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사 “자체 규정에 따라 교환·환불은 안 돼”

▲ 김씨가 구입한 한국지엠 쉐보레 임팔라의 엔진실 곳곳에 흙탕물로 추정되는 자국이 남아있고, 일부 부품은 녹이 슬어 있다. (출처=소비자제공)

[소비자경제=서예원 기자] 비싼 돈을 주고 수입차를 구매했다가 ‘녹’ 피해를 입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지만, 관련 법이 여전히 소비자 권리를 뒷전으로 미루고 있어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김씨는 이 차를 구입하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는 차량을 판매하는 바람에 신차를 기다리는 동안 평택에서 구미까지 택시를 타고 출·퇴근해야 했지만, 다음날 인도될 신차를 꿈꾸며 기꺼이 불편을 감수했다.

하지만 차량을 받은 후 김씨의 부푼 기대는 거품처럼 꺼지고 말았다.

영업사원으로부터 차량을 인도받은 후 함께 차량 보닛을 열고 상태를 확인했지만, 마치 침수된 차량처럼 엔진실 내부에 흙탕물과 녹으로 오염돼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새차를 받았는데 내부에 잔뜩 녹이 슬어있는 것을 보고 너무나 실망하고 허탈했다”며 “심지어는 새차가 아닌 중고차가 아닐까라는 의심까지 들었다”고 토로했다.

그 자리에서 김씨는 업체 고객센터에 항의했지만 관계자는 “본사가 파업 중이라 연결이 되지 않는다”며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 (자료출처=YMCA자동차안전센터)

김씨는 이후에도 제조사인 한국지엠 측에 수차례 연락했지만, 업체 측은 관련 담당자도 배정하지 않은 채 묵묵부답이었다.

김씨는 “매일같이 업체에 전화해 항의를 반복하고, 급기야 언성을 높이자 업체에서 부랴부랴 대응하는 듯 보였다”며 “문제 있는 자동차를 받고도 열흘 넘게 담당자와 통화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 흙탕물로 추정되는 오염물질이 남아있는 차량 엔진실 내부 모습. (출처=소비자제공)

제조사인 한국지엠 측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라 교환이나 환불은 어렵지만,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을 경우 관련 부품을 교체해 주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김씨는 “보닛을 열어보니 엔진실을 덮고 있는 커버에도 녹이 슬어 있었다”며 “중고차도 아닌 새 차가 오염된 채로 (소비자에게) 왔는데 부품 교체가 말이 돼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가 구입한 차량은 보닛을 열어보지 않고서는 흙탕물에 의한 오염이나 녹 현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김씨와 영업사원이 차량 인도 직후 확인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넘어갔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새 차를 구매한 후 차량 자체에 녹이 슨 사실을 소비자가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 피해 사례는 적지 않다.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은 녹 슨 차를 판매한 차량 제조사가 당연히 신차로 교환해주거나 환불해줘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피해 구제가 쉽지 않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규정상 ‘중대 결함’이 아니라는 이유로 교환·환불을 해줄 수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동차는 고가의 소비재임에도 현행 자동차의 결함으로 인한 교환·환불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어 소비자들에게 불리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동일 부위 4회 이상 중대 결함의 경우에만 교환·환불이 가능했고, 일반 결함의 경우에는 아예 교환·환불에 관련된 규정이 없었다. 더욱이 중대한 결함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없어 현장에서는 적용의 어려움을 토로해 왔다.

대전시 중구의 한 자동차 정비업체 관계자는 “많은 제조업체들이 브레이크가 작동되지 않거나 시동이 꺼지는 등의 중대 결함이 아니면 책임지지 않으려는 게 현실”이라면서도 “일부 차종에서 차량 수명 내에 부식이 발생하는 것이나 녹이 슬어 있는 것은 장기적으로 안전에 크게 위협을 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 김씨가 차량을 구입한 직후 영업사원과 함께 보닛을 열어본 결과, 신차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엔진실 내부 곳곳에는 녹이 슬어 있었다. (출처=소비자제공)

이에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는 자동차의 결함 정도에 따른 교환·환불 요건 완화 등의 내용을 담아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중대 결함이 아닌 일반 결함의 경우에도 동일한 하자가 4회(3회 수리 후 재발) 발생되면 교환·환불이 가능해진 것이다.

일반결함은 차량의 사용·가치·안전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하자로서, 제작사의 사업소 등에 입고해 수리가 필요한 정도의 결함을 의미한다. 앞으로는 일반 결함으로 인한 수리기간이 누계 30일을 초과한 경우에도 교환·환불이 가능하다.

그러나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강제성을 갖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아직까지도 제조사들은 자체 규정을 내세워 소비자 피해를 외면하고 있다.

이에 김현윤 한국소비자원 자동차팀 팀장은 “차량 일반 결함에 대해서도 소비자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관련 고시가 개정되지만, 지금까지도 (교환이나 환불 등 소비자 분쟁에 대한 해결기준의) 권고사항을 수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업체에 달려있다”며 “소비자피해가 발생하더라도 행정처분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보니 업체들의 협조가 어느 정도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라고 설명했다.

 

서예원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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