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우 칼럼] ‘남산 안기부,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아서’
[윤대우 칼럼] ‘남산 안기부,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아서’
  • 소비자경제
  • 승인 2018.01.3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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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우 발행인 겸 편집인

[소비자경제=윤대우 기자] 장안의 화제작 ‘1987’을 보고 영화 속에 등장한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에 직접 가보고 싶었다. 창피한 고백이지만 1987년 6월 항쟁의 분수령이 된 그곳을 여태껏 한 번도 못 찾았다.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롯데리아 본사 바로 옆 건물이란 사실도 최근에 알았다.

동시에 남산 국가안전기획부 옛 5별관(대공수사국) 건물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잘 알다시피 치안본부의 상급 기관은 안기부였다. 영화 속 박 처장(김윤석 분)에게 지시했던 문성근 역할은 바로 ‘나는 새로 떨어뜨렸다’는 안기부장이다.

경찰청 인권센터(구 남영동 대공분실) 모습. (사진-글=윤대우 기자)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수많은 고문이 자행된 가운데 안기부 대공수사국에서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비명을 질렀을까.

꼭 영화를 봐서가 아니라 역사의 암울했던 당시 현장을 목도(目睹)하고 싶었다. 이러한 마음을 먹은 후, 보름이 지나서야 시간을 냈다. 하필 최강 한파라는 영하 16도의 날씨에 말이다.

먼저, 눈이 쌓인 남산을 찾았다. 안기부 옛 건물은 한남대교 방향 남산 1호 터널 입구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 본부 건물로 활용됐던 곳은 현재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유스호스텔로 변모했다.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 본부 건물로 사용된 곳 현재는 
서울시가 유스호텔로 운영하고 있다 (사진-글=윤대우 기자)

본관 입구 오른쪽 작은 비석에는 ‘한 때 국가안전기획부의 본부로 사용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그리고 비석 말미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댓글부대를 운영해 논란을 야기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인수한 것이라는 서명이 적혀 있었다.

본부 건물 정면에서 왼쪽으로 살짝 방향을 틀자 인공 터널이 보였다. 바로 ‘소릿길’이다. 이 길은 84m의 터널로, 길이는 짧았지만 겨울 남산의 황량함이 더해져 음산한 느낌이 들었다. 안기부에서 고문을 받았던 피의자들이 철문 소리, 타자기 소리, 물소리, 발걸음 소리, 노랫소리가 아직도 들린다는 곳이 바로 이 터널이다. 

이 터널을 지나면 악명 높은 안기부 5별관이 나온다. 
(사진-글=윤대우 기자)

터널을 지나자 4층짜리 건물이 나왔다. 서울시 남산별관이다. 정문 왼쪽에 있는 녹슨 푯말에는 ‘옛 중앙정부(국가안전기획부) 제5별관(대공수사국)이라는 표식이 적혀 있었다. 안내문에는 ‘간첩혐의 등을 수사하던 대공수사국이었으나 조작간첩도 만들어낸 곳입니다. 건물 앞으로 대형 철제문이 달려 있던 터널이 뻗어 있습니다’라고 설명됐다.

필자는 과거 충무로에서 회사를 다닐 때 한번 이곳을 온 적이 있다. 남산을 산책하기 위해 우연히 왔고 당시 선배가 ‘옛 안기부’ 건물이라고 말해줬다.

안기부 5별관 오른쪽으로 멀리 남산 타워가 보인다. (사진-글=윤대우 기자)

그 때 건물 색깔은 남영동 대공분실과 비슷한 검 붉은색이었다. 지금은 노란색으로 페인트칠해져 당시의 그림자를 지우려했다. 민주화 운동의 대부 고 김근태 씨를 비롯해 민주화 열사들,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된 이들이 남산 안기부 5별관 지하실에서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이어 찾아간 곳은 남영동 대공분실(경찰청 인권센터)이다. 남산에서 이곳까지는 자동차로 16분 거리다. 안기부 대공수사국이 남산 외진 은밀한 곳에서 고문을 자행했다면 남영동 대공분실은 사방팔방 건물로 둘러싸여 있는 서울 한복판에 있었다. 이곳은 업무 특성상 ‘OO 해양연구소’란 간판으로 철저히 위장 되었다. 

입구에 도착했을 때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정문 옆에 있던 큰 철제문이었다. 육중한 갈색문은 당시 정문을 막고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북태평양의 매서운 칼바람이 얼굴을 갈기갈기 찢는 듯 했다. 발걸음을 옮겨 인권센터 내부로 들어갔다.  

남산 대공분실 '나선형 계단' 모습. 회전-경사각도가 매우 커 정상적으로 올라가도
 어지럽다. (사진-글=윤대우 기자)

인권센터 본관에 들어서자마자 왼쪽 갈색 나선형 계단이 시선을 끌었다. 박종철 군을 비롯한 수많은 고문 피의자들은 이 계단을 통해 1층에서 5층까지 올라갔다. 계단의 회전 · 경사각도가 워낙 심해 정상적으로 올라가도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당시 피의자들은 자신이 몇 층에 있는지 위치 감각을 상실했다고 한다. 그동안 개보수를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진 속 40여년 전 설계된 그대로 보였다. 계단은 매우 튼튼했다. 

5층에 올라서자 연두색 철제문으로 된 조사실이 보였다. 5층 조사실은 15개 방이 있었고 4.09평 공간에 책상과 의자, 침대, 욕조, 변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각 방마다 붉은색 욕조 터가 있었다. 모든 방에서 물고문이 자행 됐다는 뜻이다. 현재는 박종철 군이 사망한 509호만이 물고문을 한 욕조를 갖춘 모습이고 다른 곳에는 욕조가 없었다.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조사실은 15개 방이 있었고 4.09평 공간에 책상과 의자, 
침대, 욕조, 변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진-글=윤대우 기자)

창문 폭은 좁고 위아래로 긴 창문 2개만이 이중창으로 나 있어 밖을 내다보기도, 비명소리가 새어나기도 어렵게 돼 있다. 건물 내부를 본 후 다시 건물 밖에서 대공분실을 보면 왜 유독 5층만 길고 얇은 창문이 일렬로 늘어섰는지, 위 아래 창문 사이즈가 왜 불균형한 모습인지를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건물을 왜 이렇게 설계 했을까. 의미를 깨달으니 안타까웠다.

남산 안기부 건물들이나 남영동 대공분실 모두 천재 건축가 김수근씨 작품이다. 그는 타워호텔, 자유센터, 한국일보, 정동빌딩, 치안본부, 르네상스 호텔,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등 국내 대표 건축물을 설계한 인물이다.
 
자신이 최선을 다해 설계한 건물이 고문의 근거지로 사용될지 김수근 씨는 처음부터 알았을까. 이와 관련 과거 교수신문에서 소개된 박길룡 국민대 교수는 "김수근 작품이라 해서 모두 뛰어난 건 아니고 '졸작'도 있다. 보안분실이 김수근의 것으로 알려지지 않은 건 대표작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정인한 한양대 교수도 "김수근은 치안본부를 설계했던 건축가로 남영동 보안분실도 패키지로 설계했을 것을 짐작되지만, 치안본부 안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들이 비난 받을 사항이지. 건물 자체를 두고 시비를 걸 일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1976년 남영동 대공분실이 건축될 당시 모습. 사진에는 나선형 계단과 롯데제과 앞 남영동 
대공분실이 만들어지는 현장이 보인다. (출처=경찰청 인권센터)

반면 일부 건축평론가들은 김수근과 당시 군사정권과의 협업관계로 이 문제를 접근한다. 김수근은 당시 경쟁 관계였던 건축가 김중업과 달리 군사정권과 긴밀한 사이었음은 세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김수근 씨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발생 7개월 전, 87년 6월 항쟁 1년 전 간암으로 숨을 거뒀다.

30년 전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인권유린의 현장을 탐방하고 느낀 것은 결국 사람이건, 건물이건, 어떻게 사용 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때는 몰랐는데, 당시에는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시간이 흘러 역사 속에서 냉혹하고 처참한 평가를 받기도 한다는 것을.

다만, 앞으로 우리 모두가 어떤 일을 할 때 “이것이 국가를 위한 길인가”라고 고민하기 앞서 “이것이 과연 우리 국민을 위한 길인가?”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국가는 때론 인권을 유린하고 국민을 억압하지만 국민은 스스로를 결코 배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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