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오가 두 개의 배지를 단 이유는?
"장자연의 언니 역할 해주고 싶다" 호소

[소비자경제신문 이혜민 기자] 10년이나 묵은 사건을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놓은 이가 있다. 고인이 된 장자연의 동료였다는 윤지오다. 그는 가슴에 두 개의 배지를 단 채 세상으로 홀로 걸어나왔다. 하나는 세월호 사건 추모 배지, 다른 하나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소녀와 나비' 배지였다. 고인을 위해 용기를 낸 유일한 증언자였지만, 그가 단 두 개의 배지마저 공격의 대상이 됐다. 두 개의 다른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목소리. 과연 그럴까.

세월호, 위안부, 장자연 사건의 공통점

세월호 사건과 위안부 피해는 장자연 사건과 닮아있다. 이 세 가지 사건을 하나로 묶는 것은 피해일 수도, 보상일 수도, 왜곡이나 권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한 가지는 '억울함'이다. 그들은 억울함을 풀고 싶어 한다.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장자연 사건은 가련한 여성의 안타까운 사연이 아니"라며 "재계, 정계, 언론계, 연예계 권력자들이 점조직처럼 얽혀 여성들을 성폭행한 반인륜적 범죄"라고 말했다.

언론과 대기업, 고위검찰간부, 연예계가 연루된 외압과 은폐. 그리고 권력에 의한 유착. 다른 사건이라고 뭐가 다를까.

피해자는 하나 같이 외세에, 원인 모를 사고에, 권력에 당하며 억울함을 호소해왔다. 그러나 당한 이들은 사라지거나, 사라지기를 기다리거나, 강요받는다. 남은 이들이 그들을 위해 대신 싸워주지만 늘 힘에 부친다. 그렇게 지나간 세월이 세월호 사건은 5년, 장자연 사건은 10년, 위안부 피해는 100년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독재정권에 대항한 민주운동, 일제를 향한 만세운동 등 다수 대 소수의 싸움은 늘 있어왔다. 그 일이 개인의 업적이자 위대한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승리했기 때문이다. 현재도 사건과 당사자만 다를 뿐 프레임은 같다. 하나의 구조가 시대에 관계없이 반복되고 있고, 국민은 그들의 승리를 원한다. 그래야만 이들은 한낱 목격자, 증언자가 아닌 영웅이 되기 때문이다.

꿋꿋이 버틴 윤지오, 외신 인터뷰도 마다 안 해

16번째 증언을 마친 윤지오는 가족이 있는 캐나다로 돌아갈 예정이다. 아픈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캐나다에서도 외신과 인터뷰를 하는 등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거라고 밝혔다.

덕분에 장자연 사건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2018년 4월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이하 과거사위)는 장자연 사건 재조사를 대검찰청에 권고했지만 이렇다 할 진척이 없었다. 과거사위의 활동 기한은 2018년 말까지였다.

배우 고(故) 장자연 씨의 동료 배우 윤지오. (사진=연합뉴스)
배우 고(故) 장자연 씨의 동료 배우 윤지오. (사진=연합뉴스)

오는 8월 4일 공소시효도 앞두고 있어 조사단의 마음은 조급했다. 다행히 조사단의 활동은 지금까지 네 차례 연장되어 5월까지 활동이 이루어진다. 윤지오의 등장이 결정적이었다.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의 등장이 장자연 사건의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낸 것이다.

국회에서는 '윤지오와 함께하는 의원 모임'도 꾸려졌다.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과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 추혜선 정의당 의원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 소속 의원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모임이다. 덕분에 윤지오는 힘을 얻었고, 신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사설 경호업체까지 고용하며 그는 꿋꿋이 버티고 있다.

윤지오의 인터뷰 중 인상 깊은 말이 있다. "(장자연)언니에게 언니역할을 해주고 싶었다." 윤지오의 나이 올해로 서른 둘. 스물아홉에 목숨을 끊은 장자연보다 세 살 언니가 됐다. 그동안 장자연의 뒤에 숨어 울기만 했다며, 이제는 고인을 지켜주고 싶다 말하는 윤지오. 이것은 비단 윤지오뿐만 아니라, 왜곡된 진실로 힘들어하는 모든 피해자의 진심일 것이다. 국민 모두가 피해자의 언니, 오빠가 될 때 조금이나마 당한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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