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점 경쟁에 제조사 멍든다

대형 할인점이 유통업계를 장악하면서 중소 제조·납품업체는 울상을 짓고 있다. 1993년 이마트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대형 할인점 업계는 저렴함과 편리함을 앞세워 급성장하고 있다.

반면 이곳에 납품하는 중소 제조업체는 잦은 판촉행사로 인한 비용 부담과 납품가 인하 요구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판매장려금 매년 1%씩 늘어


대형 할인점 업계는 불과 10년만인 2003년 총매출 19조5000억원을 기록하며 백화점을 2조원 가까이 따돌리고 유통 최강자로 급부상했다. 게다가 할인점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물건 가격을 꾸준히 내리는 등 소비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대형 할인점에 납품하는 중소 제조업체들은 손해를 보면서도 판촉행사에 참가하는 등 폐해가 늘어가고 있다. 한 납품업체 관계자는 “처음에는 5+1(다섯개 사면 한 개 덤)증정행사로 시작하던 게 2+1, 급기야 1+1로 잦아졌다”며 “판매장려금(판촉 명복으로 납품업체가 할인점에 내는 돈)이 매년 0.5∼1%씩 올랐다”고 털어놓는다.

실제로 많은 중소 납품업체들은 부당거래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조사한 대형 유통점 거래 중소기업 거래 형태에 따르면 조사대상 124개 중소 납품업체의 74%가 부당거래를 겪었다고 답했다.

또 공정위가 2004년 발표한 납품업체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납품업체의 44%가 할인점의 거래관행이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지적했고, 개선돼야 할 거래관행으로는 ▶경품·할인행사를 위해 낮은 납품가격을 강요(42%) ▶광고비, 인테리어비 등 납품업체 전가(22%) 등을 꼽았다.


납품사 74% “부당거래 겪었다”


게다가 이를 감시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처벌수위는 미흡한 것으로 지적됐다. 2000년부터 2005년 8월까지 할인점을 상대로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시정조치를 내린 것은 30건에 과징금 액수도 21억3000여만원(누계)에 불과했다.

이같은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은 제조업체들이 내수 판매의 상당부분을 할인점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50∼70%를 할인점을 통해 판매하다보니 때론 대형 제조업체마저 할인점에 눈치를 볼 정도다.

할인점들은 일부 과도한 관행에 대해 “납품업체의 판로개척과 물류비용 감소에 따르는 유무형의 이익을 따져봐야 한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공정거래 규정도 따르고 있고 무엇보다 싼 가격에 좋은 품질의 물건을 소비자에게 공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할인점 “無形이익까지 따져봐야”


전문가들은 할인점과 제조업체간의 경쟁으로 결국 소비자들만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진혁 연구원은 “가격경쟁이 너무 치열하면 결국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할인점이 제조업체의 가격 경쟁보다 품질이나 제품개발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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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마킹] 할인점-제조사 윈윈전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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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고 만든 ‘PB상품’ 급증=올 1월 편의점용 자체 라면이 20년간 판매 1위 자리를 고수한 ‘신라면’의 아성을 무너뜨리며 업계를 뒤흔들었다. ‘틈새라면’은 GS25의 PB(자체 브랜드) 상품으로, 편의점 PB상품으로는 처음으로 제조업체 상품을 앞지르는 사례로 기록됐다. 일반 브랜드 제품과 달리 PB상품은 중간 유통마진을 비롯해 광고, 마케팅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낮아 소비자들에게 좋고 업체 입장에서도 높은 마진을 얻을 수 있어 할인점-제조사-소비자 모두에게 유리하다.

◆납품업체와 비용·이윤 합의=세계 최대 할인점 체인인 월마트는 대규모 제품 배열 시스템과 저가정책 등으로 유통혁명을 일으켰다. 그러나 지나친 저가정책이 납품업체 쥐어짜기라는 비판이 나오자 월마트는 납품업체들과의 윈윈 전략을 추구했다. 납품업체와 한자리에 앉아 비용과 이윤 산정 같은 영업과정을 함께 해나간 것이다. 월마트와 납품업체간 윈-윈 전략은 결국 고객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성과를 얻었다.

◆모든 매장에 단일가격 납품=미국계 생활용품 업체인 P&G는 할인점간 가격경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단일가격 납품제도를 도입했다. 제조업체가 구매량에 관계없이 모든 거래처에 동일한 가격을 정해주기 때문이다. 최병욱 한국P&G 대외협력담당 이사는 “장기적으로는 유통·납품업체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제도는 제조업계의 교섭력이 강할 경우 통용될 수 있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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