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우 발행인 겸 편집인

[소비자경제 칼럼] 창 밖으로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알록달록 오색찬란한 나뭇잎들이 자신의 옷 자랑하기 여념이 없다. 살고 있는 아파트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4계절 나무들의 변화를 생생히 관찰할 수 있다. 안방 창문 너머 감나무에 주먹만한 붉은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장석주 시인이 쓴 ‘대추 한 알’이 떠올랐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광화문 교보생명 본사 현판에 걸려 있던 시를 처음 접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멋진 시 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태풍으로 우리나라에 큰 피해는 없었지만 아마도 저 ‘감’은 비바람 수십 개, 천둥 몇 개, 무더위 한다발을 맞이했을 것이다. 어디 붉은 감만 그랬겠나. 소나무, 은행나무, 밤나무, 산과 들녘의 모든 생물들이 그런 경험을 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기쁨과 슬픔 몇 개씩은 가슴에 담고 있다.

살아있는 모두가 삶의 과정에서 비바람 천둥 몇 개를 맞는다. 오색으로 물든 이 땅 산하 만물들은 오랜 풍파를 견디고 견뎠다. 그래서 저무는 이 가을을 우리는 더욱 즐겨야 한다. 가을을 만끽하기 위해 굳이 설악산, 오대산, 지리산, 한라산을 갈 필요는 없어 보인다. 집 앞 모든 곳이 가을 정원이자 국립공원이다.

지구상에서 4계절이 뚜렷한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축복의 땅에 살고 있다.

직장인들은 이 무렵,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내년 사업계획서를 준비한다. 고3 학생들은 수학능력시험으로 결실을 맺게 된다. 농부와 어부들은 산과 들녘, 바다에서는 풍성한 수확을 거둘 때다.

감사할 것 많은 계절, 우리는 감사에 인색하다. 뉴스와 신문을 보면 매일 싸우는 이야기뿐이다. 이것도 불만 저것도 불만 모두가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뉴스나 신문에서 독자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비율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찾아보면 좋은 일도 많을 텐데 말이다. 뉴스란 Bad News도 있지만 Good News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 언론들의 패러다임이 변화되어야 한다.

감사란 악 조건에서 찾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평가되는 다윗은 그 아들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했어도 감사의 노래 ‘시편’을 지었다. 그리아니하실찌라도 감사하다는 것이 다윗의 철학이다.

늘 가난해도 행복했던 시인 천상병은 이런 시를 썼다.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 천상병-‘행복’ ]

천상병 시인의 일생은 가난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어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가난은 어쩔 수 없는 고통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물질의 풍요로움 속에서는 의식의 깊은 곳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생을 소풍처럼 살다 갔다.

그렇다. 우리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불평불만이지만 잠시 주변을 둘러보면 감사할 것 뿐이다. 편의점 마트가 사방팔방 있어 감사하고 스마트폰이 있어 감사하고 화장품과 옷가게가 넘치니 감사하다. 물을 틀어도 틀어도 멈추지 않아 감사하고 전기 걱정 없어 감사하다. 적어도 현재까진 말이다. 의, 식, 주가 완벽히 해결되는 나라니 참으로 감사한 일 아닌가.

종교의 자유가 있어 교회를 가고 싶으면 어디든 찾을 수 있다. 언덕 위 양지바른 곳엔 항상 성당이 보인다. 가을 풍경을 배경 삼은 절이 산 곳곳에 있다. 종교로 인한 전쟁이 없으니 이 또한 감사한 일 아닌가.

청년들이 많아 감사하다. 필자 시대 상상도 못했던 새벽 일에 도전하는 청년들이 많아 졌다. 편의점이나 주유소에서도 일하지만 반도체 공장이나 택배회사에서 야간에 일하는 청년들이 많다.

과거에는 남성 비율이 높았는데 이젠 여성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잠 안자고 일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출근할 때 귀가하는 청년들을 대할 때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필자의 20대는 철부지 인생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세상 많은 언론들이 대한민국 청년들의 앞날을 비관적으로 바라보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저들의 열정과 긍정적 모습이 결국 이 나라를 살리고 버티게 할 것이니. 예전 세대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그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옳고 그름을 걸러내 세상을 좀 더 깊고 폭넓게 본다. 그게 요즘 청년들이 40~50대 세대와 다른 점이다.

굳이 야간에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아프리카 콩고와 에디오피아에 한달만 살거나. 베네주엘라, 콜롬비아 보고타에 2주간 여행을 다녀온다면 감사함이 넘칠 것이다.

아프리카와 남미대륙만이 아니다. 필리핀, 방글라데시, 네팔 등 아시아는 물론이요. 이라크, 시리아 등 중동지역도 마찬가지다. 유럽과 미국엔 마약과 총기사고가 빈번하고 자연재해가 거의 역대급이다. 일본만 해도 태풍과 지진 피해로 인해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라고 한다. 중국이 뜨고 있으나 상해와 베이징 등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면 중국은 여전히 불편한 일상이 있는 곳이다.

감사란 마음먹기에 달렸다. 감사를 찾으면 끝없이 감사 조건들이 쏟아져 나오고 불평을 찾으면 끝없이 불평해진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과 입술이다. 어떻게 마음을 갖느냐, 입술을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가을 거리에 음악이라도 흐르면 마음에 여유가 생겨 감사가 나올 법도 할텐데 언제부턴가 그것마저 멈춰 사회는 더욱 상막해 진 느낌이다. 정부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와 대한가수협회 등과 잘 조율해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가요와 팝송 100곡씩을 구매해 상, 하반기 모든 곳에서 노래를 틀게 할 수 있으면 어떨까 한다. ‘가을이 오면’ ‘혜화동’ ‘거리에’ '가을밤‘ ’가을냄새‘ '목마른 사슴' '감사해요' 영화 접속 주제가 ‘A Lover s Concerto’ 등이 울리면 우리의 감성도 풍요로워질 것 같다.

그 어려운 현안도 척척 풀어나가는데 이정도 문제는 마음먹으면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자라나는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음악은 감성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더불어 우리 자녀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자. 지금은 비록 부족할지라도 그 아이는 커서 훌륭한 어른이 될 것이다. 설령 그런 인생을 못 살아도 어릴적 부모가 베푼 사랑의 언어를 그 또한 사용할 것이다.

반면 날마다 저주와 부정적 언어를 심어준다면 달란트가 아무리 풍부하고 잠재력이 많은 아이라도 발전할 수 없다. 어른이 되어도 그는 자신의 잠재력을 사용할 용기도, 도전의식도 사라진다. 이 가을 우리 자녀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자.

이 좋은 날 ‘광식이 동생 광태’ 주인공 김주혁씨 비보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비슷한 나이라 더욱 가슴이 쓰라린다. 늘 겸손한 자세와 기품 있는 그의 연기는 매년 가을이오면 영원히 우리 가슴에 남아있을 것이다.

새벽 주절주절 두서없이 글을 담았다. 가을이 저문다. 곧 겨울이 올 것이다. 이 가을 모두의 입술에 감사가 넘치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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