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지난 6월 공개한 인구동향에 따르면, 2023년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0명으로 1년 전보다 0.05명 줄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사진은 2019년 서울의 한 대형병원 신생아실의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통계청이 지난 6월 공개한 인구동향에 따르면, 2023년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0명으로 1년 전보다 0.05명 줄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사진은 2019년 서울의 한 대형병원 신생아실의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최송목 CEO PI 전문가 
최송목 CEO PI 전문가 

지금 한국은 출산율 ‘세계꼴찌’를 기록하면서 인구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6월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출생·사망 통계(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을 기록하며 0.8명대가 무너졌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출산율이 1명대 아래이며 2004년부터 16년째 출산율 꼴찌다. 20여 년 전부터 충분히 예견되고 우려했던 바가 이제 기정사실화된 것이다. 충분히 시간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된 대책 없이 헛발질만 계속하고 애먼 국민 혈세만 쏟아부어왔다.

한국 사회의 저출산 원인으로 CNN·이코노미스트 등이 꼽는 것은 결혼제도 외의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사회적 편견, 여성의 희생을 강제하는 가부장적 가족문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어렵게 만드는 노동문화, 막대한 양육 교육비, 높은 집값 등이다. 요약하면 ‘경제적 부담’ 이 주 원인이다. 이렇게 나름 원인이 있고, 역대 정부가 갖가지 대책으로 노력을 했음에도 출산율은 회복기미가 보이지 않고 인구감소는 지속되고 있다. 왜 그럴까?

‘좋은 질문이 훌륭한 답을 만든다 ‘라는 말이 있다. 질문이 잘못되면 해답도 잘못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지금까지 인구 감소문제를 줄곧 출산율에만 맞추어왔다. 원인과 대책 모두 온통 ‘출산율’에 쏠려있다. 과연 올바른 질문에 올바른 방향일까? 원점으로 돌아가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이 땅이 살기 좋은 나라라면, 사람들이 제 발로 들어오고 알아서 낳고 번성할 것이고, 반대로 살기 힘든 나라라고 생각하면 떠나거나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다. 지금 현실은 후자에 가깝다.

민족을 늘이려면 출산율에 맞추는 게 맞다. 그러나 인구수를 늘리려면 인구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출산율과 인구수를 별개로 다르게 보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민족을 번성하게 할 것인가, 국가를 번성하게 할 것인가의 선택이다. 따라서 국가 정부는 각자 나름 소신껏 살아가고 있는 애꿎은 젊은이들의 결혼·출산을 탓할 게 아니라, 지금까지 꾸준히 제기해 왔던 질문을 조금 달리해 보는 것이다. “왜 출산율이 저조할까?”에서 “왜 인구가 늘어나지 않을까?”로 말이다. 비슷한 질문 같지만, 이는 전혀 다른 질문이고 따라서 다른 해결책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전자의 질문은 주로 한국인들 동족 간의 결혼. 출산을 통한 인구증가를 기대하고 독려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정부가 목청 높이고 돈 들여 가면서 구호를 외쳐봤지만, 백약이 무효다. 부모가 ‘낳아라 마라’하는 것도 아니고, 국가가 국민의 사생활을 국가주도로 뭘 어쩌겠다는 당국의 의도가 듣기에 따라서는 불쾌감까지 자아낼 수 있다. 각자 개인의 삶이고 남의 집 가정사일 뿐이다. 정책의 정확한 통계와 효과 측정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다 보니 깨진 독에 물 붇기 식이 되었고 담당 공무원들 일자리만 늘어난 셈이 되어 버렸다.

반면 후자의 질문 “왜 한국 인구가 늘어나지 않을까?”는 그나마 국가다운 품격 있는 질문이다. 즉 ‘한국의 인구감소’ 문제에 대한 포괄적·개방적·전향적인 질문이다. 지금까지는 ‘결혼과 출산율, 인구감소’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은 논란이 있어 왔지만, ‘인구’에 초점을 맞추는 거시적 담론과 통찰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한국은 5000년 단일 민족 국가로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민족’이 국가의 모토로 자리 잡았다. 딱히 명시적으로는 아니지만, 국민이라 하면 당연히 ‘한국인= 한민족’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우리에게 민족은 곧 국가이며, 국가가 곧 민족이다. 그동안 ‘민족’이라는 단어는 충성심과 애국심을 고취하고 힘을 하나로 결집하여 일제치하를 잘 극복해 독립을 이룩했고, 또 6.25 전쟁 후 폐허가 된 이 땅을 지금의 세계강국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동시에 민족에 대한 남다른 애증과 염원으로 통일에 대한 강한 집념을 남기고 있다. 그 통일은 그냥 ‘통일’이 아니라 ‘민족 통일’이다. 숙명의 과제이며 거의 종교화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과거 우리의 큰 동력이 되어 온 이런 ‘민족’ 편향된 사고가 앞으로 미래 한국에도 계속 유효하게 작용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제 ‘민족’을 버려도 될 때가 되었다. 강을 건너고 나면 뗏목을 버려야 하고 어린애가 장성하면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잠깐 눈을 들어 세계를 보자. 지금 세계인구는 전체적으로는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세계인구는 늘어나는데 우리 한국 인구만 줄어든다고 걱정하고 있다. 아이러니다. 어찌 보면 걱정 않아도 될 걱정을 하고 있다. ‘국가’·‘민족’ 이런 전제나 개념 없이 복잡한 내용 다 걷어내고 숫자만 놓고 보면 그리 걱정할 문제도 어려운 해결건도 아니다. 방법은 간단하다. 한국인이 되고 싶은 사람,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기면 하면 된다. 그들을 흡수하는 것이다.

이는 예전에 없었던 사상초유의 신박한 제안도 아니다. 벤치마킹할 사례도 세계도처에 널려있다. 미국, 호주, 캐나다 등은 건국초기부터 그리해 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민족’이라는 테두리 내부에서만 정답을 찾으려 애써왔다. 더 이상 결혼. 출산이라는 미리 정해 놓은 답에서 애꿎은 청년들만 몰아세우지 말자. 이제 외부로 눈을 돌려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결론은 민족수가 아니라 인구수다. 법무부에 따르면 최근 11년(2012년~2022년) 간 26만 2305명의 한국인이 국적을 상실 또는 이탈했다. 미국(56.2%)·일본(14.8%)·캐나다(13.6%) 순으로 떠나갔다. 반면 우리가 받아들이는 귀화는 상당히 까다롭고 폐쇄적이다. 최근 10년간 매년 12000명~15000명으로 국적 이탈자의 절반 수준이다. 들어오는 수(input) 보다 나가는 수(output)가 두 배라는 얘기다. 우리의 이민정책 기조는 현황만 보면 받아들이기 위한 적극적 심사가 아니라, 가능하면 받지 않고 배척하려는 수동적 자세다. 우리는 과거 역사에서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대표적인 폐쇄적 정책으로 비난하지만, 지금의 인구정책도 사실상 그에 못지않다.

귀화 심사에서 한국어 시험도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한국어를 잘해야 한국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종의 편견이고 기득권자 우리의 수구(守舊) 관념이다. 반드시 한국어로만 한국을 이해해야 하는가? 한국어를 잘 구사할 수 없어도 능력 있고 재력 있고 한국을 잘 이해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겉모양은 한국인이면서도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 못하는 토종 한국인도 많다. 한국어만을 고집하여 우량 외국인을 배척하는 것은 배부른 생각이다. 이민 인터뷰를 세계 통용어인 영어나 각자의 모국어로 배려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일이다.

한편 국가 최대 사업으로 펼치고 있는 ‘출산율’에서 자녀생산의 본질도 한번 되새김질할 필요가 있다. ‘둘만 낳자’·‘하나만 낳자’·‘다둥이 가족 우대’ 등 이런 표어, 정책 용어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말이지만, 본질은 국가가 복지를 확대함으로써 자녀를 많이 낳도록 유도하는 정책의 일환이다. 인간이 자식을 낳고 가족을 이루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에 국가가 복지라는 '당근'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두 마리, 세 마리, 열 마리를 생산 조정할 수 있겠지만, 인간의 출산에 대해서 국가가 개입 장려한다는 것은 인간 존엄성에 대해 대한 모독으로 비칠 우려도 있다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2016년 7월 교육부의 고위공무원이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는 식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것과 연결해 보면 더욱 그렇다. 지극히 개인 발언이라지만, 똑똑한 엘리트 공무원이 우매한 국민들을 통제하고 끌고 가야겠다는 국가주의가 물씬 묻어나는 대목이다. 국가는 국민이 있고 난 후 생겨난 조직형태다. 인간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따라서 국가가 개인 사생활. 출산 나아가 부부 성생활까지 간여한다는 것은 종이 주인을 지도하려는 주객전도의 월권정책이다. 절대 왕권시대나 독재 시대에나 있을 법한 정책이 버젓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은 분명 시대착오적 국가주의 관념의 잔재다.

종합하면, 지금 우리 ‘한국인’ 가슴속에 깊이 똬리를 틀고 있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의식과 출산의 본질에 대한 정부 당국자의 사고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단일 민족에서 다민족 국가로 전환해야 된다. 다들 말로는 공감하면서도 실제로 정부나 국민들 간에 실천적인 사례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그냥 말로만 수긍하는 수준이다. 국가의 모든 정책 기획에서 과감히 ‘민족’이라는 단어를 삭제해야 한다. 우리가 ‘단일 민족’과 혈통을 고수하면서, 우리 개체 수를 하나라도 더 늘려야겠다는 ‘출산장려’ 등으로 표출되는 잠재의식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 민족도 국가도 더 이상의 미래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민족을 버려야 민족이 산다. 미국과 뉴질랜드 호주 등은 처음부터 민족이라는 단어 없이 외부 민족, 다른 민족, 다민족 국가를 기반으로 국가의 부흥을 꾀한 나라다. 그들은 민족 없이도 거뜬히 세계가 부러워하는 부강한 나라, 잘 사는 국가가 되었다. 국가를 민족에 맞추려고 애쓰는 노력을 멈출 때가 되었다. ‘한민족’만이 이 땅의 유일한 주인이라는 선민의식·혈통 우월주의·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민족이 살아나고 새로운 국가 부흥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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