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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기획] '변호사 상대로 소송한 한 여성의 용기'피해자 "왜곡된 성 인식 참을 수 없었다"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추행'을 폭로하는 장면( JTBC뉴스화면캡처)

[소비자경제신문=권지연 기자] 서지현 검사를 시작으로 한국판 미투 운동이 확산하면서 그간 우리 사회에서 만연한 왜곡된 성에 관한 담론이 한창이다. 이런 가운데 뒤늦게 변호사 상대로 소송을 했던 한 여성의 사연이 <소비자경제>에 접수됐다.

◆ “뿌리 깊은 왜곡된 성 인식에 참을 수 없었다”

제보자 A씨는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로펌에서 번역자로 일했다. 근무기간 2008년 6월부터 2009년 12월 사이, 야근도 잦았고 주말도 없이 일할 때가 많았지만 이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자칭 지성인을 자처하는 이들의 의식 속에 뿌리 깊은 여성 폄하와 가부장적 인식이었다.

A씨에 따르면 사무실에서는 나이 많은 대표변호사들을 비롯해 남자 변호사들은 “나이 60되면 여자랑 자는 게 목표다. 남자 바람핀다고 뭐라고 하면 안 된다. 동물의 왕국을 보는데 수컷 우두머리가 암컷 여러 마리 거느리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고 좋아 보인다.” 등의 말들은 입에 달고 살았다.

룸살롱에서 파트너 고르며 놀았던 얘기도 사무실에서 아무렇지 않게 했지만 어느 누구하나 불편한 기색도 없이 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직 미혼인 30대 후반의 A씨를 두고 환갑이 다 된 대표 변호사가 “내 친구가 이혼남인데 만나보라”는 제안을 했다. 가뜩이나 평소 왜곡된 성 인식에 불편함을 갖고 있던 A씨 입장에서 썩 유쾌할 리 없는 제안이었다.

A씨는 “나이는 많지만 좋은 사람이니 만나보라는 제안이었다면 수치심을 느낄 필요가 없죠. 그런데 자기들끼리 킬킬거리면서 그런 제안을 하는데 평소 그 분들이 나이 많은 여성을 어떻게 보는지를 제가 너무 잘 알잖아요. 수치심을 느꼈죠. 저도 모르게 그 순간 테이블을 탁 치고 일어나면서 불쾌함을 표현했어요.”

그 후 A씨는 퇴사할 뜻을 강력히 내비쳤지만 대표 변호사의 사과에 다시 마음을 바꾸었다.

A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지적 수준이 있는 사람들이라서 잘못을 인정하는구나. 내가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현재 A씨는 그 사과가 진심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부당징계가 잇따랐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그 때부터 말도 안 되는 일로 시비를 걸고, 제가 하지 않은 일까지 덤터기를 씌우는 등, 징계 사유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것 같았어요. 결국 퇴사의 이유를 저의 업무 평판 때문인 걸로 몰고 가려는 듯 했죠.”

A씨는 결국 퇴사했다. 1년이 조금 넘는 짧은 기간 동안 근무하면서 얻은 건, 스트레스성 질환과 손목 염증, 사회고위층에 대한 불신. 씻을 수 없는 상처뿐이었다.

◆ 변호사 상대로 4년간의 소송 끝에 합의 … "차라리 법률시장 개방했으면"

A씨는 시간이 흐를수록 억울함이 커졌다고 호소했다. 용기를 내 소송을 걸기로 마음을 다잡았지만 변론을 맡아줄 변호사를 구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녀는 “변호사 20명에게 다 거절당했다. 어렵게 구한 변호사는 법정 변론 시간에 제 때 오는 법이 없었고 너무 불성실했다. 게는 가재편이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고 전했다.

게다가 “가해자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면 그만이니 그걸 증명해 내는 일은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결국 1심에서 변호사 없이 혼자 싸워 패소했고 2심에서 재판부의 권유로 조정 합의에 응했다.

A씨는 “제가 나중에는 미국정부에 법률시장 개방을 요청하겠다고 했어요. 제가 그냥 꺾이지 않을 것 같고 본인들 위신에 금이 갈 것 같으니까 그나마 합의라도 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찌 생각하면 내가 겪은 일은 현재 대한민국 어느 직장에서나 벌어지는, 별 일 아닌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도층에서부터 뿌리 깊은 잘못된 성 인식부터 바뀌어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 올바른 성인식 없으면 ‘여성 인권’외쳐봐야 허울 좋은 구호 뿐

<소비자 경제>가 접수한 여성들의 사례 중에는 소송까지 가지 않았을 뿐, 비슷한 사례가 많다. 대부분이 직장 내 성희롱 발언에 침묵해야 했던 경험, 무의식중에 여성을 성 상품화하는 직장 내 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 회식자리에서 직장 상사의 불편한 스킨십에 고민하는 신입사원의 사연 등이다.

또 다른 제보자 K씨는 “지금 이 순간도 나는 내 실명을 거론하지 못한다.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가 오히려 숨는 사회구조. 법의 테두리 안에서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해시태그로 고발하는 연대의식에 의존해야만 하는 현실을 다시 곱씹어 볼 때다.”라며 심경을 전했다.

 

권지연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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