善戰者之勝也 無智名無勇攻

(선전자지승야, 무지명무용공)

‘진정한 승리는 지혜롭다는 명성도,

용감하다는 공도 드러내지 않는다’

최송목 CEO PI 전문가

 손자병법의 군형편(軍形)에 나오는 말입니다. 통상 사람들은 성공가도에 들어서면 자기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자기의 지혜, 용기 등에 대한 인생 무용담이죠. 더구나 “와∼ 대단하십니다! 그래서요?” 등 상대방의 칭찬과 존경의 추임세가 곁들여지면 점입가경에 빠져듭니다.

성격이 외향적인 사람은 당연하고 내향적인 사람도 꼭 티를 냅니다. 굳이 말로 표현하는 인터뷰가 아니라도 뭔가 자랑 표시, 과시, 잘난 티를 내거나 드러냅니다. 고급 자동차, 브랜드 양복, 와이셔츠, 명품시계, 만년필, 구두…….

인테리어, 책상, 가구, 벽에 걸린 그림 등 본인만 잘 느끼지 못할 뿐 남들 눈에는 다 티가 납니다. 승자의 티, 잘난 티 등 한마디로 승리 혹은 성공의 과시입니다. 저도 과거 당시에는 몰랐는데, 오래전 찍어둔 사무실 사진을 우연히 보고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아 ∼내가 너무 티를 냈구나!’

이런 여러 가지 ‘자랑 티‘는 처음에는 승수효과를 내다가 차츰 부작용으로 전환됩니다. 연예인들의 인기 사이클과 비슷한 그래프를 그리는 거지요. 처음에는 홍보를 위해서 여러 방송, 신문사 매체 인터뷰도 하고 유튜브도 찍지만 나중에 그게 일부 문제가 될 수도 있고, 거기에 몰두하다 보면 승리의 본질을 잊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소문내서 좋을 때가 있고, 소문내서 좋지 않을 때가 있으며, 자랑할 때가 있고 멈출 때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던 정점을 찍으면 반드시 내려오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낚시하는 사람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강태공(姜太公)은 실은 주나라 장군, 승상이었습니다. 그는 고수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남과 다툴 때 번쩍거리는 칼을 쓰는 것은 진정한 고수가 아니다” 하수들은 싸울 때 번쩍거리는 칼을 들이대며 온 세상 사람들 모두 보란 듯이 이기고 승리를 만끽합니다.

이때 그 승리의 희생물이 된 2등 3등, 낙오자들은 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박수치기를 강요받습니다. 억지웃음으로 상대의 승리를 축하하고 박수를 치는 것만큼 세상 고통스러운 일도 없습니다. 구경하는 관중들, 세상 사람들은 패자의 그 고통을 이해하기 보다는 경기의 원만한 진행만 원할 뿐이다 보니 이런 상황이 일어납니다. 그래야 다음 경기가 속행되고 계속 즐길 수 있을 테니까요. 이렇듯 승리 뒤에는 항상 승자의 희생양이 있게 마련이고 패자들의 시기, 질투, 원망이 생성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고수는 다릅니다. 그는 번쩍거리는 칼을 쓰지 않습니다. 조용히 싸우고 조용히 이깁니다. 승리를 해도 자랑하거나 티를 내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환호와 갈채에도 무던합니다. 패자가 패한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승자가 티를 내지 않으니 패자도 졌다는 상처가 좀 덜할 터이고 시기 질투를 할 수 있는 감정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습니다.

승자에 대한 패배감이나 질투심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패자 스스로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이죠. 전략적으로 본다면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능력 면에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초격차의 넘사벽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조용한 승리를 추구하는 진정한 고수 모습입니다. 바로 손자가 말하는 ‘무지명, 무용공(無智名, 無勇攻)’입니다

지난해 연말 윤석열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하여 전쟁 중인 중동 지역에서 ‘대한민국 제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며 무기 세일즈를 하고 있다는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작년 우리 역사상 최대 규모인 173억불 방산수출 실적을 달성했다’며 자랑도 했습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시몬 베제만 선임연구원은 “한국이 앞으로 몇 년 안에 5위 무기 수출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했습니다.

개인도 자기 정체성이 있듯이 국가도 정체성이 있습니다. 중앙승가대 교수 금강 스님은 최근 칼럼을 통해 이 점을 지적했습니다. 남북이 대립하고 있는 한반도에 무기가 배치되고 무기를 만들고 보유하는 것은 물론 방어의 마음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공격과 파괴의 마음이 깃들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대로라면 한반도 전체를 관통하는 경제나 정치, 문화와 일상의 언어들의 중심에도 그런 마음이 담기게 될 것이고 개개인이 겪고 있는 대립, 갈등, 좌절로 인한 우울증이나 자살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는 우려입니다.

과거 전쟁 피해 당사자였던 나라가 무기를 생산하고 수출까지 하게 되었으니 좋아할 일일 수도 있지만, 언론에 대서특필하고 대통령까지 대놓고 나서서 다닐 일인가 싶습니다. 결국 그 무기들로 인해 누군가는 죽어야하고 과거 우리들처럼 고통 받아야 할 테니까요. 한국은 과거 베트남 참전으로 원정 전쟁을 치렀으며, 자유민주주의 대만을 배신하고 공산국가 중국을 선택했으며 지금도 부작용 많은 정선 카지노(강원랜드)를 국가가 운영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는 세계경제규모 10위권을 넘나들며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위상에 걸맞는 정체성과 철학적 고민을 좀 더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몸집만 커진 어린이 같은 거지요.

물론 현실적으로 국가가 개인처럼 항상 도덕적이거나 정의로움을 추구하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실리와 돈으로만 따지고 국격을 아무렇게나 방치한다면 그 속에 소속된 우리 국민들은 부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도 지도자도 좀 조용하게 영업하고 조용하게 수출하면 좋겠습니다.

최송목 CEO PI 전문가(‘오십에 읽는 손자병법’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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