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어머니 "재조사 가능성 소식에 밤 잠 설쳤다"

4월 2일 종료된 '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 재조사'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20만 명을 넘었다.

[소비자경제=권지연기자] 미투 운동으로 14년 전 묻혀버린 ‘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최근 경찰청이 진상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혀 세간의 관심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사건 경위는 지난 2004년 단역배우 아르바이트를 했던 A씨가 3개월간 담당 반장 등 무려 12명으로부터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하면서 부터였다. 이 때문에 A씨는 이상 행동을 보이며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이후 A씨는 가해자들을 형사고소 했지만 경찰 수사과정에서 또 다시 2차 피해를 당해야만 했다. 수사 경찰관은 A씨에게 가해자들의 성기를 그림으로 그려오라는 등 비상식적인 피해 조사를 벌인 것 외에도 술에 취한 경찰들은 피해 조사를 받은 A씨에게 “12명이랑 잔 사람이 이 아가씨야?”라며 모멸감과 수치를 안겨주기도 했다. 

경찰 조사를 받는 뒤 A씨는 가해자들로부터 지속적인 신변 위협을 받았고 2006년 압박과 회유에 못이겨 고소를 취소했다. 몹시 괴로워하던 A씨는 3년 뒤인 2009년 8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당시 A씨의 나이는 고작 서른 넷이었다. A씨에게 단역배우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해주었던 동생 B씨도 언니를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결국 서른살에 언지를 따라 자살을 선택했다. 두 딸의 연이은 자살에 큰 충격을 받은 아버지도 끝내 뇌출혈로 사망하고 말았다.

홀로 남은 어머니 장 모 씨는 딸 A씨의 성범죄 가해자 12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재판부가 강간 또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이나 강제추행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음에도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아무런 죄 값을 묻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묻혔던 사건이 다시 세상에 알려진 건 2012년 JTBC를 통해서다. 당시 가해자들은 “피해자 A씨가 오히려 꽃뱀”이라며 혐의 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 분노 어린 국민청원 20만 명 넘어...“재수사 가능성에 잠을 못잤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2일 종료된 ‘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 재조사 요청’이 22만 2770명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경찰이 진상조사 전담팀을 꾸리고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전담팀은 당시 수사기록과 사건 자료를 수집하고 기초 사실관계 확인이 끝나는 대로 위법성 여부에 따라 수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 4명 중 아직 현직에 남아 있는 2명과 두 자매의 어머니인 장씨도 조사 대상이다.

장 씨는 <소비자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재수사 할 수도 있다는 소식에 꿈을 꾸는 걸까봐 잠도 안잤다”며 그간 애태웠던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수사 기관을 믿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씨는 아직까지 진상조사 전담팀으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앞서 경찰청 관계자는 “위법성이 드러나면 수사를 검토하겠지만 오래 된 사건이라 공소시효가 만료됐고 당시 피해자 측히 고소를 취하했기 때문에 재조사를 하더라도 처벌 가능성은 단언할 수 없다”고 밝혀 재조사가 사실상 허울로 그칠 수도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에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수사당국의 태도와 무성의에 대해 맹비판했다. 최 전 의원은 “법적으로 자꾸 접근해서 해 봐야 소용없다.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3차 가해다. 국회가 나설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자살’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바뀌어야

여전히 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딸들에 대한 생각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 장 씨는 “진실규명을 확실히 하고 가해자들의 죄를 낱낱이 물어주면 더 좋겠지만 국민 모두가 다 알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더 당부의 말을 전했다. ‘자살’과 ‘자살 가족’에 대한 차가운 시선에 대한 당부였다. ‘자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또 가슴을 후벼놓고 있다는 것.

장씨는 “가까운 친인척들 조차도 내 딸들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귀신 붙을 수 있다며 집에도 오지 않는다”며 심경을 어렵게 털어 놓았다.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 조성돈 교수는 “자살자 가족들은 자살 사실을 공개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장례도 아예 못 치르는 사람도 많다. 자살문제는 우리 사회 공동체가 함께 안아주어야 할 문제인데 이런 경우는 더욱 그렇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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