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 250만원 중 30~40% 파견업체 수수료 뜯기고 은행 잡무 시달리는 쥐꼬리 인생"

시중은행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청원경찰은 은행 비정규직 직원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으면서 번호표 뽑기부터 청소, 심부름까지 온갖 잡무를 맡고 있다.(사진=소비자경제)

[소비자경제=권지연 기자] 문재인 정부 들어 큰 이슈 중 하나는 '비정규직 정규직전환'이다. 이러한 정부 기조에 편승해 시중은행들도 비정규직 무기계약직을 정규직화 하는 추세다.

그러나 시중은행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청원경찰들은 경비업체에서 파견된 용역 직원이다보니 항상 언제 해고될 지 모르는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무늬만 은행 청원경찰이지 단순 노무자"

서울의 한 시중은행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청원경찰 K씨의 주된 업무는 은행직원과 고객의 보안 및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하지만 금전 입출금과 대출 등 기본 은행 업무 외의 잡다한 업무는 K씨의 차지가 된다.  

은행 창구 앞에서 순번을 기다리는 대기고객 응대는 물론, 안내와 우편물 정리, 동전 교환 등이 모두 K씨의 몫이다. 심지어 은행 직원이 지시하는 물건 배달이나 지점장 운전까지 해야 한다.

K씨는 "지점장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른데 지점장 운전까지 시킨 적도 있다"면서 "차 키 던지면서 기름 넣어 와라. 세차해 와라 등 심부름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 "(나는) 은행 '시다바리(일본어에서 유래된 하수인 또는 보조라는 뜻)'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K씨는 초과 근무 시간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초과 근무에 대한 수당을 제대로 챙겨 받지는 못했다. 그는 "그나마 욕이라도 안 먹으면 다행"이라고 하소연했다. 

"무조건 반말하고 욕하는 사람 있어요. ‘번호표 가져와, 커피 타 와.’ 이런 지시나 반말은 예사고요. 대기가 길어지거나 ATM기 통장이 걸려서 안 빠지면 저희에게 짜증내고 '이XX야' 하며 욕을 하는데 이런 일이 가끔 있는데 아니에요. 일주일에 3,4일이나 돼다보니 거의 일상이 됐어요."

K씨의 월 급여는 150만원이 조금 넘는다. 일을 처음 시작한 5년 전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은행에서는 250만원 정도를 책정해 경비업체에 주면 업체가 수수료로 30-40%를 떼고 나머지 금액을 K씨의 통장으로 넣어주는 형식이다.

가장 난감한 것은 고객들이 금융관련 업무를 요청할 때다. 경비업체와 도급계약을 맺은 은행이 청원경찰에게 ATM기업무, 고객안내업무, 우편업무 등을 시키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K씨는 청원경찰들에게도 이런 업무는 절대 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오지만 현장에서는 지키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결국 지침을 어기면 귀책사유가 대부분 청원경찰들에게 돌아간다는 것.

"스마트폰 사용을 잘 못하는 어르신들이 도와 달하고 하면 해줄 수밖에 없는데 사이트 자체가 보이스피싱 사이트인 경우도 있어요. 분별하기 쉽지 않아요. 그걸 모른 채 송금을 도왔고 그래서 고객이 수백만 원을 잃었는데 청원경찰이 90%, 은행이 10% 물었다고 들었어요. 금전 피해 보상도 청원경찰이 하는 건데요. 그렇다고 (금융관련 서비스를) 해주지 않으면 서비스가 엉망이라고 문제 삼기 때문에 안 해줄 수가 없죠" 

K씨는 금융사고 발생 시 청원경찰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경우도 비일비재할 뿐더러 ATM기에 낀 고객 통장을 직접 빼주었다가 최근 일자리를 잃은 청원경찰도 있다며 울분을 삼켰다. 이어지는 K씨의 말이다.

"은행에서도 ATM기 업무는 금융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절대 하지 말라고 하는데 은행 직원들은 창구에서 고객 응대 하느라 정신이 없고 고객들은 빨리 처리해달라고 저희에게 독촉하니까 해 줄 수밖에 없을 때가 많아요. 이번에도 그것 때문에 모 은행 청원경찰 하나가 일자리를 잃었다고 들었어요. 너무 억울하죠. 업무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놓고 자기들은(은행) 시킨적이 없다는 식인 건데 너무하지 않나요?"

K씨는 노동조합 가입을 알아봤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고 말했다. K씨 처럼 오래 근무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는 "처우가 이렇다보니 대부분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해 오래 일하지 않는다"며 씁쓸해 했다. 

K씨는 "국민의 재산을 맡아 보관하는 중요한 업무를 하는 은행에서 방호 업무를 하는 청원경찰을 직고용하지 않는 것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은행들 "청원경찰 우리 직원 아니다" 선긋기

과거에는 은행들이 청원경찰을 직접 채용하기도 했다. 그러다 IMF를 거쳐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부분 협력업체와 도급계약을 맺고 파견된 인력을 간접 고용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금융통계정보시스템 지난해 자료에 따르면 은행에서 근무하는 파견근로자 숫자는 농협은행이 3천228명으로 가장 많았다. 2위는 국민은행(2천444명), 3위가 하나은행(2천175명)순이다.

은행에 속한 파견 근로자는 대부분이 지점 한 곳당 1-2명씩 배치된 청원경찰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은행권이 청원경찰 고용 형식을 바꿀 당시 경비협회의 로비가 크게 작용했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은행에서는 청원경찰들의 처우 개선을 신경 써야 할 이유가 없다. 청원경찰이 금기시 되어 있는 고객의 금융 업무를 직접 도와 일자리를 잃더라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은행은 계약을 맺은 경비업체에 청원경찰을 복귀조치 시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청원경찰들은 실제 보안 업무 수행에 무리가 있는데다 가스총 소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사진=소비자경제)

한 은행 관계자는 "청원경찰은 업체 소속이니 우리가 관여할 바는 아니고 복귀조치 후 청원경찰의 거취 여부는 아는 바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한편 청원경찰 227명을 고용하고 있는 한 경비업체 관계자는 "청원경찰이 복귀조치를 받으면 진위여부를 파악해 근로계약에 따라 조치를 취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원경찰이 은행에서 부당한 업무를 지시를 받는 경우에는 간혹 업체가 나서서 항의 방문하는 일이 있지만 통념상 그냥 묵인한다고 털어놓았다.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청원경찰 8900명이 소속된 청원경찰협의회에서 처우개선을 담당하고 있는 김영출 특별위원장도 "대부분 청원경찰하면 은행 청원경찰을 떠올리지만 실상 시중 은행에는 청원경찰이 거의 없기 때문에 현재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청원경찰제’는 국가기관 또는 공공단체의 장이나 중요시설 또는 사업장의 경영자가 청원주가 되어 소요경비를 부담하고 경찰관의 배치를 청원하는 제도다.

경찰청에서 배치된 청원경찰은 경비구역 내에서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른 경찰관의 직무를 행하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은행에서 근무하는 청원경찰들은 정확히 경비원, 혹은 로드매니저로 불려야 맞는 만큼 청원경찰협의회에도 소속될 수 없다.

김영출 위원장은 "간혹 국가직 청원경찰 시험 보러 오는 사람들 중에 은행에서 청원경찰했다고 경력인정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청원경찰 경력이 인정 되려먼 경찰청에 신분이 청원경찰로 등록돼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은행에서 근무한 분들은 경력이 없는건데도 본인들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면서 "자치단체 공채 시 각 도마다 서너 명 이상씩 경력 인정이 안된다는 것을 모르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전했다.

노재찬 노무사는 "도급계약을 맺고 고용한 청원경찰에게 은행에서 계약서에 게재돼 있는 내용 외 잔 업무를 직접적으로 시킬 경우 위장도급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하지만 소송판례를 봐도 건마다 판결이 달라서 현행법상으론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 청원경찰 스스로 거부 의사를 확실히 밝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목소리를 내기는 힘든 것을 이해한다"면서 "어느 직종이건 고용안정이 현실적으로 이뤄지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경비 보안업무에는 구멍

국가직이나 지방직, 공사 청원경찰의 경우 청원주가 채용 후 경찰청에 배치 승인을 의뢰하면 경찰청에서는 신원조회를 거쳐 1년 이내에 2주 동안의 경찰 교육을 시키도록 돼 있다. 하지만 사설 경비업체에 소속돼 있는 청원경찰은 간단한 경비신입교육을 받는 것이 전부다.

취재를 위해 청원경찰 구직을 직접 시도해 본 결과, 경비업체 중에서는 운전면허 취득 시 받는 신체검사로 자격여부를 판단하는 곳도 있었다.

<취재진>이 한 은행경비업체 인사 담당자에게 '자격 기준에 운전면허증이 없으면 청원경찰을 할 수 없느냐'고 묻자, “가스총을 소지해야 하는 만큼 적격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라며 건조한 답변만 되돌아 왔다.

저작권자 © 소비자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