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곳 영업·조업 중단, 3곳도 조만간 일감 바닥
中·日 저가수주 공격, 공동법인 등 협력이 관건
“정부 재정지원, 채권금융기관 시각 변화 필요”

전남 해남에 위치한 중형조선소 대한조선   (사진출처=대한조선 홈페이지)
전남 해남에 위치한 중형조선소 대한조선 (사진출처=대한조선 홈페이지)

[소비자경제신문 임준혁 기자] 중형조선사들이 고사(枯死)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이른바 조선 ‘빅3’로 불리는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대형 조선사들의 이슈에 묻혀 신음하는 중이다. 중형조선사들은 현재 영업과 조업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해 정부나 주채권은행의 지원 등이 절실한 상황이다.

14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한진중공업(부산소재) ▲STX조선해양(창원) ▲성동조선해양(통영) ▲대한조선(해남) ▲대선조선(부산) 등 국내 중형 조선사 5곳의 직원 수가 지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 사이에 반토막 났다.

이들 중형 조선사 5사의 사업·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들의 직접 고용 인력은 지난해 말 기준 총 4219명으로 조선업황이 최고점을 찍었던 2010년(8333명) 대비 49.4% 줄어들었다. 협력업체 직원까지 포함하면 1만명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003년 조선업 호황이 시작된 이후 기존 선박 블록업체들이 앞다퉈 신조선으로 전환한 무분별한 투자가 중형조선사의 위기의 시발점이었다. 당시엔 쉽게 말해 ‘돈만 어느 정도 갖고 바닷가로 가서 조선업을 하면 성공한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때마침 해운 호황으로 선주들의 선박 발주소식이 끊이지 않았고 이에 따라 신규 투자 증가 등으로 중형조선소들이 무분별하게 창업되거나 확장된 바 있다.

시황이 호황일 때 이들 중형조선소로 달러화 유입이 많았다. 문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달러화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서면서 크게 불거졌다. 당시 환헤지상품으로 소개해 판매됐다는 증언 등 불완전판매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조선업뿐 아니라 피해수출기업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금융기관(은행)의 책임을 소규모만 인정함으로써 대부분의 손실을 기업들이 떠안게 됐다.

특히 당시 조선호황으로 달러화의 유입이 많았고 환헤지나 파생상품에 대한 지식이 약했던 중형조선소들은 판매 금융기관의 표적이 돼 큰 피해를 입었다. 키코(KIKO)라 불리는 이 외환파생상품으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형조선사들은 영업을 지속하는 조선소의 숫자가 급감하면서 심각한 수준으로 위축됐다.

실제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2008년 호황의 정점에서 국내 26개 중형조선소가 존재했었다. 하지만 KIKO 손실과 구조조정이 이뤄진 2009년 9개로 급격히 축소됐고, 2010년에는 4개사만 남게 됐다.

위기에 빠진 중형조선산업에 대한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은 해당 조선사 채권은행에 기업의 조정을 맡김으로써 결국 산업의 재건에 실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채권은행들이 대부분 중형조선사를 구조조정 단행 혹은 매각해 버림으로써 대부분의 중형조선소들이 청산되거나 업종전환 등으로 시장에서 퇴출됐다. 그 결과 현재 영업과 조업을 지속하고 있는 중형 조선소는 대한, 대선조선, STX조선해양 등 3개사뿐이다.

이들 3개사도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수주잔고와 신규 수주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중형 조선사들의 수주액은 10억8000만달러(약 1조2528억원)로 전년 대비 13.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선박을 위주로 발주가 이뤄지면서 국내 중형 조선사들에 불리한 시장 구조가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감소 이유를 설명했다. 아울러 중국 업체가 저가 수주를 이어오면서 일감을 빼앗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국내 중형조선사들이 주로 건조하는 선종은 PC탱커라 불리는 중형 석유화학제품운반선이다. 5만톤에서 최대 20만톤 사이의 선박을 중형 PC탱커라 지칭하는데 전세계적으로 발주가 감소한 선종 중 하나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전세계 중형 선박 발주량은 전년 대비 15.6% 감소한 1000만CGT(표준화물환산톤수)를 기록했다”며 “발주량 감소 속에 중국과 일본 등 저가수주가 이어지며 선가 상승을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기간 국내 중형조선사 3개사의 수주량은 전년 대비 18% 감소한 54만7000CGT를 기록했다.

다시 말해 이미 수주한 물량은 소진되고 있는데 신규 일감 확보가 어렵다는 얘기다. 클락슨에 따르면 해남에 위치한 대한조선은 3월 말 기준으로 20척, 54만1000CGT의 수주잔량을 기록해 전 세계 조선소 38위에 머물러 있다. 대한조선이 38위에 랭크돼 있을 동안 중국과 일본 조선소들은 저렴한 선가를 내세워 중형 PC선 등을 싹쓸이 수주해 30위 안에 대부분 이름을 올려놨다.

한때 수주잔량 기준 세계 톱 10에 이름을 올리며 ‘조선 빅4’라 자칭했던 STX조선해양은 현재 14척, 34만2000CGT의 수주잔고를 기록해 60위로 추락했다. 전성기 시절 1000TEU급 컨테이너운반선(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수주 및 건조의 절대강자였던 부산의 대선조선은 현재 6척, 7만9000CGT의 수주잔량으로 124위로 내려앉았다.

일각에서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3사가 고부가가치 선박을 위주로 수주를 재개해 이들 중형 조선소가 굳이 필요있냐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형 조선소야말로 국내 주력산업 중 하나인 조선산업 전체의 산업 생태계 유지 차원에서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조선산업 연구 전문가는 “중형조선산업이 국내 조선산업의 한 부분으로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대형 컨테이너운반선, LNG운반선 등 대형 고부가가치 선종만으로는 그 규모를 유지할 수 없으며 국내 중형조선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일정 수준을 점하며 중국, 일본 등 경쟁국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은 국가 주도로 자국 중형선박 건조 조선소의 기술개발 마케팅을 펼치고 있고, 일본은 동형선박을 건조하는 중형조선소 40여개 사가 경쟁자들 간의 협력을 통해 기술개발과 설계가 이뤄지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꿈도 꾸지 못할 현상이다. 경쟁사와 수주 경쟁을 하면서 선가를 깎는 근시안적인 대처로 현재의 고사상태에 이르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 전문가에 따르면 중국의 국가주도나 일본의 경쟁자간 협력모델을 한국 중형조선사에는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한국만의 효율적 기술 및 경영지원이 이뤄지는 체제를 찾아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

R&D나 설계, 영업의 공동대응이 필요하며 더 나아가 조선 기자재나 원자재 공동구매 등 우리나라 중형 조선소도 공동의 노력을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고 경쟁력을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세계적으로 조선시장은 급변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에 대응해야 하고 중장기적으로 스마트십에 대비해야 한다”며 “이러한 환경 변화에 국내 중형조선사는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만큼 산업 통합도 고려해야 한다. 가령 현재 영업중인 3개 중형조선사가 조합을 구성한다던가 공동법인 형식으로 뭉쳐서 생존하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술개발과 선형 개발, 영업, 구매, 설계를 공동으로 해 중형 조선사의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며 “중형 조선사를 포기하면 연관 산업인 기자재 산업이 발전할 수 없고 중형 조선소에 선박 설계를 전문으로 해 제공하는 업체 등 조선산업 전체를 떠받치는 산업생태계를 고려했을 때 반드시 중형 조선을 살려야 한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원 등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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