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의 원칙으로 적을 대하고 기술적인 변칙으로 이겨라

최송목 CEO PI 전문가
최송목 CEO PI 전문가

수학공부에서 公式(공식)이나 定理(정리)만 익힌다고 문제풀이를 잘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공식을 기본으로 응용해서 문제를 잘 풀어야겠지요. 손자병법의 ‘정합기승 正合奇勝‘에서 正(정)은 원칙이나 법칙으로서 방향성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변화에 대응하는 기(奇)와 잘 어우러져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正(정)은 원칙, 기(奇)는 변화입니다. 正이 정규전이라면 奇는 유격전이고, 正이 직접적인 정공법이라면 奇는 기습적인 변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正이 본연의 실력이라면 奇는 순간적인 기회포착의 순발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회사의 경우, 正을 본사의 원칙이라고 한다면 奇는 지점 (local)의 융통성과 임기응변의 고객응대라 할 수 있겠습니다. 권투시합에서 상대와 주먹을 치고받는 것이 正이라면, 이런 접전 상황에서 빈틈을 노리다가 갑자기 훅 펀치를 날리는 것이 奇라 할 수 있겠습니다.

동네 테니스 연습장에 가면 나이 든 중장년 분들이 테니스를 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폼은 별로인데 이상하게도 공이 네트를 잘 넘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석대로 배우지는 않아 폼은 엉망이지만, 나름대로의 기술과 경험이 이뤄낸 결과입니다.

이런 경우 동네 테니스로서는 상당한 실력이지만, 대회에 나가면 어린 선수들에게 번번이 패합니다. 왜 그럴까요? 소위 요령(奇, 변화)만 늘다 보니 그리된 거겠지요. 기본기인 正(정)의 원칙을 잘 다지지 않고 바로 기(奇)의 변화에만 치중하다 보니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한계구간에 도달한 겁니다. 正은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다가 그 임계점에서 그 필요성을 느끼게 합니다.

正(정)의 원칙, 기(奇)의 변화 둘 다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잘 배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연히 正이 선행되어야겠지요. 손자가 말하는 ‘正合奇勝(정합기승)’은 正으로 적을 대하고 奇로 이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기는데 奇가 중요하지만 正이 바탕이 되어 받쳐주어야 가능합니다. 奇는 기발한 순발력으로 단기간에 짤 수 있지만, 正은 오랜 훈련과 교육에 의해 축적되면서 장기간에 걸쳐 만들어집니다. 正은 주체의 본질이며 평소에 미리 갈고닦아야 합니다. 갑자기 正을 얻을 수 없습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동네 테니스 아저씨 실력은 거기까지가 한계인 거죠. 더 이상 늘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골프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연습장에서 똑딱이로 연습하는 것만치 재미없는 일도 없습니다. 최소한 수개월 이상은 스윙 폼을 잡고 필드에 나가야 하는데, 대부분 초보자들은 그걸 참지 못하고 바로 필드로 직행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렇게 필드에 나가 드넓은 초원의 기분을 한 번 맛본 초심자는 다시는 닭장 같은 연습장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돌아가기 싫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어설픈 상태로 폼이 굳어지고 실력도 더 이상 늘지 않는 거지요.

이와 같이 정석의 원칙이 중요하긴 하지만, 원칙을 너무 고수하려다 보면 실전에서 다양한 경우에 대응 못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어느 정도 정석을 익히고 나면 정석을 벗어나야 합니다. 정석이 중요하지만, 정석에 매몰되다 보면 정석 이외 다른 것을 아무것도 보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기(奇)는 변화입니다. 정(正)은 하나지만, 기(奇)의 변화는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합니다. 그래서 그 모두를 알기란 어렵습니다. 이점에 대해서 손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소리의 기본은 다섯 가지지만,

이것이 변하면 모두를 다 청취하기가 불가능하다.

색의 기본은 다섯 가지지만,

이것이 변하면 모두를 다 관찰하기가 불가능하다.’

 

聲不過五, 五聲之變, 不可勝聽也, 色不過五, 五色之變, 不可勝觀也.

성불과오, 오성지변, 불가승청야, 색불과오, 오색지변, 불가승관야.

 

 

그렇다면, 먼저, 정석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정석의 속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정석은 수많은 경험과 임상시험에서 다져진 최적화 표준 모델입니다. 옷으로 치면 기성복이지요. 여러 가지 체형 유형별로 미리 제작해 둔 옷이지요. 그러니 내 몸에 옷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옷에 내 몸을 맞춰야 합니다.

어떤 하나의 모델을 추종, 모방 사용하는 자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점차 그것이 표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이때 추종자들이 사용하는 표준은 불필요한 의심이나 점검 없이도 좋은 결과치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표준을 많이 알고 많이 사용할수록 업무처리 속도가 빨라지고 효율이 높아집니다.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원칙, 기준, 정석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단지 선두그룹 2등이 아니라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그 정석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정석의 최대 약점은 공개된 지식 노하우로 누구나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고의 경지란 그런 평범함을 벗어나 존재합니다. 유니크하고 희소성이 있어야 합니다. 비욘드 정석입니다.

이번에는 강자 약자 측면에서 규칙을 살펴보겠습니다. 약자가 강자의 그늘에서 벗어나 성공하려면 규칙을 깨고 울타리를 넘어야 합니다. 규칙을 지키려고 너무 노력하다 보면 만년 2등이 한계점입니다. 로마제국이 노예들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위한 전략으로 노예들에게 재산권과 일부 자유를 부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예들에게 최상의 인생 성공은 ‘노예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노예 우두머리가 되려고 앞 다투어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자신이 노예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모순에 빠지게 되는 거지요. 그런 사람은 결코 1등은 될 수 없습니다. 제도의 소유주가 될 수 없습니다. 평생 주어진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규칙을 이용하여 강자는 약자를 다루고, 약자는 규칙의 속성과 단맛에 취해 약자의 굴레를 계속 이어갑니다.

약자는 단지 규칙을 지키는 시늉만 하면서 규칙을 뛰어넘을 궁리를 해야 합니다.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중소기업 사장(약자)들은 규칙을 지키려는 노력 정도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만약 글로벌 선두기업을 표방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요. 울타리를 뛰어넘는 생각을 해야만 글로벌이 가능합니다. 창의와 혁신적 발상은 정석을 벗어나려는 의지입니다. 기업에 빗대면 약자인 중소기업이 강자 대기업을 따라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합니다.

고수 하수라는 측면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하수들은 정석을 지키려 하고 고수는 정석 너머를 봅니다. 우리 주변을 보십시오. 규칙과 규격을 지키려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새로운 규칙, 규격을 만들려는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비단 기술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무슨 상을 타려는 자들로만 가득한 세상에서는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자들을 단순한 반항아, 사회부적격자 또는 ‘또라이’라 부르며 경시할 뿐, 창의적 사고의 창조자라 부르지 않습니다. 상을 만들려 하는 사람과 타려고 하는 사람은 서로 대척점에 있고 그 생각차이는 엄청나게 다릅니다.

예컨대, 최근 ISO9001, ISO14001 등 국제표준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준들은 짜 맞추어 놓은 이론의 표준박스입니다. 이런 걸 서로 지키려고 공공기관, 금융기관,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온 사회가 붐을 이루고 있습니다. 결코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불필요한 규칙에 갇히려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거지요.

실제로 제대로 지키지도 않을뿐더러 마치 장식이나 훈장쯤으로 여겨지거나 단지 금융기관 융자받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대부분 기업체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담당자들이 하라는 대로 서류 요식행위만으로 인증절차를 마무리하니 실용성이 떨어지는 거죠. 한편 그 타이틀, 인증을 따기 위해 국가적으로 막대한 돈을 기꺼이 지불하고 있는 점도 그렇고요.

또 공무원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 제안을 하면 외국 선진 사례를 제시해야만 승인이 수월합니다. 관행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에 대한 저항이자, 걱정이고 거절의 완곡한 표현입니다. 만약의 실패에 대비한 안전망이자 공무원의 전형적인 보신주의입니다.

과거 사례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거나 새로운 아이디어, 비즈니스 모델을 제안하는데 사례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앞뒤가 안 맞는 사고이고 접근방식의 오류입니다. 이런 체제에서는 정보비대칭을 이용한 시간차 ‘발 빠른 모방’만이 혁신으로 취급받고 살아남는 구조가 됩니다. 하수들은 정석을 지키려 하고, 고수는 정석 너머를 봅니다. 그것이 혁신사회로 가기 위해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고 발전모델의 방향입니다. 이것은 정치, 문화, 예술, 스포츠 등 거의 전 분야 모든 면에서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인생은 반복 없는 그림 그리기입니다. 정석은 지나간 과거의 경험과 규칙을 기반으로 작성된 성공모델입니다. 하지만 다가올 모든 미래는 새로운 길이고 전인미답(前人未踏)입니다. 잘하려면 정석을 고수하고 장차 1등이 되려면 정석을 버려야 합니다.

최송목 CEO PI 전문가( ‘오십에  읽는  손자병법’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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