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소비자 권리 제약 선분양보증 총액 65% 대기업 건설사 집중

서울 강남의 노른자 대치동, 도곡동 일대 아파트. 가운데 검은색 아파트가 도곡동 타워팰이스이다.
서울 강남의 노른자 대치동, 도곡동 일대 아파트. 가운데 아파트가 도곡동 타워팰이스이다.

[소비자경제신문 권지연 기자 ]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건설사들의 아파트 부실시공 문제와 관련해 입주 소비자들의 성토가 빗발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들은 대부분 아파트 부실시공과 관련된 것으로 올해 들어서만 10여 건이 넘는다.  

(#사례1) 2월말 입주 앞둔 효성중공업 ‘의왕백운밸리 효성해링턴플레이스’ 청원  

효성에서 지은 경기 의왕시 학의동에 위치한 ‘의왕백운밸리 효성해링턴플레이스’는 2480세대 대규모 단지로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3일 간 입주 예정자들이 사전 점검을 실시했다. 

입주예정이었던 청원인은 “우리 입주예정자는 경악 참담을 넘어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울화통을 터뜨렸다. 그 이유는 각 세대별 마감재와 공용시설이 상당수 미시공 상태였고, 크고 작은 하자가 곳곳에서 발견됐기 때문. 
 
입주 예정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바닥·벽·천정 등에서 파손·균열·누수가 발견되고 각종 마감재 불량, 휘어진 벽체, 페인트칠 불량, 싱크대·변기 등 기본적인 시설조차 설치가 안 된 세대도 있었다. 단지 내 소방도로와 보행로의 급격한 경사도 입주 예정자들의 불안을 키웠다. 효성중공업은 사전점검을 마치고 이달 27일 의왕시의 준공 승인 이후 입주를 시작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입주 예정자들은 사전점검 때 다수의 하자가 발견돼 각종 민원을 쏟아내며 ‘입주 연기’를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사례2) LH공사 부실공사 아파트 하자 입주민 전가

또 다른 청원인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기업 토지주택공사(LH)가 누가봐도 확인되는 아파트 부실공사로 인한 하자를 입주민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구조상의 문제인지 시공상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겨울철 습기로 인한 곰팡이와 그로 인한 도배장판 오염이 심각하다는 내용이었다.

(#사례3) 부산 명지 국제신도시 '중흥S클래스 더 테라스' 부실시공  

청원글은 "사전 점검 기간에 곳곳에서 부실, 하자 의혹이 발견되고 벽면 기울어짐, 바닥 수평 불량, 창문 틀어짐 등이 심각한데도 중흥토건 측에서는 입주 예정자들이 납득할만한 해명조차 없다"며 "보수했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어 222세대 중 170세대 정도가 계약금을 포기하고 나왔다"고 하소연. 

(#사례4) 한양 수자인 아파트 부실시공

다음은 세 자녀를 키우는 아빠라고 소개한 청원인이 지난 1월 22일 올린 민원글 내용이다. “한양 수자인아파트 부실에 관련된 기사가 나왔으나, 시공사 측에서는 힘을 써 기사를 내리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사람이 우선되지 않는 노후된 주택법으로 힘의 논리에 의해 국민은 무시되고 있다." 

(#사례5) 경남 양산시 교동 월드메르디앙 아파트 부실시공

경남 양산시 교동월드메르디앙 아파트 입주예정자는 "이 아파트의 첫 번째 시공사인 성우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대한토지신탁이 시공을 맡았으나 가구 내부는 말할 것도 없고 아파트 주변에 제대로 공사가 마무리 된 곳이 없고 부실 시공한 부분도 눈에 많이 들어온다"고 토로했다. 

◇ 전국 곳곳 아파트 부실시공 '수두룩'···"후분양제 도입해야"

전국 각지에서 건설사들의 아파트 부실시공과 관련해 소비자 피해가 빗발치는 상황에서 정부가 후분양제 도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비판의 목소리 쇄도하고 있다.

주택 선분양 제도는 1977년 아파트 분양가 규제가 도입된 이후 정부가 건설업체들의 채산성 악화를 우려해 금융비용을 줄여주기 위한 명목으로 활용돼 왔다. 아파트 건설업체들이 소비자로부터 주택건설자금을 무이자로 직접 조달할 수 있는데다 부족한 자금력을 해소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주택공급을 단기간에 확대하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분양제가 건설업체들 중심으로 공급자 우위 시장이 고착화돼 부실시공에도 소비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식의 부작용이 속출해왔고,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부터 정부가 후분양제 도입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정부는 오히려 분양가 규제를 풀어달라는 건설업체의 요구 수용하면서 지어진 주택을 보지도 않고 사야 하는 소비자 불평등의 처지가 더욱 심화돼 왔던 것이다.

그래서 가난했던 시절, 나라경제와 주택공급 문제를 모두 해결하려던 정부 주택 공급 정책은 이제 폐기하거나 수정할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모델하우스만 보고  평생을 모은 돈을  아파트 구입에 쏟아붓는 주거 소비자인 대다수 국민의 권리와 피해 따위는 그간 자기 배만 불려온 건설업체들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메아리에 불과했던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유현준 교수는 "후분양제도로 가야 건설사들이 소비자들을 속이기 어려워진다. 후양제도 도입이 (정부 차원에서 바로 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며 "공사의 품질 문제 말고도 선분양제도는 아파트 단지가 어떻게 구성돼 있고, 주거 환경 등을 모르는 상태에서 모델하우스의 모형만 보고 집을 사는 것이어서 건축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점점 떨어뜨리는 것 같다"고도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아파트 부실시공 문제는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최근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최근 아파트 부실시공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며 대기업 건설사의 선분양 보증을 제한하는 주택도시기금법 개정안을 발의해 이목을 끌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주택도시기금법 개정안은 '공정거래법 제14조'에 따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한 대기업 건설사의 선분양보증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는 2018년도에 총 47조원의 선분양보증을 해준 반면, 후분양대출보증은 54억원, 후분양주택자금대출 실적도 131억원에 불과했다. 

(출처=정동영 의원실)
(출처=정동영 의원실)

건설업계와 부동산업계는 후분양제 도입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후분양제를 실시하면 자금력이 취약한 건설업체들이 무너질 수 있다며 후분양제를 반대해 왔다. 그러나 2018년 선분양보증 총액 47조원 가운데 65%에 달하는 30조원이 삼성물산이나 GS건설, 대우건설, 현대건설 등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속한 대기업 건설사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동영 대표는 “국토교통부가 작년 6월 ‘후분양 활성화를 위해 기금대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음에도 주택도시보증공사의 2018년 후분양 상품실적은 195억원으로 2017년 429억원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면서 “민간부문 후분양제 확대를 위해 대기업 건설사의 선분양보증을 제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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