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을 견학 온 방청객들이 전원위원회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13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을 견학 온 방청객들이 전원위원회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어사전에는 소통을 ‘①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②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라고 뜻풀이하고 있다. 사전에서처럼 모두가 서로 잘 통하고 오해가 없으면 좋겠지만, 소통이 불통이 되어 소송으로 이어지면 결국 돈으로 마무리된다. 주로 처벌로 종결되는 형사소송과는 달리 생활 다툼이 대부분인 민사소송에서는 돈으로 보상된다. 즉, ’얼마의 금액을 원고에게 지급하라 ‘는 게 원고가 원하는 판결문의 요지다. 불통(不通)이 법원의 판결로 강제 소통되는 것이다.

 절대권력의 왕권시대에서는 사형, 태형, 귀양, 벌금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강제 소통이 이루어졌지만, 지금은 거의 ‘금원에 해당하는’ 돈으로 결론을 낸다. 고대처럼 ‘이에는 이’ 등가의 벌칙을 부과 못하고 딱히 다른 방법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국어사전과는 달리 비즈니스 관점에서 소통을 재해석해 보면 어떨까? 실용적 의미를 담아 재해석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적(敵)과도 잘 지내는 것, 색깔, 성격, 스타일이 다른 사람과도 대화를 잘 나누는 것 그리고, 주어진 직장, 조직 내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 등으로 확대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내가 원치 않는 집단이나 조직에서 그들과 잘 통(通)하는 것이 소통이다. 

2018년, 2019년 두 차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만남을 접하고 나는 상당히 놀랐다. 그동안 남북한 끼리의 김대중 vs 김정일, 노무현 vs 김정일, 문재인 vs 김정은의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흔히 있는 이벤트 정도로만 생각했지 놀라지는 않았다. 우리의 남북정상회담이 희망과 기대였다면,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은 그야말로 ‘스프라이즈’였다. 1948년 기준으로 70년 만의 회담이기도 했고, ‘노망 난 늙은이’, ‘로켓맨' 등 서로 막말 비방을 하면서 금방이라도 전쟁을 치를 것 같은 험악한 분위기로 몰아가던 두 사람이 갑자기 웃으면서 악수 나누는 장면과 그들이 주고받은 대화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들 두 사람의 만남이 국가 간 정상들의 큰 비즈니스 소통이라면 규모는 작지만, 개인 간 만남도 소통이고 내용은 거의 같다. 지금 현재 세계인구는 약 80억 명이다. 이들 중 같은 사람, 같은 성격은 한 사람도 없다. 나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80억 각자는 어제와 오늘의 시간차에 따라서도 서로 다른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2500년 전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흐르는 강물은 끊임없이 변한다. 우리 앞의 강물은 같은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계속 지나가고 있고, 다른 물이 그 자리를 다시 채운다"라고 말했다. 같은 사람이라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소통은 이런 각양각색의 '만남' 즉 사람과 상황 ‘다름’의 엉킴이고 이런 엉킴을 잘 해결해 나가는 것이 소통이다, '서로 다름'에서 나의 다른 생각, 다른 의견을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고 그를 납득시키는 것이 소통의 본질이다. 이 과정에서 설득, 타협, 거래, 강제 등의 수단이 있을 것이다. 

일찍이 오늘날처럼 ‘소통(疏通)`이라는 단어가 각광받은 시기는 없었다. 온전하게 소통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反證) 일 것이다. 눈만 뜨면 뉴스화면을 꽉꽉 채우고 있는 정치 사회논쟁, 노동쟁의, 부부 가정불화, 이웃 층간소음 분쟁 등도 소통의 부재나 미흡함에서 나온 결과물들이다. 

흔히 소통은 친한 사이끼리 나누는 대화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보고 싶은 사람, 좋아하는 연인끼리, 절친과 소통은 쉽다. 껄끄러운 사람, 내 스타일이 아닌 사람, 상대하기 힘든 사람, 전화하기 싫은 사람, 까칠한 사람과 잘 통하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다. 

그러므로 소통은 웃고 부드럽게 대화를 잘 나누는 긍정적인 면이 전부는 아니다. 칼부림하고 총을 겨누는 와중에도 오갈 수 있는 대화가 소통이다. 몸싸움, 칼부림, 총질, 전쟁을 유연한 대화나  금전적 보상, 스포츠 문화교류 등으로 완화 또는 전환시킨다거나, 감정싸움을 이성 논리다툼으로 변환하는 것이 고급 소통이다. 

지금 한국의 여의도에는 소통을 가장 잘하는 전문가들이 고임금을 받으면서 열심히 논쟁하고 있다. 어제는 싸웠다가 오늘은 아무 일 없는 듯 웃으면서 만나는 사람들이다. 합의하고 싸우고 논쟁하고 타협하고 거래도 한다. 일부 국민들은 그런 그들을 속없는 사람들이라 손가락질하지만, 소통측면에서는 그들만 한 고수들이 없다. 직업적 ‘소통 전문가’들이다. 

다들 이러는 국회의원을 못마땅해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딱 하나 배울 점이 있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서로를 잘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이 보기에는 뻔뻔스러움의 극치로 낮에는 싸우고 밤에는 같이 어울리는 그런 사람들로 비치는 것이다. 그들은 국민들을 대표해서 서로 견제하고 다투는 것이 직업이고 의무이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소통을 해야만 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자기들 잇속을 너무 챙기다 보니 욕을 먹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우리 가정이나 사회에서도 국회의원들에게 벤치마킹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싸움질하다가도 경우에 따라서는 화해하고 타협하고 소통하는 그런 적극적인 자세가 가정이나 사회에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소통의 모든 출발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상대방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한치 양보도 없이 싸우던 정적끼리도 만나고,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나고, 여야 대표가 만나고, 남북한이 만나고, 한국과 일본, 중국이 만나고, 미국과 북한이 만나는 것을 환영해야 한다. 서로 적이거나 친하지 않다는 감정적 이유만으로 불통이 계속된다면 서로 피해가 되고 상처만 깊어질 뿐이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친구는 소통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적은 소통 해야만 공존할 수 있다.

소통은 만나기 싫은 사람과 잘 만나는 것이 목적이고 본질이다. 주변을 둘러보라. 지금 당신과 주로 소통하고 있는 사람이 절친이라면 아직 아마추어다. 껄끄러운 사람과도 잘 소통하고 있다면 프로다.  

글: 최송목 CEO전략전문 컨설턴트/ ‘사장으로 견딘다는 것’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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