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 이상 흡연 여성, 혈전 생성 위험도 높아

▲ 여름휴가철을 앞두고 생리 주기를 늦추기 위해 경구 피임약을 찾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울렁거림, 두통 등 부작용 사례가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출처=픽사베이)

[소비자경제=서예원 기자]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해수욕장, 워터파크 등을 찾는 여성들이 경구 피임약을 복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일부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해 주의가 요구된다.

서울시 양천구에 거주하고 있는 직장인 강 모씨(26)는 친구들과 워터파크를 가기로 했다. 강씨는 생리 주기를 늦추기 위해 경구 피임약을 나흘 째 복용 중이다. 하지만 얼마전부터 두통과 함께 어지럼증이 계속되자 피임약 복용을 중단하고, 끝내 약속을 취소해야만 했다.

경구 피임약은 여성의 몸에서 생리 및 임신을 가능케 하는 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합성프로게스테론을 함유한 여성호르몬 복합제로, 배란 및 생리주기를 조절하는 약이다.

피임약의 원리는 일정 농도의 호르몬 수준을 유지함으로써 난포의 성숙과 배란을 막아주는 동시에 자궁 내막을 얇게 유지해 착상을 어렵게 만든다. 또 자궁경부의 점액을 끈끈하게 해 정자가 이동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 약은 피임의 목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용법에 맞게 복용하면 생리주기 조절에도 뛰어난 효과를 볼 수 있다.

지난해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과 서울대 의과대 예방교실이 피임약 복용 경험이 있는 20~40대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국내 성인 여성의 경구 피임제 사용 현황 및 안전성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0.8%가 월경주기 조절을 위해 피임약을 복용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여름 휴가철 물놀이를 앞두고 생리주기 지연이나 조절을 위해 피임제를 복용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피임약이 일 년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시기도 7~8월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한 관계자는 “여름 휴가철은 생리지연이나 피임을 위해 경구 피임약 복용을 처음 시작하는 여성이 연중 제일 많은 때”라며 “복용법을 잘 모른 채 임의대로 피임약을 복용하면 생리 지연 효과도 얻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일시적으로 생리주기를 바꾸기 위해서는 생리일로부터 최소 일주일 전에는 복용을 시작해 원하는 날까지 휴약기(약을 복용하지 않는 기간) 없이 지속적으로 복용해야 한다. 복용을 중단할 경우 2~3일 후 생리가 시작된다.

생리주기 조절에 효과가 있는 게스토덴 성분의 피임약은 일반 의약품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의사의 처방 없이도 약국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지만, 효과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정확한 복용법을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호르몬 복용에 대한 부담감이 있거나 처음 피임약을 복용하는 여성이라면, 복용 전 산부인과 전문의 또는 약사와의 상담을 통해 본인에게 맞는 피임약에 대한 복약 지도를 받는 것이 좋다.

◆ 경구피임약 부작용, 오해와 진실

여성들이 즐겨 찾는 커뮤니티에서는 피임약을 오래 복용할 경우 불임이나 기형아 출산 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속설이 퍼지며 약 복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최근 동아제약이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성인 여성(15~44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56.1%가 부작용 때문에 경구용 피임약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이 중 절반 이상(36.15)은 “몸에 안 좋을 것 같다”고 했고, 12.7%는 “부작용이 있을까봐”라고 말했다.

실제 서양인에 비해 한국 사람들은 피임 방법으로 경구 피임약을 선택하는 빈도가 적다.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구 피임약 복용률은 2.5%로, 과거보다 수요가 높아지고는 있지만 벨기에(42.06%), 프랑스(36.4%) 독일(29.8%) 등에 비해 극히 저조하다. 피임약에 대한 잘못된 상식으로 경구 피임약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학계에 따르면 ‘먹는 피임약’은 다른 피임법과 마찬가지로 중단하면 바로 임신능력이 회복된다. 피임약에 들어있는 호르몬 성분은 복용 기간에만 작용하고 체내에 축적되지 않는다.

▲ 경구 피임약 복용 시 심각한 부작용으로 혈전이 생성될 수 있기 때문에 고혈압, 당뇨, 간염, 정맥 혈전증을 가지고 있는 여성에게는 투약이 금지돼 있다. (출처=픽사베이)

물론 모든 약이 그렇듯 경구 피임약 역시 부작용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지난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의 한 연구에 따르면 사전 경구 피임약을 복용한 1412명 가운데 유해 사례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여성은 371명으로 전체의 26.3%에 달했다.

사전 피임약 복용 후 나타난 유해 증상은 울렁거림(오심)·구토가 183건으로 가장 많은 32.9%를 차지했다. 이어 월경 장애 53건(14.3%), 어지러움 47건(12.7%), 피부 트러블 38건(10.2%), 두통 37명(10%) 순이었다.

당시 연구진은 “우리나라 여성은 월경 주기를 조절하기 위해 사전 피임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유해 사례 경험 비율은 사전 피임제의 사용 횟수 증가함에 따라 늘어나는 양상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성두 대우프라자약국 약사는 “피임약 복용 시 일시적으로 메스꺼움, 두통, 구토나 출혈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이후 증상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거나 심각해지면 의료진과 상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혈전증 사례多…전문의와 충분한 상담 후 복용해야

경구 피임약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양에 따라 유방의 자극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고, 자궁내막의 증식에 따른 돌발 출혈이 생기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부작용은 혈전 생성 가능성이다.

그 중에서도 정맥성 혈전증이 떨어져 나와 폐동맥을 막는 폐색전증이 가장 위험한데, 색전의 크기와 수에 따라 심하면 사망할 수 있다. 때문에 고혈압, 당뇨, 간염, 정맥 혈전증을 가지고 있는 여성에게는 투약이 금지돼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실제 저용량 경구피임약을 복용 중인 26세 여성이 급성복통 및 혈변 증상으로 응급실에 내원해 허혈성대장염으로 확진된 사례가 있고, 11개월간 경구피임제를 사용한 34세 여성이 정신착란 증상으로 응급실에 내원해 뇌심부정맥 혈전증 진단을 받은 사례도 있다.

지난 4월 영국에서는 17세 발레리나가 경구 피임약을 복용하다 혈전이 생기는 부작용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경구 피임약 선택에 어려움을 느낀다면 가급적 산부인과를 방문해 충분한 상담과 정확한 복약 지도를 받은 후에 복용해야 한다고 권장한다.

대한산부인과학회 한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경구 피임약으로 인한 색전증 사례가 종종 있고, 국내 학회지에도 꾸준히 경구피임약과 관련한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며 “본인의 건강상태 등과 관련해 의사와 충분히 상담한 후 안전하게 복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경구 피임약은 저용량의 에스트로겐을 함유하고 있으며, 프로게스틴에 따라 2·3·4세대로 나뉜다. 세대가 높아질수록 부작용이 덜하고 각 세대별 약물마다 조금씩 다른 특징을 갖는다.

흔히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경구 피임약은 3세대 경구 피임약으로, 2세대보다 여드름이나 남성화 부작용이 낮으며 4세대 경구 피임약보다 정맥색전혈전증의 위험도가 낮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과거에 사용됐던 1세대 경구 피임약은 높은 에스트로겐 함량으로 인해 혈전생성 위험성이 높아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정혜진 수원 정약사의 비타민 약국 약사는 “세대별로 경구 피임약마다 효능·부작용 등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약사나 의사와 상의해 자신에게 맞는 경구피임약을 선택해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에 따르면 비만이나 다리부종, 정맥색전혈전증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는 2세대 경구피임약을, 두통·고혈압·당뇨병이나 뇌졸중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는 3세대 경구피임약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정 약사는 “다만 고위험군인 흡연·고혈압·뇌혈관 또는 관상동맥질환이 있는 사람, 특히 35세 이상의 흡연자는 혈전 생성 위험도가 높으므로 다른 피임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당부했다.

 

서예원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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