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혁 변호사 “사생활에 대한 국가 개입은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법률적 이슈들

게임법과정책학회 회장 임상혁 변호사
게임법과정책학회 회장 임상혁 변호사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28일 오전, WHO의 게임이용장애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게임 업계 및 콘텐츠산업 종사자, 게임 개발자, 그리고 게임 과몰입 현상을 다루는 임상심리전문가 등으로 구성됐다. 그런데 참가자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이력이 하나 있다. 법무법인 세종 임상혁 변호사다. 임 변호사는 게임법과정책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게임 관련 이슈에 왜 법률 전문가가 나선 것일까.

배경은 이렇다. 게임 과몰입 현상을 둘러싸고 그 동안 여러 연구와 사회적 논의가 이뤄졌다. 게임 과몰입 해소를 위한 각종 규제도 시도됐다. WHO가 인터넷게임장애를 국제질병 표준분류기준(ICD)에 정식 등재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관련 내용이 국내에서 반영되어 국내법에 도입될 여지도 생겼다. 실제로 과거 게임을 마약이나 알콜 등과 함께 중독의 일종으로 규정하고 치료 대상으로 삼는 내용의 입법(신의진법)이 시도된 적도 있다.

임상혁 변호사는 WHO 의결 내용에 대해 국내 도입논의가 이뤄질 경우 생길 수 있는 법률적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게임을 하나의 질병으로 규정하고 국가의 치료 대상으로 삼는 과정에서 법률상 문제 소지가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임 변호사는 관련 이슈를 둘러싸고 짚어봐야 할 부분을 5가지로 나눠 제시했다.

첫째, 게임은 산업이기 이전에 하나의 놀이문화고, 문화는 공동체 구성원의 자율과 자유에 맡기는 것이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라는 견해다. 이에 따라 국민의 생활양식이나 이를 형성하는 요소들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조성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 임 변호사의 주장이다.

둘째, 게임 과몰입을 질병이라는 틀에 넣고 국가의 보호대상이나 후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개인의 자유 이념과 배치된다는 주장이다. 법적 제도를 섣불리 도입하기보다는, 개인이 여가활동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고, 그 과정에서 활동이 다소 과잉되더라도 스스로 치유방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다.

셋째,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관한 문제다. 이번 WHO 의결 내용을 보면 치료 대상이 되는 게임의 범위가 어디까지고, 치료의 대상이 되는 기준 행위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 임 변호사의 입장이다. 그는 “중독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넷째, 입법 내용에 따라 보호하려는 공익이 침해될 수 있는 사익과 비교했을 때 더 커야 하는데 그 부분이 부족하다는 의견이다.

다섯째는, 법률상 보장된 경제적 자유와 영업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문제다. 특정 게임에 한정적으로 적용되거나 국내게임사업지와 해외사업자간의 차별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

임 변호사는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필요 최소한도로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국민의 행동과 사생활에 사회적인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에 벗어나는 경우 치료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은 지나친 국가 후견주의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국내에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관련 규제가 꼭 필요한지, 침해 위험이 적은 다른 방법은 없는지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게임 중독의 질병 등재를 두고 산업계는 물론 법조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향후 관련 이슈를 둘러싸고 어떤 논의가 이뤄질 것인지 관심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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