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중재, 소비자 위한 것 아니다"

 
 
법무법인 서상 김종우 변호사(jwkim@seosanglaw.com)
[소비자경제=칼럼] # 결혼 10년차를 맞은 김갑돌 씨는 괌으로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직접 비행기와 리조트를 예약하고 특히 괌 여행 시 대중교통은 불편할 수 있다는 정보에 어린 아이들을 고려해 차량도 렌트하기로 했다. 모든 예약은 온라인으로 쉽게 진행됐다. 모든 것이 완벽해보였다. 
 
괌은 듣던대로 천국 같은 휴양지였다. 공항에서 차를 수령해 어렵지 않게 숙소로 이동했고, 완벽한 날씨에 해변도로를 렌터카로 질주하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눈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흘러 이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할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아뿔싸! 짐을 다 싣고 공항으로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렌터카의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난처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그 어렵다는 전화영어로 고장사실을 신고했다. 다행히 새 차량을 곧바로 보내준다고 해, 차량을 교체했지만 결국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다음날 비행기는 황금연휴로 만석이었다. 결국 괌에서 만 이틀을 더 체류하게 됐다. 이 때문에 김갑돌은 직장에 결근을 하게 돼 징계처분을 받았고 징계처분을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원형탈모증이 발병했다.
 
김갑돌은 원형탈모증까지 생기자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마음에 렌터카 회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국제적인 사건을 취급하는 법무법인 서상에서 상담을 받았다. 그 결과 소송은 불가능하고 중재를 신청해야만 한다는 답을 얻었다. 중재라면 좋은 말처럼 들리는데 왜 변호사의 얼굴이 어두운 것일까?
 
중재는 좋은 말로 쓰인다. 보통 일도양단의 해결을 추구하지 않고 서로 양보해 화해하도록 도움을 준다는 뜻이다. 그러나 법적 의미의 중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중재와 전혀 다른 뜻을 가진 제도다.
 
법률용어로 위 중재에 해당하는 용어는, 어감이 별로인, 조정(mediation)이나 개입(intervention)이다. (북미정상회담의 조정자, 개입자..) 법률상 제도인 중재(arbitration)는 법적 분쟁 발생시 법원의 판사 대신에 중재인을 선정해 중재인의 판정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사적인 재판제도로, 양보나 화해와는 무관하게 단심으로 일도양단적 해결을 추구하는 제도다. 
 
특정 국가의 법원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힘든 국제적 상거래에서 불가피하게 선택해 운용해온 상인들간의 분쟁해결 수단이다.
 
소비자가 기업과 체결하는 계약을 소비자 계약이라 칭하고, 소비자 계약과 관련한 손해가 발생하면 해당 기업을 상대로 소비자가 소를 제기해 법원에서 배상책임을 확인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소비자 계약에 관련된 분쟁에 관해 소비자 중재로 해결하기로 합의하게 되면 법원이 아닌 중재기관에서 중재로만 배상을 받아야 할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 법원에서 판결을 받을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자 중재는 미국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좋은 어감과는 다르게 소송에 비해 일반적으로 기업에 유리한 제도로 평가된다. 중재를 하게 되면, 그 유명한 뜨거운 커피 사건처럼 일반적인 손해배상 외에 3배의 추가적인 징벌적 손해배상을 받아내는 기회를 상실하게 되는 것일 뿐더러, 중립적인 판사나 배심원들(소비자일 수 밖에 없다)이 결정을 하지 않고 특정한 전문가 집단인 중재인들이 판정을 하게 된다.
 
판사나 배심원들은 배당, 배정을 받아서 일을 하게 되는 반면, 중재인들은 항상 선택을 받아야만 일을 할 수 있는 입장이라, 일반적으로 더 힘이 있는 쪽(기업)의 입장을 현실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항소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중재의 단점(이자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변호사 보수 외에 중재인 보수도 지급해야 하므로(판사 월급, 배심원 수당은 국가에서 나오기 때문에 소송시 따로 부담하지 않는다), 비용적인 문턱도 높다.
 
그럼에도 중립적인 전문가를 직접 중재인으로 선정해 분쟁을 해결한다는 장점(일반적인 소비자에게 가능한 일인지 의심스럽지만)도 있다.  이에 소비자 중재를 선택하는 것이 꼭 금지되어야 할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약관에 의해 사전에 소비자 중재가 ‘강제’되는 경우에 문제는 크게 발생한다.
 
소송(집단소송)을 통해 소비자 계약 분쟁을 해결하려고 하면, 이미 중재 합의를 하였으니 중재로 해결하라며 법원이 소를 각하하게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황당한 일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연방중재법에 위반된다는 연방대법원 판결에도 소비자 ‘강제’ 중재를 제한하는 주법을 도입할 것인지 논란 중이다.
 
위와 같은 소비자 중재는 우리 법체계에는 맞지 않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는데(중재는 상인과 상인 사이의 상거래상 분쟁에만 원칙적으로 적용), 최근 중재법 개정으로 중재 대상 범위가 넓어지면서 이제는 소비자 중재 도입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약관에 의한 소비자 중재가 강요되는 경우 우리 헌법상 소비자의 권리와 충돌하게 되는 문제, 약관규제법상 저촉 문제 등은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후에 소비자가 중재를 선택하더라도 과연 중재로만 분쟁을 해결한다는 것의 의미(소송보다 비싼 비용, 중재인을 선택해야 하고 그 결과를 단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를 소비자가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여전히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아직 우리나라 기업들은 소비자 중재 제도 도입에 적극적이지 않은데, 이유는 우리나라에는 미국처럼 기업에게 천문학적인 배상책임이 인정되곤 하는 배심재판 및 징벌적 배상책임이 어차피 인정되지 않고, 법원이 소비자에게 특별히 친화적인 재판을 하고 있지도 않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심지어는 손해배상을 받기 위한 법률자문 및 변호사 보수도 인정이 안되거나 매우 한정적으로 인정되므로 법률 상담 받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결론: 중재는 좋은 말이지만 법률용어상 중재는 소송보다 비싼 비용을 들여야 하므로 만약 미국에서 중재를 해야 한다면 손해배상 청구를 포기하는 것이 합리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소비자 중재는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법무법인 서상(www.seosanglaw.com, 02-598-2722)은 정확한 법리와 치밀한 판례분석을 통하여 실제적인 해결을 모색하는 로펌이다. 단순한 승소보다는 승소시 의뢰인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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