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상품 판매 이후 홍콩H지수가 급락한 영향
5대 은행, 13조 원 이상 손실 규모 더욱 커질 수 있어

지난해 7월 은행권에서 판매된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에서 40억 원대 원금손실이 발생했다. 지난 2021년 상품 판매 이후 홍콩H지수가 급락한 영향이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7월 은행권에서 판매된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에서 40억 원대 원금손실이 발생했다. 지난 2021년 상품 판매 이후 홍콩H지수가 급락한 영향이다. [사진=연합뉴스]

[소비자경제=김연주 기자] 지난해 7월 은행권에서 판매된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에서 40억 원대 원금손실이 발생했다. 지난 2021년 상품 판매 이후 홍콩H지수가 급락한 영향이다.

2024년까지 만기도래하는 관련 상품 규모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에서만 13조 원 이상으로 손실 규모는 더욱 커질 수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시중은행 한 곳에서 판매된 홍콩H지수 기초 ELS 상품에서 이달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홍콩H지수 후폭풍…은행권 상품 판매 전면 중단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면서 NH농협은행이 ELS 판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수조원대 손실이 예상되자 은행권이 부랴부랴 판매 중단에 나선 것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농협은행은 지난달부터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ELS 판매를 중단하고 원금 보장이 가능한 주가연계 파생결합사채(ELB)만 판매하기로 했다. 이는 H지수 ELS 상품에 대한 고객 보호 차원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ELS 상품의 원금 손실 우려가 나타나면서 내부적으로 회의를 통해 원금 비보장형 상품 판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ELS는 기초자산으로 삼은 주가지수에 따라 수익 구조가 결정되는 파생상품이다. H지수는 지난 2021년 1만 2000선까지 올랐으나 현재는 절반 수준인 6000선까지 떨어졌다. 2024년까지 지수가 최소 7000 이상으로 올라야 원금을 회수할 수 있으나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작년부터 홍콩H지수 연계 상품에 한해 ELS 판매를 중단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지난 2022년 11월부터 홍콩H지수와 연계된 ELS 판매를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은행 관계자도 “지난 2022년 12월부터 H지수를 ELS와 ELT(주가연계신탁) 기초자산에서 제외했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들도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며 중단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 중이며 관련 상품 판매를 중단할지 검토하고 있다”며 이어서 국민은행 관계자도 “ELS 판매 중단과 관련해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은행에서 홍콩H지수 ELS 발행 잔액은 15조 8000억 원이다.

이 중 8조 3000억 원이 2024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한다. 은행별로 살펴보면 국민은행이 4조 7726억 원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어 △농협은행 1조4833억 원 △신한은행 1조 3766억 원 △하나은행 7526억 원 △우리은행 249억 원 순이다.

지난해 12월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의 2024년 상반기 대규모 손실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책임 면피 공방이 달아오르고 있다고 밝혀진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의 2024년 상반기 대규모 손실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책임 면피 공방이 달아오르고 있다고 밝혀진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

‘ELS’ 상반기 대규모 손실 우려 책임 면피 공방

지난해 12월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의 2024년 상반기 대규모 손실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책임 면피 공방이 달아오르고 있다고 밝혀진 바 있다.

이에 따라 이 상품을 대거 판매한 은행이 충분한 위험을 고지했느냐와 관련한 불완전판매 논란부터 투자자 분쟁조정과 소송 등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에서 판매한 홍콩H지수 ELS 가운데 2024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규모는 8조 4100억 원에 달하며 홍콩 H지수가 현 수준에 머물 경우 3조 원 규모의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

ELS는 특정 주가지수에 연동된 증권으로 만기까지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약속된 수익률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지수가 떨어지거나 올라도 미리 정해진 구간 안에서만 움직이면 약정한 수익률을 받을 수 있다.

통상 △코스피200 △S&P500 △홍콩H지수 등 국가별 대표지수가 가입 당시보다 절반 아래로만 떨어지지 않으면 수익률이 보장되는 구조여서 중위험 상품임에도 은행 고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실제로 전체 ELS 발행량 중 과반이 은행 신탁 상품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문제는 홍콩H지수가 지난 2021년 상반기 고점 대비 반토막 나면서 2024년 상반기 만기 도래 상품부터 대규모 원금 손실 발생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홍콩H지수는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중국 국영기업 종목을 추려 산출한 지수로 지난 2021년 2월 1만 2000선을 돌파한 뒤 하락을 거듭해 현재는 6000선마저 무너진 상태다.

금융권에서는 홍콩H지수가 고점이었던 지난 2021년 상반기에 발행된 홍콩H지수 관련 ELS 중 40% 가량이 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들은 “홍콩H지수 ELS 상품과 관련한 충분한 설명을 했고 가입자가 이를 확인하는 녹음도 있다”며 불완전판매는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은행들은 지난 2019년 DLF 사태와 2020년 사모펀드 사태 등을 거치며 강화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적용을 받았다.

이에 따라 판매 과정에서 녹취를 강화하고 AI를 통해 상품에 대한 필수 설명 등을 이행했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게 은행권의 입장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해 11월 “묻기도 전에 굳이 소비자 피해 예방 조치가 다 마련됐다는 등 운운하면서 말씀하시는데 솔직히 저희에겐 자기 면피 조치를 했다는 식으로 들린다”며 ELS 판매 은행들을 질타했다.

이어 “이런 고위험·고난도 상품이 다른 데도 아닌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들한테 특정 시기에 고액이 몰려 판매됐다는 것만으로도 과연 그 적합성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에 대해 한번 의구심을 품을 수 있는 점이 있다”고 말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ELS가 문제가 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상품이기 때문”이라며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불완전판매다. 상품 구조에 대해서 사는 사람은 물론 파는 사람 조차도 모르고 판매한 것이 상당히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주요 판매사 현장검사·민원조사 실시

2024년 1월부터 H지수 ELS의 만기가 도래하며 대규모 투자자 손실 가시화되고 있다. H지수는 지난 2021년 2월 1만 2229pt에서 2022년 10월 4939pt로 59.6% 급락했다. 지난해 12월 말 H지수는 5769pt이다.

이에 금감원은 지난해 11~12월 중 주요 12개 판매사의 H지수 ELS 판매실태 등 점검을 위해 현장·서면조사를 실시했다.

5개 은행 중 국민은행은 현장조사, 신한·하나·농협·SC제일은행은 서면조사를 실시했다. 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KB·NH·키움·신한 등 7개 증권사는 서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일부 판매사에서 △ELS 판매한도 관리 미흡 △KPI상 고위험·고난도 ELS 상품 판매 드라이브 정책 △계약서류 미보관 등 전반적인 관리체계상 적지 않은 문제점이 발견됐다.

지난 2021년 상반기 홍콩증시 위기상황·판매사 자체기준을 감안할 때 고위험 ELS 판매를 억제해야 했음에도 수수료 수익 증대를 위해 오히려 판매한도를 증액해 판매하고 수익률이 높은 고위험 ELS 상품을 KPI(고객 수익률 항목 등) 배점에 포함시켜 ELS판매 확대를 유도했으며 신탁계약서·투자자정보 확인서 등 일부 계약 관련 서류 미보관한 경우 등 문제가 적발됐다.

금감원은 주요 금융사의 판매 한도관리 미흡·법규위반 소지 등을 정밀하게 점검·확정하기 위해 은행·증권 권역을 아우르는 일제 현장검사 실시할 방침이다.

금감원은 지난 8일부터 12개 주요 판매사에 대해 순차 현장검사 실시한다. 지난 8일 업권별 최대 판매사인 국민은행·한국투자증권을 시작으로 1월 중 여타 10개 주요 판매사에 대해서도 신속히 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며, H지수 ELS 판매과정에서의 자본시장법 등 관련법규 위반여부와 함께 판매 한도관리 등 전반적인 관리체계에 대해 심층 점검할 계획이다.

국민은행, 한국투자증권에 대해서는 분쟁민원 사실관계 파악 등을 위한 민원조사도 현장검사와 동시에 실시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H지수 ELS 대응 T/F’를 구성해 운영 중으로 관련 부서 간 유기적 협업·금융위 협의 등을 통해 ‘검사~분쟁조정~제도개선 검토’에 이르는 일련의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 [사진=금융감독원]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H지수 ELS 대응 T/F’를 구성해 운영 중으로 관련 부서 간 유기적 협업·금융위 협의 등을 통해 ‘검사~분쟁조정~제도개선 검토’에 이르는 일련의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 [사진=금융감독원]

H지수 ELS 대응 일련의 절차 신속히 진행

금감원은 현장검사를 통해 H지수 ELS 판매와 관련한 금융회사의 위법사항 확인 시, 엄중히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특히 은행권은 지난 2019년 DLF 등 사모펀드 사태 이후 투자자 보호 등 ‘고객이익 보호’ 중심의 영업을 전제로 고난도 금융상품(ELS)의 신탁 판매 허용을 요청했던 점을 감안해 ‘고객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영업 행태 등으로 인해 촉발된 위법사항 등이 확인될 경우 엄중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분쟁 민원에 대해서는 관련법령상의 판매원칙에 대한 실질적 준수 여부와 함께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을 균형있게 고려해 처리할 방침이다. 법상 형식적 요건 준수 뿐 아니라 판매과정에서 소비자 보호 기능의 실질적 작동여부 등이다.

이를 위해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H지수 ELS 대응 T/F’를 구성해 운영 중으로 관련 부서 간 유기적 협업·금융위 협의 등을 통해 ‘검사~분쟁조정~제도개선 검토’에 이르는 일련의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

저작권자 © 소비자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