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최근 88만여 개인 기존 노인 일자리를 2027년까지 노인인구의 10% 수준인 120만개로 늘리고, 신규 노년층으로 진입하는 '베이비붐 세대'를 위한 맞춤형 일자리를 창출하기로 했다. 사진 서울 마포구에서 진행된 노인일자리 박람회에 참석한 한 노년층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최근 88만여 개인 기존 노인 일자리를 2027년까지 노인인구의 10% 수준인 120만개로 늘리고, 신규 노년층으로 진입하는 '베이비붐 세대'를 위한 맞춤형 일자리를 창출하기로 했다. 사진 서울 마포구에서 진행된 노인일자리 박람회에 참석한 한 노년층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최송목 CEO PI 전문가

[소비자경제=권찬욱 기자] 매일 이른 아침이면 우리 집 앞 계단을 쓸고 쓰레기통을 치워주시는 노부부가 있다. 아마 대략 70대 중반 75세 전후쯤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생활고 때문에 이른 아침에 노부부가 일을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지레 짐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이유나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은 고통일 수도 있고 형벌이 될 수도 있고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 성경 창세기에서 태초의 인간에게 일은 축복으로 시작되었지만 하느님의 뜻을 거역함으로써 땀을 흘려야만 빵을 먹을 수 있는 형벌이 되었다. 그리스 신화에도 일하는 형벌이 등장한다. 코린토스의 왕 시시포스가 큰 돌을 언덕 위로 밀어 올리는 벌인데, 돌을 산꼭대기에 올리면 다시 밑으로 굴러 내려가 처음부터 다시 돌을 밀어 올려야 한다. 의미 없이 영원히 반복하는 형벌이다.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이 아닐까 하는 관점이다.

우리 인간은 왜 일하는가? 왜 일을 필요로 하는가?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 본다. 가난한 자는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자는 더 벌기 위해, 직장인은 마지못해 또는 습관적으로 일한다. 대부분은 돈 때문이지만, 한편으로는 성취감·가치실현·취미 삼아·좋아서·더러는 심심해서도 일한다. 목적이 있어 일하지만 목적 없이 일하기도 한다. 그밖에 여러 가지가 일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 인간에게 일이 형벌이던 선택이던 계속 일하도록 주어졌다는 관점에서 인간은 일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존재인 것 같다.

그런데 평생 일하는 존재인 인간 사회제도 대부분은 ‘60세까지 일하는’ 60세 정년으로 세팅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 60세 정년 의무화는 비교적 최근(2013년 입법화) 일이지만, 그 이전에도 사람들은 대체로 60세 전후를 공식적인 은퇴나이로 인식해 왔다. 60세라는 정년은 아마도 60세가 활동능력 기준에서 거의 종착지라는 가정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갑자기 100세 시대가 됨으로써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여분의 ‘40년’이 우리에게 큰 혼란을 주고 있다.

‘조선 통계 시보’에 따르면 1940년대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45세,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980년에는 평균수명 65세, 2020년 기대수명은 83세다. 불과 80년 사이에 거의 2배로 수명이 늘어났다. 2015년 11월 기준으로 실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만 100세 이상 고령자 수가 3159명으로 2010년의 1835명에 비해 72.2%(1,324명)가 증가했다. 또 2015년에 유엔이 발표한 세계 인구 전망에 따르면 1990년에 9만 5000명 정도였던 100세 이상 고령자(Centenarian)의 수가 2015년에는 45만 1000명으로 4배가 넘게 증가했고, 2050년에는 36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우리가 인위적으로 설정해 놓은 60세라는 제도의 기준점은 100세 시대를 맞아 점차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60세를 정점으로 퇴직 후 쉼의 생활로, 안전지대로 접어들어 노후를 즐기려던 찰나에 갑자기 늘어난 ‘40년’이 엄청난 걸림돌 내지는 애물단지로 남은 것이다.

영화 '작은 정원'의 한 장면. 해당 영화는 할머니들이 당당히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서는 과정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사진=연합뉴스]
영화 '작은 정원'의 한 장면. 해당 영화는 할머니들이 당당히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서는 과정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이런 60세 퇴직이리는 기존제도와 맞서 반기를 든 무리가 나타났다. 바로 80대에도 은퇴를 거부하고 일하는 사람들, ‘옥토제너리언(Octogenarian)’의 출현이다. 우리말로 풀면 ‘불퇴족’이다. 수명이 길어지는 현상과 맞물려 80대에도 여전히 체력과 정신력을 유지하면서 직업 또는 직장을 가지고 여전히 일하고 있는 노년들이다. 한마디로 노동력의 완전연소를 다하지 못한 열정적 80대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현재 세계 인구 80억 명 중 80대는 2% 수준인 약 1억 6000만 명이지만, 30년 후인 2053년에는 80대가 세계 인구의 5.1%인 5억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이들이 60세에 그만두고 마냥 40년을 허송세월 보낸다면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생활고에 시달릴 가망성이 클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효율 측면에서도 큰 손실이 예상된다. 한마디로 과거 60세에 설계된 시스템에 100세의 우리가 어정쩡하게 올라타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1980년 11만여 명이었던 80세 이상 근로자가 지난해에는 69만여 명으로 42년 사이 6배 넘게 늘었다. 일본도 75세 이상 인구의 작년 취업률이 11%로 2017년과 비교해 5년 사이 2% 포인트나 올랐다. 한국도 80대 고용률이 1982년에는 2.2%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18.7%로 40년 사이 8배 넘게 뛰었다. 근로자들의 은퇴시기가 점점 늦춰지면서 정년 없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옥토제너리언은 세계 사회전반에 걸쳐 빠른 속도로 확산될 전망이다. 내년 미국 대선 민주·공화 양당의 유력 후보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그렇다. 둘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80세가 넘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1942년생 81살로 역대 최고령 미국 대통령이고, 1946년생인 트럼프도 당선되면 임기 중 80대가 될 것이다.

정치인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옥토제너리언’이 늘어나고 있다. 노익장 건강박사로 알려진 1934년생 이시형 교수, 침팬지 연구와 사랑으로 유명한 영국의 동물학자 제인 구달도 1934년생 89세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연극 영화 쪽도 다르지 않다. 연기 경력만 최소 50년 이상인 원로 배우들 ‘대학로 방탄노년단’의 최고령 1934년생 배우 이순재는 88세 현역이다. “니들이 게맛을 알아?”광고로 유명세를 떨친 1936년생 신구(87세)도 여전히 '라스트 세션'에서 열연 중이다.

지금도 심청가를 완창 하는 1939년생 명창 조상현(86세), ‘오징어 게임’으로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한 연극계 원로배우 오영수도 내년이면 80세(1944년생)를 맞이한다. 유명 배우 겸 성우 박정자도 1942년생(81세)이다. 1942년생 영화배우 해리슨 포드(81세)는 43세(1985년)에 찍었던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다섯 번째 시리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집계에 따르면, 한국의 80대 근로자도 증가 추세에 있다. 1982년의 80대 고용률은 2.2%였지만, 10년마다 약 3% 포인트씩 증가해 지난해에는 18.7%를 기록했다. 80대 중에서 5명에 한 명 꼴로 일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80세 옥토제너리언을 넘어 100세 센터네리언(Centenarian)의 활약도 돋보이고 있다. 올해로 딱 100세를 맞이하는 1923년생 전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지금도 시진핑을 만나 세계정세를 논하고 있다. 한국의 최고령 수필가 및 철학자인 1920년생 김형석 교수는 올해 103세로 아직도 칼럼과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수명 연장과 일하는 80세·90세·100세의 증가에 따라 제도적으로도 정년폐지가 시대적 흐름이 되고 있다. 정년을 55세·65세·70세·75세로 늘려도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정년의 추가연장 속에 연령차별적 정년 제도가 점차 철폐되는 분위기다. 정년 연장보다는 평생근로가 초고령화를 풀어낼 해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80대 옥토제너리언의 숙련파워의 완전연소를 위한 제도의 혁신과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편견에 갇혀 산다. 습관과 경험 그리고 사회의 고정관념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숱한 가능성의 문을 닫아버린다. ‘80세, 이제 은퇴해서 낚시나 다녀야지, 지금 이 나이에 무슨 일?’, ‘아버지도 못 했으니 나도 못 할 거야’, ‘이제까지 안 됐으니 앞으로도 안 될 거야’ 식으로 속단한다. 세계적 생물학자이자 뛰어난 마라토너. 과학적이면서도 사색적인 자연 에세이로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83세(1940년생) ‘베른트 하인리히’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 이상을 해낼 수 있는 존재다.”

옥토제너리언은 돈의 영역을 떠나 보람의 영역으로 또 다른 삶의 표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년에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능력 차원을 넘어 하나의 축복이고 ‘살아있다’는 증거다. 나아가 인간의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나이와 노화가 정확히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든다고 우리 신체 능력이 무조건 퇴화하는 것은 아니다. 하버드대학의 저명한 유전학 교수이자 노화 연구 분야 세계적 권위자 데이비드 싱클레어는 저서 ‘노화의 종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화는 질병일 수 있으며, 치료할 수 있다.” 신의 영역 ‘영생’을 넘보는 도발이다.

싱클레어 교수의 말 대로라면 머잖은 장래에 키신저나 김형석 교수 같은 100세 센터네리언(Centenarian)들이 주변에 들어 찰 것이고, 그러다 성경 속 인물 ‘므두셀라’의 969세 최장수 기록마저도 조만간 경신될지 모를 일이다.

최송목 CEO PI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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