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와 소통하려했던 ‘돈키호테’

[소비자경제=김충식 기자] 이명박 정부 초기 MBC PD수첩에서 터뜨린 광우병 정국은 국민들의 대규모 촛불시위를 맞았다. 수천 수만명이 모인 광화문 사거리에서 성난 군중들 속으로 들어가 대화를 하자고 나선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정운천 장관. 이런 무모함으로 그는 ‘돈키호테’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소통을 위한 그의 시도가 오히려 호남지역의 ‘소통 아이콘’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했던 그가 광우병 촛불 시위에 맞부딪혀 장관직을 내려 놓고 지금은 전국을 돌며 300여회의 강연을 통해 광우병의 오해를 해소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2012년 전북도당위원장을 맡아 총선에서 35.8%,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통해 13.2%의 득표를 얻었다. 전무하다시피했던 호남지역에서 새누리당은 소통의 가능성과 국민 대통합의 가능성을 보았다는 평가를 얻었다.  

그런 그가 새누리당 지역화합특위 위원장을 맡으면서 호남지역(광주, 전남, 전북 등)의 소통을 위해 발로 뛰고 있다. 최근에는 전북도와 당정협의회를 개최하고, 전북관련 공약과 현안 추진을 면밀하게 검토하는 등 어떻게 하면 전북이 발전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당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 아카데미’도 추진하여 당원들의 정책능력을 강화하는 한편, 경북도당과의 결연을 추진하여 국민대통합을 위한 전진기지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재는 새누리당 전북도 당위원장으로서 전북지역의 현안과 공약 추진을 위해, 또한 새누리당 지역화합 특위위원장으로서 집권여당이 취약한 지역의 중앙과의 창구역할, 통로역할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촛불시위, 그 현장에서 소통의 아이콘이 되다

이명박 정부 임기 시작 2달여만에 촛불시위를 맞았을 때 그 때를 돌이켜 보는 일이 그에게는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이명박 정부에서 있었던 사람들치고 촛불시위 때를 회상하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니다. 그 역시 촛불시위 때 한가운데 있었고 그 논란의 핵심대상자였다. 하지만 그는 피하지 않았다. 광우병 시위당시 광화문 사거리로 나와 시위대에게 직접 설명하겠다고 조금은 무모하지만 성난 군중에게 다가가 얘기했다. 한참을 이야기 한 후에 한 꼬마가 손에 들고 있던 달걀을 쥐어줬다. 아마도 그 달걀은 던지기 위해 준비된 달걀이었을 것이리라. 하지만 군중들과 소통 후 그 달걀은 ‘화해와 소통의 상징’이 되었고 ‘희망’이 되었다. 

정 위원장은 그 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정말 미증유의 폭발 사건이었습니다. 광우병 사건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불과 2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고 안정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지금도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농업을 개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주춧돌만 쌓아놓고 물러났습니다. 실체도 없는 허위, 과장, 왜곡된 내용들이 국민들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 넣었습니다.” 이제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그의 심정은 어떨까? “5년이 지난 지금 광우병에 대한 실체를 알게 되었고, 식품의 안전이 안심정책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된 것은 큰 수확이었습니다”라고 큰 의미로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하지만 그에게 ‘MBC PD수첩’은 공영방송에 대한 불공정성 등 언론보도 피해자로써 앙금이 남아있다. 그 당시 과정에 대해 정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2008년 4월 19일에 협상타결이 되고 29일까지 10일 동안은 조용했어요. 농림수산식품부 또한 대비를 잘 했습니다. 축산농가 대책도 세우고 안전대책도 강구했어요. 문제는 그 이후에 PD수첩이 방영되면서 광우병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진 것입니다.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내용, 주저앉은 소 수십만 마리가 광우병 소로 둔갑해 버리고, 아레사빈슨이 광우병에 걸렸고, 한국인이 유전인자상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94%나 된다는 내용 등 모든 것이 허위에 기초하여 내용들이 확대 재생산 되었습니다.” 

언론·방송은 공기로서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허위, 과장, 왜곡에 대한 책임을 법적으로 져야하는 것이 마땅하다. MBC PD수첩은 정위원장과 명예소송 등으로 3년 3개월에 걸쳐 진행된 1·2·3심에서 모두 무죄로 끝이 났다. 온 국민을 광우병 공포로 몰아넣었지만 법원에서 고의성이 없다는 것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광우병 공포의 세 가지 쟁점이었던 주저앉는 소, 아레사빈슨은 광우병에 걸렸다는 것, 한국인의 94%가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허위, 과장, 왜곡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MBC 앵커로 활동하다 대기업 커뮤니케이션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인용 사장은 이를 두고 ‘저널리즘의 실패’라고 밝힌바 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으로 임명되어지기 전까지 전문 농사꾼이자 CEO였다. 그가 농업을 중시하며 하고 싶었던 것은 생산자 중심의 농업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이는 생산 중심의 농업이 아닌 최종 소비단계의 식품산업까지 연결된 농업으로 바꾸는 것, 즉 생산에서 유통 가공 수출 IT 문화 관광까지 포괄하는 ‘6차산업’으로 틀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이 ‘농림부’ 장관직을 제안했을때, ‘농림수산식품부’로 바꾼 것도 이러한 이유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식품이 결합되면 농민 300만이 대상이 아닌 5000만 전 국민이 대상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북선 농업 5대전략 (농어촌 뉴타운, 시군유통회사, 품목별대표조직, 대규모 농업회사, 농식품유통고속도로)으로 규모화, 조직화, 차별화,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농업을 돈버는 농업, 살 맛나는 농어촌을 만드는데 기초를 다졌다. 광물로 분류되어 지식경제부에서 주관하던 소금도 식품으로 바꿔 농식품부로 가져왔다. 우리 전통 발표식품인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젓갈을 5대 식품으로 선정하고 한식세계화에 기초를 다졌다. 전통을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천일염을 식품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신념을 갖고 추진했다. 또한 촛불의 광풍으로 인해 엄청난 비용이 들었지만, 반대로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국민의 건강과 식품안전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진 것이었다. 원산지표시제 확대 시행은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하지만 그의 행보가 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서 물러난 후 이명박 정부에서 한식재단의 초대 이사장으로 한식세계화 사업을 이끌었다. 한식 세계화는 우리 역사 문화의 맛과 얼이 담긴 한식을 세계에 내놓으면서 우리 국민의 국격을 높이는데 굉장히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최근 국회에서 한식세계화사업에 대한 감사원에 감사청구가 이루어졌다. 당사자인 정 위원장은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다. “‘한식 세계화’라는 것은 국민들 92%가 찬성하고 있고 교포들에게도 환영받고 있는 일입니다. 이게 한 2, 30년 동안 계속 사업해야 하는 장기적인 사업인데 초기단계부터 좀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지금 한식 세계화 사업이 대외적으로 홍보만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사실 내용적으로 들어가 보면 5대 전략 9대 과제를 통해서 거의 25개 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게 방대한 사업이거든요. 보는 시각에 따라서 빨리 성과를 기대한다고 보면 성과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고 반대로 장기적으로 본다면 차근히 기초 작업을 잘 할 수도 있는 것이죠. 장기적인 안목에서 한식세계화는 꾸준히 발전시켜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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