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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주 칼럼] '배부른 돼지의 이야기'

해드림 가정의학과 이동주 원장

[소비자경제신문=칼럼] 어느 정권에서나 의사들은 돈만 밝히는 나쁜 놈들이라는 인식은 공통적인 프레임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보니 의사들의 주장은 언제나 ‘배부른 돼지’들의 투정으로 여겨집니다. 

얼마 전에 광화문에서 문재인 케어를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회가 있었습니다만 이를 보도하는 신문기사의 댓글들을 보면 이러한 국민들의 정서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너희들은 도대체 돈을 얼마를 더 벌어야 만족하겠느냐’는 댓글들이 수두룩하며, 국민들 의료비 싸게 해주겠다는 정책인데도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네들 수입이 줄까봐 집단행동까지 하는 아주 파렴치한 집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문재인 케어에 대응하는 의협의 모습에 여러 가지로 실망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무조건 의사들 얘기를 이러한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들도 잘 납득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의사라서 편드는 것이 아니라 나름 의미 있는 주장들이 있음에도 의사들 얘기라면 잘 생각해보려고도 하지 않고 무조건 배부른 돼지들의 푸념정도로 매도하는 것에 대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정말 문재인 케어를 반대하는 의사들, 문재인 케어가 실행되면 앞으로 지금처럼 많은 수익을 거두지 못할까봐 이렇게 반대하는 걸까요? 그날 모인 3만명의 의사들이 과연 돈독이 올라서 그렇게 의료 수가 정상화를 외치는 걸까요? 오늘은 이 얘기를 한번 해볼까 합니다.

제가 의대 3학년 때였습니다. 내과 병동 실습 중에 있었습니다. 실습이 끝날 무렵 당시 레지던트였던 한 선생님이 병아리 같은 저희들에게 했던 말씀이 지금도 아주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학생 선생님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의사 말고 다른 직업 알아보세요. 의사 좋던 시절은 다 지났어요. 난 이미 레지던트까지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이러고 있지만 선생님들은 지금부터 다른 것 해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잖아”

20년이 지난 지금 그 레지던트 선생님은 어디서 뭘 하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그 때 그 학생들은 그 선생님의 예상과는 다르게 여기저기서 잘 살고 있습니다. ‘의사 좋던 시절 끝났다’라는 말은 그 후에도 여러 선배들에게 여러 경로를 통해 적지 않게 듣게 되었던 말입니다만 생각보다 그 ‘시절’은 오래가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하루 진료한 돈으로 땅보러 다녔다는 그 옛날 의사 선배들의 시절에는 비교할 바가 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의사들은 지금도 보통 수준보다는 나은 삶을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저수가에도 의사들은 결국 살아갈 길을 찾아내고 어느 정도 자신의 수입을 유지하는 적응력을 보여주며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똑똑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마저도 의사들이 저수가로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면서 왜 의대 입학 경쟁률은 내려가지를 않냐며 의사들이 아직 살만하면서 엄살떠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을 하던데 그것은 이러한 의사들의 적응력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아무리 지금보다 더 저수가가 되어도 의사라는 직업의 인기는 그렇게 쉽게 바닥을 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말도 안되는 진료라고 하는 ‘3분 진료’를 ‘30초 진료’로 바꿔서라도 의사들은 자신의 수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의료가 망가지면 망가졌지 의사는 쉽게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유시민의 말대로 의사들 인기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의대입시 경쟁률까지 낮아질 정도가 된다면 이미 대한민국 의료는 회생불가능 상태가 된 후일 것입니다. 의사들은 어떻게든 살 수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의사의 생존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입니다. 의사들이 저수가 문제로 아우성치는 것이 그저 지금보다 돈 좀 더 벌어보겠다는 투정만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문재인 케어가 실행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분들이 문재인 케어가 되면 의사들이 망할 것이 두려워 저렇게들 반대하겠거니 생각하시겠지만 의사들은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나갈 길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더군다나 문재인 케어는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 해주겠다는 정책입니다.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의사들 입장에서 비급여를 급여화 해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너무 비싸서 못 사먹던 10만원짜리 스테이크를 서민들도 모두 먹을 수 있도록 국가에서 7만원씩 보조해주겠다는데 식당 주인 입장에서 반대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간 스테이크는 비싸서 쳐다도 못보던 사람들까지 모두 사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저 수익의 측면에서 본다면 식당주인에게는 너무나 감사한 일 아닌가요? 그러함에도 의사들이 반대를 한다면 “이 배부른 돼지들이 그저 돈 더 못 벌어서 이러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배부른 돼지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세심하게 귀 기울여 보아야 할 이유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뭘까요?

공교롭게도 이렇게 문재인 케어에 대한 논란이 있는 가운데 의료계에는 크게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국종 교수와 북한 귀순 병사로 드러났던 중증외상센터의 문제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집단 사망사건이 그것이었습니다. 이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해지고 있지만 정말이지 이 사건들만큼은 사람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두 사건만큼 배부른 돼지들이 그간 말하고자 했던 의료계의 문제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은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잊어버리면 언젠가 반드시 더 큰 문제로 돌아올 이 문제들은 우리에게 무엇이 정말 의료계에 시급한 문제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증외상센터나 중환자실처럼 필수적인 의료서비스가 병원에서 돈이 되지 않아서 외면 받고 담당 의사조차 구할 수 없는 현실, 5명이 해야 할 일을 2명이 커버하고 있는 기형적인 의료 현실이 세계최고라고 자화자찬하는 한국 의료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이미 너무나도 많이 왜곡되어버린 의료행태들, 의료전달 체계의 붕괴 등 너무나 심각한 문제들이 쌓여있는데도 이런 문제들을 그냥 놔둔 채 30조라는 돈을 의료비를 더 싸게 만드는데 사용한다는 것에 동의하기 힘들다는 것이 의사들이 문재인 케어를 반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의 핵심을 말하기 위해서는 의료수가의 문제를 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배부른 돼지의 푸념처럼 들릴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의료 수가의 정상화를 외칠 수밖에 없는 의사들의 고뇌를 이제는 진지하게 들어줄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사건은 결국 의사들의 업무과실 치사로 결론을 짓고 마나봅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 내놓는 ‘신고체계 강화’, ‘의료진 자격강화’같은 대책을 보고 있자니 진정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게 대책인가요? 결국 문제의 원인이 되는 시스템의 문제는 건드리지도 않고 배부른 돼지 몇 명 죄인 만드는 것으로 문제를 덮어버리는 이 현실에 절망감을 느낍니다. 바로 이러한 현실이 배부른 소리한다고 할까봐 배고프다는 말도 함부로 못했던 ‘배부른 돼지’들이 가장 고통스럽게 배고픔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공감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소비자경제신문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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