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재조명 속 공연·행사 열기도 '후끈'

[소비자경제=권지연 기자] 올해로 70주년 맞는 제주 4·3 사건을 두고 역사적 진실에 대해 그 어느때보다 재조명하는 행사와 공연이 계획돼 있다. 

올해 4.3사건 추념식은 '슬픔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내일로' 란 주제로 치러진다.  4.3추념식은 지난 2014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취임 후 처음으로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리는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다. 현직 대통령이 추념식에 참석한 것은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두번째다. 앞서 문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 제주 4·3 사건을 새 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언급한 바 있다.

◆ 잠들지 않는 남도 ‘제주’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경찰,서청의 탄압에 저항과 단선, 단정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해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제주 4.3사건 보고서는 제주 4.3사건을 이처럼 정의한다.

제주 4.3공원에는 4.3사건 희생자 1만 4231명의 위패가 안장돼 있다. 5.18국립묘지에 738기, 4.19묘지에 376기가 안장된 것과 비교해 봐도 그 숫자가 엄청나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에 신고된 희생자 수는 1만 4028명. 이중 여성이 2985명, 10세 이하 어린이도 814명이나 포함돼 암울했던 근현대사의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아 있다. 일각에선 아직까지도 신고 되지 않거나 미확인된 희생자가 더 많을 것으로 보고 희생자 숫자를 최대 3만 명까지 추정하고 있다.

4.3사건의 배경은 복잡다양해 정확히 단정 짓기 어려우나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컸던 비극적인 사건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당시 제주도민은 20만 명에 불과했지만 제주도는 동북아 군사요충지였다. 이 때문에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국 6만여 명이 주둔해 있었다. 해방 후 일본군이 떠나고 피난 갔던 제주 주민들이 돌아오면서 혼란했던 시기에 극심한 흉년과 전염병까지 더해지면서 지역민들의 민생고가 심각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47년 3.1절 발포사건이 터졌다. 3.1절 기념식에 참여한 제주도민 3만여 명이 가두행진을 하던 중 경찰의 말고삐에 어린 아이가 채였다. 경찰이 그 사실을 모르고 지나려하자 주변 사람들이 아이를 구하려 몰려들었는데 경찰은 이를 시위대의 습격으로 오인해 발포하고 말았다. 시민 여섯 명이 숨지고 여덟 명이 중상을 입었다. 희생자 대부분이 무고한 시민이었다.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민관 총파업이 단행됐다. 공무원까지 파업에 동참하는 바람에 제주도의 행정과 기본 시설이 모두 마비될 정도였다. 그러나 미군정은 총파업을 경찰의 발포 때문에 성난 민중의 항의로 보지 않았다. 남로당(1946년 11월 서울에서 결성된 공산주의 정당)의 선동 때문으로 판단한 것.

미군정은 제주도지사를 비롯한 행정 수뇌부를 모두 제주지역민이 아닌 외지인으로 교체하고 경찰과 서북청년단을 동원해 진압작전을 수행해 나갔다. 제주 4.3사건 보고서에는 1948년 4.3사건 발발 직전까지 2500명이 구금돼 고문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제주도민 탄압 중지와 통일정부 수립 촉구 등을 요구하며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 350명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남과 북이 갈라져 각각의 정부를 수립하면서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무차별 진압작전이 시작된다.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단’은 4.3사건의 원인을 ‘3.1절 발포사건’과 ‘외지출신 수뇌부의 편향적 행정 집행’, ‘경찰과 서북청년단에 의한 제주도민 검거와 고문치사’,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의 지서 습격’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1999년 12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드디어 50여년 만에 진상조사와 재평가가 시작됐지만 제주4.3을 '사건' 또는 '항쟁'으로 보아야 할지, '사태'나 '봉기‘로 보아야 할지의 개념 정립 문제를 두고 여전히 갈리고 있다.

아까운 목숨이 그리도 많이 숨졌음에도 현대사에서 크게 조명되지 않고 도외시돼 왔던 것도 사실이다. 제주도민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의 길로 가기 위해 이제라도 4.3사건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제주도민은 한목소리로 ‘4.3특별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킬 것을 국회에 촉구하고 있다.

◆ 전시·공연 등 잇따라.. 제주 4.3사건 재조명 노력

#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오는 6월10일까지 '4.3, 이젠 우리의 역사' 특별전이 열린다.

오는 6월10일까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4.3 이젠 우리의 역사'특별전이 열린다.

 전시는 2003년 정부가 채택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내용과 기초자료에 근거해 사건의 전개 과정을 따라 구성됐다. 국가기록물, 희생자 유품, 예술작품 등 200여점이 전시됐으며 '제주도지구 계엄선포에 관한 건', '수용자신분장' 등 국가기록물 원본 9건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프롤로그', '저기에 있는 봄(1부)', '흔들리는 섬(2부)', '행여 우리 여기 영영 머물지 몰라(3부)', '땅에 남은 흔적, 가슴에 남은 상처(4부)', '에필로그' 순으로 전시를 따라 가면서 사건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

이밖에도 복합문화공간 낙원악기상가 4층 전시공간에서는 4월 29일까지 ‘잠들지 않는 남도-경계에 선 것들’ 추모전이 열린다.

4.3의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요소를 더한 그림책 ‘나무도장’을 설치작업으로 전환한 권윤덕 그림작가의 작품과 4.3을 겪은 한 남성의 이야기를 통해 일본과 제주의 관계를 독특한 시선으로 보여주는 이승민 작가의 작품, ‘빨갱이’라는 용어에 질문을 던지는 김범준 작가의 영상 ‘레드 헌터’등이 전시된다.

4월 13일 오후5시에는 작가들과 함께 작품에 관한 이야리를 나눌 수 있는 ‘아티스트 토크’가 열린다. 대안공간루프, 이한영기념관, 공간41 등에서도 4.3을 주제로 한 화가들의 그림이 전시된다. 서울극장 인디스페이스에서는 3~4일 4.3 70주년 기념영화 ‘끝나지 않는 세월’을 상영한다.

오는 6월에는 4.3을 주제로 한 연극 ‘순이 삼촌’도 5년 만에 공연된다. 4.3사건을 세상에 알린 표제작,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 삼촌’을 원작으로 한 공연은 제주 4.3 사건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순이 삼촌을 통해 4.3사건의 참혹함과 아픔 등을 관객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제주도와 제주도소셜미디어협의회는 13일부터 ‘4370 동백꽃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동백꽃 배지 나눔 행사를 통해 제주 4·3 70주년을 알린다.

동백꽃 배지는 4·3 당시 희생당한 제주도민들의 붉은 피를 연상시키는 동백꽃과 4·3 70주년을 상징하는 숫자 4370의 의미를 담고 있다. 배우 정우성, 안성기, 문소리 등의 연예인들이 4·3 전국화 동백꽃 배지 달기 캠페인에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동백꽃 배지 나눔행사는 13일, 17일, 24일, 27일, 31일 총 5일 동안 11회에 걸쳐 서귀포시 우도 천진항·하우목동항과 제주시청 어울림마당, 제주민속오일시장 등지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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