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주 칼럼] 미신과의 전쟁
[이동주 칼럼] 미신과의 전쟁
  • 소비자경제
  • 승인 2018.05.1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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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드림 가정의학과 이동주 원장

[소비자경제 칼럼] 59세 여자 환자였습니다. 저에게 고혈압과 당뇨로 처방을 받던 환자분이었는데 이 환자분이 어느 때부터인지 병원을 방문하지 않았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약을 받고 있나, 이사를 갔나 하던 차에 얼마 전에 그 분이 오랜만에 병원에 내원하였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그분이 방문하지 않았어도 제가 그분을 기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이 워낙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신앙심이 깊은 분이다보니 같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저에게 많은 동질감을 표하며 신뢰하셨던 분이었기에 제가 특별히 잊지 않을 수 있었던 분이었습니다.

환자 분에게 오랜만에 병원에 찾으신 이유를 물었더니 가슴이 아파서 왔다고 합니다. 계단을 오르거나 힘든 일을 할 때 가슴이 뻐근하고 터질 것 같고 이제는 목하고 팔 쪽으로 통증이 뻗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의사 분들이라면 지금 말하고 있는 이러한 증상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두 아실테지만 이 증상은 지금 당장 이 환자가 병원 문 앞에서 쓰러져 돌아가셔도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심장의 관상동맥이 막힌 상태를 시사하는 전형적인 증상들입니다.

이러한 증상을 말하는 환자는 당장 심장마비로 쓰러질 수도 있는 환자이기 때문에 이런 환자를 만나게 되면 의사도 매우 긴장하게 되고 병원이 분주해집니다. 환자분에게 그러한 상황의 시급함을 설명 드리고 얼른 환자분을 의뢰할 병원을 알아보느라 여기저기 전화하고 있는데 이 환자분이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하는 겁니다.

“선생님, 굳이 제가 심장검사까지 하러 큰 병원을 가야하나요? 요즘 한창 몸이 좋아지고 있었거든요. 제가 좀 더 관리해보다가 좀 더 심해지면 그때 다시 올게요. 제가 제 당뇨와 혈압을 낫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오래 동안 기도했었는데 지난 가을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을 해주셨었거든요.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시는데 황금열매를 보여주시면서 이제는 당뇨 고혈압 약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이 주시는 이 황금열매를 먹으라고 하시는거에요. 그렇게 환상 중에 깨어보니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이 너무나 생생하고 잊혀지지가 않더라구요. 그러고 나서 창밖을 보니까 노란 은행열매가 보이는데 딱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 황금열매처럼 생겼더라구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황금열매가 바로 은행열매구나 라고 확신하고 제가 그때부터 약을 다 끊고 은행열매를 지금까지 꾸준히 먹어왔거든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니까 몸도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아서 좋았는데 단지 가슴이 아파서...”

“아니 세상에 그런 하나님이 어디 있습니까? 먹던 약 끊고 은행열매 먹으라는 하나님이 하나님입니까? 그건 잡신 마귀 사탄입니다!”

환자분이 말을 다하기도 전에 저도 모르게 이렇게 환자 분에게 소리를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소리를 지른 것도 지른 것이지만 이 환자분은 그동안 같은 신앙의 동지인줄 알았던 제가 자신의 신령한 경험과 간증을 그렇게 평가하는 것에 대해 적잖이 놀란 것 같았습니다. 저도 너무 과하게 반응한 것은 아닌가 싶어서 살짝 미안해지기는 했습니다만,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엄중한 상황인지, 그리고 정상적인 기도응답이라면 병원 치료를 통해 정상적으로 치료될 수 있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그렇게라도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환자분을 심혈관 조영술이 가능한 큰병원으로 보내드렸고 다행히도 며칠 뒤 이 분이 저희 병원에 다시 내원하였습니다. 관상동맥이 3개가 다 막혀서 바로 그날 스텐트 3개를 시술했고, 입원하고 있는 동안, 그 병원에서도 돌아가실 뻔 했다, 천만 다행이다 라는 얘기를 많이 들으셨었나 봅니다. 참으로 자기가 어리석었었다는 환자분의 후회를 들으며 그래도 하나님께서 환자분을 살리신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의사들은 사실 인간을 괴롭히는 병과의 싸움보다 이런 미신과 같은 치료와 싸울 때 더욱 좌절하고 기운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요즘 세상에도 이런 일들이 있을까 싶으시겠지만 일선에서 일하시는 의사 분들 중 이런 일 한번쯤 안 겪어보신 분들은 아마 없을 겁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정통적인 종교의 가르침보다 뭔가 색다르고 신비로운 체험에 마음이 끌리는 것처럼 병원에서 권하는 교과서적으로 증명된 치료보다 신비로운 치료, 옆집 아줌마가 효과 봤다는 치료에 더 마음이 끌리는가봅니다. 이 때 느끼는 의사들의 안타까움이 정통 신앙을 가르치는 목회자들이 이단종교나 미신에 빠진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안타까움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욱 의사들의 맥이 빠지게 하는 것은 이런 미신같은 치료를 국가 세금까지 들여가며 지원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국가에서 지원하고 있는 ‘한방 난임 치료 사업’과 같은 사업이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한방 치료를 폄훼할 뜻은 없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한방 난임 치료의 효과에 대한 근거는 당뇨 고혈압치료를 위해 황금열매를 먹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근거도 없는 치료에 아무 검증도 없이 국가의 세금까지 써가며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다는 라디오 광고까지 하고 있는 것을 듣고 있자하니 국가까지 가세한 이러한 ‘미신과의 전쟁’을 언제까지 싸워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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