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 모빌리티 시장 급 성장, 2022년 20~30만대 예상
차도로 달리면 킥보드가 위험, 인도로 다니면 보행자가 위험...
안전 위한 제도적 장치, 소비자 인식 개선 절실

지하철 9호선 삼전역 근처의 전동킥보드에 '헬멧 착용 필수'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있다.
지하철 9호선 삼전역 근처의 전동킥보드에 '헬멧 착용 필수'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있다.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동네 골목마다 전동킥보드 열풍이다. 집 앞에서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까지 킥보드로 오가는 사람들이 많고 저녁이면 산책 대신 삼삼오오 모여 킥보드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과연, 전동 킥보드는 '교통사고'에서 자유로울까?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전동킥보드 등 마이크로 모빌리티 시장 규모는 2018년 기준 9만대 수준이고 오는 2022년에는 20~30만 대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전동킥보드 공유 서비스 업체는 열 손가락으로 꼽기도 부족하고 현대자동차와 카카오, 네이버 등 완성차 업체와 IT 대기업들도 관련 시장에 발을 들이고 있다.

전동킥보드 열풍은 강남과 잠실 등 서울 시내 주요 도심과 대학가에서 시작됐다. 최근에는 판교와 동탄 등 신도시로도 확대 추세다. 학생과 젊은 직장인들이 집에서 정류장까지 이용하거나 가까운 거리는 전동킥보드로 다니는 경우가 많아서다. 직선거리는 가까운데 지하철이나 버스를 갈아타야 하거나 언덕이 많지 않은 강남 지역에서는 전동킥보드가 매우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사용도 쉽다.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면허증과 카드를 등록한 다음 주차된 킥보드를 타고 원하는 곳으로 가서 그냥 세워두기만 하면 된다. 이용요금도 짧게 타면 버스나 지하철보다 싸다.

바로 이 쉬운 접근성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전동 킥보드에는 반드시 헬맷을 쓰고 타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중심을 잃거나 부딪혀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냥 탄다. 27일 저녁 서울 지하철 9호선 석촌고분역 근처에서 전동킥보드를 빌려 타려던 한 20대 이용자는 “차도로 다니는 게 아니어서 헬맷을 안 써도 괜찮을 것 같다. 편하게 다니려고 타는건데 킥보드 때문에 가방에 헬멧을 넣어 다닐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기자도 직접 전동킥보드를 타봤다. 아직 더운 날씨에 헬멧을 쓰려니 답답했다. 출근시간을 줄이려고 지하철 역까지 전동킥보드를 탄다고 가정하면, 왕복 5분여를 위해 하루종일 헬멧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일까. 전동킥보드를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도로 다닌다. 강남과 잠실, 여의도 등 전동킥보드 대여가 활발한 동네에서는 아침 저녁마다 킥보드를 빌려 타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대부분 인도 또는 자전거도로에서 다닌다.

여기서 진짜 문제가 생긴다. 전동킥보드는 법률상 ‘원동기장치 자전거’로 분류된다. 쉽게 말해 오토바이와 같다. 반드시 헬멧을 써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차도로 다녀야 한다.

전동킥보드로 차도를 달린다고 상상해보자. 도로 맨 오른쪽 가장자리로 달리더라도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버스정류장을 만나면 차선을 바꿔야 하고, 우회전하는 차량에 부딪힐 위험도 있다. 킥보드를 타는 사람은 물론이고 차량 운전자도 사고 위험에 노출되는 셈이다. 기자도 전동 킥보드를 운전해보니 뒤에서 달려오는 자동차를 의식하느라 운전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서울 시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여용 전동킥보드. 면허증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사진에 등장하는 제품 브랜드는 기사 속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서울 시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여용 전동킥보드. 면허증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사진에 등장하는 제품 브랜드는 기사 속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현실적으로 보면, 전동킥보드를 타고 차도로 달리라는 요구 자체가 어쩌면 어려운 조건일 수도 있다. 소비자들은 가까운 거리를 편리하게 다니기 위해서 잠깐씩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몇분을 위해 번거롭게 헬멧을 쓰고, 차도에서 달리는 위험을 감수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차도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인도로 다니게 되면 보행자들의 안전 역시 위협받는다. 풀기 어려운 숙제다.

그러다 보니 전동킥보드가 인도에서 보행자들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거나 자전거 도로에서 자전거와 겹치는 경우가 많다. “국도에서 운전할 때는 고라니를 조심하고, 강남에서는 '킥라니'를 조심해야 된다”는 얘기가 들리는 이유다.

킥라니는 ‘킥보드와 고라니’를 합성한 신조어다. 누구나 쉽게 이용하는데 안전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이 적고 소비자들의 인식도 부족하다. 헬멧을 착용하지 않고 어떤 경우 한 대를 빌려 두 사람이 함께 타기도 한다. 대여료를 아끼기 위해서겠지만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

최근 4년간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전동킥보드 사고는 총 528건이다. 지난해에만 233건이 접수됐다. 이용자가 늘면서 사고도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전동킥보드 동호회 등에서는 안전규정을 준수하려는 캠페인 등도 진행하지만,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도로를 위험하게 달리는 킥보드와 마주하는 경우가 많다.

제도적인 뒷받침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전동킥보드의 자전거도로 주행을 허용하는 법안이 지난 2017년 6월 발의된 바 있다. 자전거도로 통행을 허용하되, 도로관리청이 통행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이 법은 지난 4월에서야 국회에서 한 차례 논의되는데 그쳤다. 전동킥보드 대여시 헬멧도 함께 빌려주는 ‘일체형 렌트 서비스’에 대한 요구도 있지만, 분실 우려 등의 문제로 현실화되지 못했다.

경제적인데다 친환경적인 퍼스널 모빌리티가 깊숙이 뿌리 내리려면 제도적 장치가 튼튼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소비자들 역시 안전에 대한 인식을 되새겨야 한다. 자전거 전용도로나 헬멧도 과거에는 어색한 단어들이었다. 하지만 인식개선과 제도 정비 등을 통해 이제 서울 시내와 전국 각지에 자전거도로가 많이 깔리고 헬멧 이용자도 많아졌다.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에서도 그와 같은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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