 규모는 KB국민은행이 2372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한국산업은행이 4억원으로 가장 적은 것으로 파악됐다. 시중은행과 지방은행까지 포함해 전체 은행권은 7936억원, 지역 농협과 수협은 1376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기앞수표의 경우 이자가 지급되지 않는 예금이기 때문에 대법원 지난 2012년 “정기적으로 이자가 지급되는 예금은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에는 해당되지 않은 휴먼예금이다.

그런데도 은행권은 서민금융진흥원으로 출연해야 할 자기앞수표 장기 미청구 금액 약 5500억 원을 자신들의 잡수익으로 처리해온 것이다.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과 신용협동조합도 자기앞수표를 발행하고 있지만 휴먼예금의 소멸시효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잡수익 처리 금액이 없다. 새마을금고는 소멸시효가 있지만 미청구된 자기앞수표가 없는 상태다. 우정사업본부 역시 소멸시효가 10년인 약 17억원의 미청구 자기앞수표 금액이 있지만, 규정에 따라 모두 국고로 귀속됐다.

◆서민금융진흥원 출연 휴먼예금 누락 방지 법 개정 예고

이처럼 금융권이 휴먼예금을 주머닛돈처럼 활용하고 있는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회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은행권과 금융회사들은 현행 수표법이 규정하고 있는 발행 후 지급제시 기간을 10일 이내로 규정돼 있음에도 시효가 지나도 해당 금액을 지불해 온 것은 물론, 발행 후 5년이 지난 장기 미청구 자기앞수표는 ‘시효가 소멸된 예금’으로 분류해 잡수익으로 처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형태로 그간 장기 미청구 자기앞수표 금액을 자신들의 잡수익으로 처리해 온 것이다.

여기에다 자기앞수표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발행수수료와 자금 운용수익을 별도로 거둬들이고 있다. 운용수익은 ‘별단예금’ 예치시점부터 결제시점까지 얻을 수 있는 자금운용 이익을 말하는 것으로 금융감독원 제출 자료에 따르면 각 은행이 발행한 자기앞수표의 지급결제 기간은 2016년도 기준 평균 20일이다.

이렇게 보면 자기앞수표를 발행한 은행은 기본적으로 20일 동안 자금운용 수익을 얻는 셈인데도 자기앞수표 중 지급 결제되지 않은 장기 미청구 자기앞수표를 자신들의 보유 자금으로 분류해 5년간 수익을 올려왔다.

박선숙 의원은 은행권과 금융회사들의 편법적인 자금 운영에 대해 “은행은 금리가 없는 자기앞수표를 발행하고, 이미 5년간 이자 수익을 얻었다. 그런데도 장기 미청구 자기앞수표 금원을 은행 등의 자체수익으로 처리하는 것은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의 취지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금융당국의 무관심으로 서민금융에 지원할 수 있던 연간 2천억 원, 총 9천300억 원이 금융회사의 주머니에 들어가 있다”며 “법의 취지에 동의하고 휴면예금 출연 협약을 체결한 은행들은 협약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이제라도 자기앞수표 장기 미청구 금액을 서민금융진흥원에 출연해야 한다. 금융당국도 앞으로 연간 2천억 원이 재원으로 추가되는 만큼 서민금융 지원 사업에 대한 적극적인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박 의원은 “지금까지 장기 미청구 자기앞수표 금액이 서민금융진흥원에 출연 과정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출연대상 ‘예금’을, ‘예금자보호법에 따른 예금자 보호대상 예금’으로 좀 더 명료하게 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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