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 경험한 청소년 47.3% … 피임 경험 無

[소비자경제=이수민 기자]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낙태율 1위를 기록할 정도로 피임 실천율이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낙태율은 한 해 35만 건에 달하지만 콘돔 사용률은 '꼴찌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피임 후진국인 셈이다.
성관계를 경험한 청소년의 47.3%는 피임을 거의 안 하거나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14년 조사한 19세 미만 청소년 분만, 유산 통계에 따르면 분만 인원은 1,891명, 유산 인원은 338명으로 조사 기간 내 청소년 2,229명이 임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 만 19세 이상은 사용할 수 없는 ‘콘돔 자판기’
사회적 기업 인스팅터스는 서울 신논현과 이태원, 광주 충장로와 충남 홍성 등 총 4곳에 청소년 전용 콘돔자판기를 설치했다.
앞서 해당 기업은 청소년이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무료로 매달 2개씩 콘돔을 보내주는 ‘프렌치 레터’ 프로젝트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관계자는 “청소년의 콘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자판기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인스팅터스 박진아 대표는 “콘돔을 부끄러워하는 우리의 잘못된 인식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장애물”이라며 “안전한 사랑을 위해서는 피임이 누구에게나 당연한 권리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 해당 자판기가 설치된 전남 광주광역시 성인용품 숍 ‘스팟라이트’의 경우 하루에도 20여 명의 청소년들이 콘돔을 구매하기 위해 방문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청소년의 성(性)’,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현실
청소년 전용 콘돔 판매기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취객에게 발로 차여 판매기가 망가지거나 양심 없는 성인들이 몰래 구매하는 등 적잖은 수모를 겪고 있다. 자칫 청소년들에게 무분별한 성관계를 권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인스팅터스 측은 “청소년의 성을 덮어놓고만 반대할 것이 아니라 해외 선진국의 사례처럼 피임기구의 사용을 적극 권장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청소년의 성관계를 무조건 제지할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안전한 성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성인들이 나서 돕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청소년보호법에 따르면, 돌출형 콘돔, 사정지연형 콘돔 등 일부 특수 콘돔을 제외하면 청소년도 콘돔을 구매할 수 있다. 법적으로 청소년도 구매할 권리가 보장된 것이다. 하지만 폐쇄적인 성문화의 영향으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콘돔을 술, 담배와 같은 성인용품이라 생각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 청소년들의 ‘피임권’은 보장받지 못한다. 피임도구를 살 법적 권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거나 판매거부를 당한다. 인터넷에서 콘돔을 검색하면 성인키워드로 분류되어 성인인증 없이 정보조차 얻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간 10대의 성(性)은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쉬쉬하며’ 외면해온 것이 현실이다. 청소년의 콘돔 구매가 법과 무관하게 불법으로 비치며, 당사자는 문란하고 방종한 일탈 학생으로 규정당하기 쉽다.
서울시 청소년의 7.4%는 성관계 경험 있으며, 그 중 10.5%는 임신을 했다. 중학생의 1.2%, 고등학생 및 특수집단 청소년의 12.9%가 성관계를 경험했으며, 처음 성관계 가진 나이는 ‘중3’이 26.8%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초등학생의 60.5%, 중학생의 51.8%는 성교육 시간을 통해 성지식을 습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교육에 대한 학교의 책임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성교육은 이러한 실정에 맞지 않는다. 분명히 존재하는 청소년의 성(性)을 외면하고 방치해 성병, 임신과 같은 부작용을 막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안전하게 사랑할 권리가 있다?
“누구나 안전하게 사랑할 권리가 있다”는 앞서 소개한 ‘인스팅터스’의 목표이기도 하다. ‘누구나’는 편견으로 인해 콘돔을 구매가 어려운 청소년, 성(性)에서 격리되거나 억압받았던 여성, 성소수자 모두를 포함한다.
하지만 청소년용 콘돔 자판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성교육 시간에 피임법을 가르치면 청소년들에게 성관계를 권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 위청희 사무국장은 “청소년들이 불완전하다고 해서 분별없이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콘돔 구매하는 불편함을 덜어주고 ‘성’에 대해 스스로 고민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위 국장은 “성교육을 통해 콘돔을 구매할 권리를 배워도 실제로는 구매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청소년 콘돔 판매기를 청소년이 많이 활용했으면 좋겠다. 이번 콘돔 자판기를 통해 청소년들이 ‘안전한 성’에 대한 시각을 넓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