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노동 위한 건강한 토론 필요해

[소비자경제=권지연 기자] 최근 가사 노동자의 권익보호와 고용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새 정부 들어 각계각층에서 노동개선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간 관행적으로 이어온 잘못된 노동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논쟁은 꽤 오랫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다만 그 논쟁의 주최가 현장노동자와 소비자가 돼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지난해 9월20일부터 나흘간 열린 한국비정규노동박람회에서 서울특별시와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전태일재단 주최로 가사노동자의 고용문제를 다룬 토론회가 열린데 이어 12월 26일 국무회의에서 ‘가사근로자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심의, 의결됐다. 

◇ 가사노동시장 정상화 및 권익 보호 위한 마중물

가사 근로자들의 법적원리 보장은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당시부터 제외돼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가사노동서비스는 50년 넘게 직업소개소를 통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번 법률안은 정부가 가사 서비스 제공 업체를 인증하고 이 업체가 가사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4대보험, 연차·유급휴가, 퇴직급여 등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가사근로자의 자발적 의사나 경영상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주 15시간 이상 근로할 수 있도록 보장할 방침이다.

또 제공기관과 이용자간에 공식적인 서비스 이용계약을 체결하고 서비스 종류, 시간, 요금, 휴게시간, 안전 등 가사근로자 보호에 관한 사항이 게제된 계약에 근거해 서비스가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것.

고용노동부는 '표준이용계약안'을 마련해 고시할 예정이다. 법률안이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이르면 2019년부터 시행된다.

◇ 가사노동자들, “가보지 않은 길 염려 반, 기대 반”

조인하(55세) 씨가 가사노동자로 일한지는 7년 8개월이 지났다. 유난히 일손이 빠른 조 씨지만 고객들의 끝없는 요구에 정말 너무하다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조 씨는 “평수에 따라 일당이 달라지는데 제가 가는 집들은 다 넓은 평수들이거든요. 제가 손이 엄청 빠른 편인데 너무 많은 양의 일감을 주니까 너무 힘들어요. 관절도 나빠지고 어깨도 아프고 몸에서 이제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산재보험하나 적용이 안 되잖아요.”라며 그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현재 일을 나가는 집은 일주일에 4곳이다.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조 씨가 받는 돈은 한 달에 90만 원 정도 수준이다.

조 씨는 “노동자로 인정받고 법적인 보장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고 가정 관리사란 제 직업을 당당히 밝히고 떳떳이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사노동자 고용개선법률 개정안에 기대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론 걱정도 앞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조 씨는 “지금도 경제가 어려워서 가사근로자를 두 번 부르던 것을 한 번으로 줄이는 고객들이 있는데 사용료가 늘면 비용부담 때문에 고객들이 줄고 혹여 일자리도 줄지 않을까 염려 된다”고 말했다.

새로운 방식이 도입된다해도 기존 직업소개소에 의한 공급 방식도 병존하는 형태여서 가사근로자들의 우려처럼 기존 가사 종사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가사노동자들의 고용개선이 이뤄지면 4대 보험료와 최저임금까지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요금상승은 불가피하다. 정부는 이용요금이 현재 시간당 1만원 수준에서 1만2000원 수준으로 20% 상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이를 억제할 부과제면제, 인센티브 지급 방안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유럽 주요국들도 서비스 이용액의 일부를 세액공제해준다. 스웨덴·프랑스는 50%, 벨기에 30%, 독일 20% 등이다.

노동부는 법 제정 후 1년 간 시행 유예기간을 활용해 세제혜택·사회보험료 지원 등 활성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 소비자, “정부지원에 피해보상 책임져 준다면 환영”

맞벌이 부부 최소연(38세), 이용기(42세)씨는 “현재 정부가 비용 상승 억제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노동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분들을 정상적인 노동 체계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이고 그 분들의 노동이 안정되면 이용하는 입장에서도 좀 더 믿고 일을 맡길 수 있을 테니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2015년 전국고용서비스협회의 가사서비스 이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가서서비스 이용자들은 믿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면 이용료 인상을 수용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사서비스 제도개선 시 현재 1만원 기준 대비 수용 가능한 요금 인상폭으로 1000원 미만을 응답한 사람이 33.1%로 가장 많았고 1000~3000원(29.1%), 3000~5000원(22.8%), 5000원 이상(12.1%)의 응답이 그 뒤를 이었다.

소비자 입장에서 가장 환영할만한 부분은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이 서비스 이용 중 발생할 수 있는 서비스 관리 및 피해보상 책임을 져준다는 것이다.

그동안 가사근로자 이용 시 물건이 파손되거나 하는 일이 발생해도 소비자들은 하소연 할 곳이 없었다. 

가사노동자협회 최영미 대표는 “소비자기구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현장 단체들의 요구입니다. 가사도우미나 베이비시터를 썼는데 물건이 파손되거나 불이익을 받아도 그동안은 피해를 신고할 기관조차 없었어요. 소비자보호원에서도 돌봄서비스는 다루는 영역이 아니라서 어찌할 방안이 없거든요.”라며 가사근로자 고용개선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 불법파견이다 vs 본질 훼손 말라

가사도우미 권리를 법으로 보호해 직업안정성을 높이고, 이용자는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지만 일각에서는 자칫 가정집이 ‘불법파견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가사업무의 특성상 이용자가 가사도우미에게 근로 지휘를 할 수밖에 없는데 정부가 개정한 법률대로라면 가사근로자의 지휘감독을 서비스기관이 하게 되는 셈이다.

이에 국내 한 일간지는 파견법에 저촉되는 것이 분명한데 정부가 파견법 개정과 같은 정공법을 택하지 않고 특별법을 쓰고 있으며 가사노동자들의 파업의 길만 열어준 셈이라고 보도했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와 YWCA는 성명을 내고 현장 단체의 의견은 듣지 않고 일부 교수들의 주장을 빌미로 가사근로자 고용개선법의 취지와 이용자인 국민의 뜻을 악의적으로 왜곡했다며 항의했다.

사상초유의 일이기 때문에 얼마간 시행착오는 따를 수 있지만 해당 일간지가 ‘노조’ ‘파업’과 같은 용어로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어 결국 노조와 노동자의 권리를 부정적으로 인식시키고 확산시켜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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