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경영진이 지난 3월 11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상장기념 ‘오프닝 벨’을 울렸다. 무대 위에는 김현명 쿠팡 IR 팀장, 강한승 쿠팡 대표이사,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박대준 쿠팡 대표이사, 존 터틀 NYSE 부회장, 거라브 아난드 쿠팡 CFO가 서 있다.(사진 왼쪽부터)
쿠팡 경영진이 지난 3월 11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상장기념 ‘오프닝 벨’을 울렸다. 무대 위에는 김현명 쿠팡 IR 팀장, 강한승 쿠팡 대표이사,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박대준 쿠팡 대표이사, 존 터틀 NYSE 부회장, 거라브 아난드 쿠팡 CFO가 서 있다.(사진 왼쪽부터)

계획된 적자에 이은 계획된 총수였을까. 쿠팡의 총수는 김범석 의장이 아니라 쿠팡으로 지정됐다. 자산총액 5조원이 넘는 대기업으로 성장한 쿠팡의 실질적 대표인 미국 국적의 김범석 의장은 국내 대기업에 대한 제재 법망에서 벗어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신규 지정기업과 그 기업의 총수를 지정한다. 자산총액이 5조원 이상으로 성장한 기업이 대상이다. 공정위는 29일 자산총액 5조원 이상 71곳을 공시대상기업(대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올해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새로 편입된 쿠팡의 총수는 법인인 쿠팡(주)을 지정했다.

대기업으로 지정되면 공정위의 감시체계를 받게 된다. 특히 총수로 지정되면 혈족 6촌, 인척 4촌까지 계열사 지분 보유 현황 등을 공시해야 하고 사익편취 규제도 적용된다. 그러나 쿠팡의 총수는 쿠팡이므로 김범석 의장의 혈족 6촌, 인척 4촌이 계열사를 소유해도 제재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업계는 쿠팡에 대한 공정위의 총수 지정에 대해 ‘외국인에 대한 특혜이자 국내 기업과의 형평성에도 안맞는다’며 반발하고 있다. 

김범석 의장은 쿠팡의 모기업인 쿠팡INC의 지분 10.2%를 보유한 4대 주주지만 차등의결권을 적용받아 의결권 비중이 76.7%나 된다. 쿠팡INC가 국내회사 쿠팡(주)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고 김범석 의장이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만큼 총수로 지정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었다.

그러나 공정위는 국내 대기업의 총수 지정의 경우 외국인을 총수로 지정한 사례가 없다고 일축했다. 특히 현행 경제력 집중 억제정책이 국내를 전제로 설계된 만큼, 외국인을 규제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봤다.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쿠팡은 그간의 사례, 현행제도의 미비점, 계열회사의 범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쿠팡 주식회사를 동일인으로 판단했다”면서 “김범석 의장이 쿠팡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건 인정되지만, 기존 외국계 기업의 선례와 규제 실효성 등을 따져 본 결과 외국인 총수를 지정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번 공정위의 총수 지정은 국내 기업에 대한 형평성이나 법률의 균형에 있어서도 맞지 않는다. 김범석 의장이 쿠팡의 실질적 지배자이므로 동일인으로 지정해야 한다”면서 “이번 사례로 다른 대기업의 총수도 외국 국적을 취득해 규제를 피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4조원의 적자를 감수하며 대대적인 사업 확대를 펼쳐온 쿠팡은 올해 3월11일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하며 대규모 수혈을 받았다. 그동안 쌓여온 적자는 투자금으로 대체될 수 있는 상황이다.

앞선 1월5일 쿠팡은 4인 각자대표 체제를 강한승·박대준 2인 체제로 변경했다. 미국 국적의 김범석 대표는 대표직을 사임하고 이사회 의장이 됐다. 그리고 김범석 의장은 3월11일 미국 뉴욕 증시에서 화려하게 등장했다. 4월29일 쿠팡의 총수는 김범석 의장이 아니라 쿠팡이 됐다.

김범석 의장은 미국 국적을 가진 한국계 미국인이다. 미국 증권가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인물이지만 국내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대표였다. 국회에서 소환해도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미국에 있다는 이유로 한번도 출석하지 않았다.  

쿠팡의 집은 한국에 있지만 부모는 미국에 있는 꼴이다. 부모가 잘못해도 한국의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자식들은 한국에서 물건을 팔고 돈을 벌고 재산을 불리고 있다. 모든 것은 미국에 있는 부모가 시키는대로 하면 된다.

앞으로도 김범석 의장을 한국에서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소비자경제신문 노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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