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우 에세이] ‘거룩함’을 요구하는 시대
[윤대우 에세이] ‘거룩함’을 요구하는 시대
  • 소비자경제
  • 승인 2018.03.17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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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우 발행인 겸 편집인

[소비자경제=칼럼] 30년 전 일이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필자가 어느 날 아날로그 TV 채널을 돌리다가 희미한 영상 한 편을 발견했다. 옆집 전파가 잡힌 것이다. 영화는 '무릎과 무릎사이'. 제목도 이상했지만 내용은 당시 충격적이었다. 넋 놓고 끝까지 봤다.

얼마나 쇼킹을 받았던지 사춘기 시절 한동안 볼펜이 잡히질 않았다. 지금이야 훨씬 강도 높은 영화들이 비일비재하지만 수십 년 전 영화로선 파격적이자 충격적인 소재를 담았다. 옆집에서 보던 방송이 잡히던 시절이었고 한 낮에 19금 영화를 동네 케이블 방송사에서 거침없이 틀어줬던 이상한 때였다. 이런 부끄러운 고백을 한 이유는 ‘거룩함’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중학교 2학년이 된 아들에게 30년 전 무방비 상태에서 된통 당했던 실수를 반복시키고 싶지 않았다. 부회장이 된 아들에게 한마디 했다. “거룩해라, 거룩해라, 거룩하자” 교회나 성당, 사찰에서 늘 듣는 말이다. 그런데 인생을 살다보니 이 처럼 중요한 본질의 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

‘거룩함’이란 말 자체가 왠지 거부감이 들고 어렵다고 느껴지겠지만 거룩함은 가장 근본의 말이다. 이는 깨끗한 것, 정결한 것, 순결한 것, 정직한 것, 정의로운 것이다. 거룩함의 영역에는 보고, 듣고, 느끼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거룩 [holiness], 국어사전에는 ‘뜻이 높고 매우 위대하다’로 정의됐다. 거룩이란 최고의 가치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거룩은 ‘죄 짓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감상하고 나면 거룩과 순결이 어떤 것인지 더욱 와닿을 것이다. 무공해 파란 하늘과 파릇파릇한 새싹, 하얀 백구, 순결한 눈보라, 질서정연한 가을 들녘, 아름다운 대지의 숨결. 주인공 혜원, 재하, 은숙 청춘들의 꾸밈없는 순수한 만남, 마치 천국을 보는 것 같았다. 거룩함이란 이런 것 아닐까.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몸과 마음, 정신이 깨끗할 때 당당하고 자신감이 생기며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것이다. 꿈과 비전이 샘솟고 의욕이 넘친다. 거짓을 분별하며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 가족이 더욱 사랑스러워 진다. 거룩함이 주는 선물이다. 무엇보다 만사가 형통하다.

그런데 거룩함이 무너지는 세상이 됐다. 섹스, 폭력, 동성애, 성폭력, 살인, 마약, 게임, 도박이 사방팔방에 독버섯처럼 퍼져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드라마, 영화, 게임, 웹툰, 유튜브 영상이 어린이, 청소년, 청년들, 어른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 거룩함을 지키기 매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자녀를 훌륭한 인물로 키우기 위해서 명문 입시학원, 해외여행, 좋은 인맥 쌓기에 열을 올리기 전에 아이들의 카톡,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관리부터 시켜야 한다.

철없을 때 SNS에 내던진 한마디가 평생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는 시대이고 재미로 카톡에 전송한 성인영상이나 성인사진 때문에 저작권 위반은 물론 음란물 방조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는 시대다.

거두절미하게 말한 이유는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아이나 아빠나 지금 시대는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거룩함의 습관을 들여야 한다. 복잡한 만남을 줄이고 가족으로 돌아가야 한다. 퇴근하면 술자리는 줄이고 집으로 돌아가 자녀들 포옹해줘라. 주말에 골프다 낚시다 등산이다 자전거 타는 시간 늘리면서 정작 커가는 아이를 놓치지 말고 관심 갖자.

이번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성폭력-성추행 사태에서 보듯 아무리 돈과 명예가 있더라도 한번에, 한방에 무너지는 것을 목도 했다. 부와 명예를 거머쥔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정치, 사회, 문화계 거장이었던 그들은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놓친 것은 거룩의 절실함, 거룩의 중요성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평소 거룩에 대한 가치를 알고 있었다면 추풍낙엽처럼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200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 위대한 왕 다윗은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충신 우리아의 부인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을 전쟁터에 내보내 죽게 하는 끔찍한 죄를 지었다. 다윗 왕은 평소 거룩함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순간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역사의 수많은 위인들도 성적윤리 타락으로 무너진 경우가 무수히 많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거룩함인데 우리는 성인이 돼서야 이래저래 깨지고 무너진 다음에 이 중요한 이치를 깨닫는다. 아니, 어른이 돼서까지, 늙어 죽을때까지 거룩함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떠나는 이도 많다.

이렇게 중요한 것을 우리교육은 왜 외면할까. 그저 수학, 영어, 과학문제 하나 가르치기 급급하다. 우리교육은 오로지 명문 고등학교, 일류대학, 대기업 입사에 목적을 두고 있지 거룩함, 정직, 겸손 같은 항목을 정식 교과과목으로 채택하지는 않고 있다. “알아서 잘 하겠지”, “가르칠게 없다”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입시위주교육은 똑똑하고 능력은 있돼 인성과 윤리의식이 허약한 인물을 양산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삶의 목표와 방향이 부와 명예가 아닌, 거룩으로 설정하자. 남은 인생 돈 많이 벌어 펑펑 쓰는게 목적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까를 고민하자는 말이다.

목사님, 신부님, 스님처럼 살자고 거룩을 강조하는게 아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거룩함을 절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미투운동은 다시 뒤집어 생각하면 거룩운동이다. 남성이 집중대상이지만 이는 여성도 마찬가지다. 남녀노소가 거룩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

종말의 시대, 세상은 갈수록 타락해지는데 대한민국은 미투운동을 통해 반대로 거룩함을 요구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어찌 모순 된 것 같다. 그런데 세상이 더러워 질 때 반대로 깨끗해진다는 것은 대단히 발전적 현상 아닌가. 전 세계에서 구별된 나라로, 차별된 대한민국으로 우뚝 설 것이다. 결코 쉽지 않지만 거룩할 때 능력이 있다. 인생에서 깨달은 불변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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