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인사권 쥔 교육감의 정책, 공립고등학교 대부분 따를듯

▲ 이재정 경기 교육감이 내년부터 야간자율학습 폐지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출처=포커스뉴스)

[소비자경제=이지연 기자] 경기도 교육계가 야간자율학습 폐지를 두고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결국 9시 등교제와 마찬가지로 당사자들의 의견은 무시된 채 강압적으로 시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경기도 야자폐지 “야자 폐지에 대한 부작용 대책 마련해야”

지난 29일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은 기자회견에서 "학생들을 야자에서 해방시키겠다"며 "야자의 효율성이 얼마나 높은지 계량할 수는 없지만 야자를 통해 성적이 올라 원하는 대학에 갈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장의 재량대로 야간자율학습 폐지를 시행하겠다며, 야자를 없애는 대신 진로 탐색이나 인문학, IT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하겠다고 전했다.

이 교육감의 발언 이후, 경기도 내 학부모와 교사 등 교육계 사이에서는 야자폐지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현재 도내 공사립 고등학교 470곳 고교생 43만 6300명 가운데 야자에 참여하는 학생은 20.3% 수준인 8만 8724명 정도인 것으로 조사됐다. 야간 자율학습 폐지를 통해 자유로운 학교생활을 제공하고 진로탐색의 기회가 넓어진다는 의견도 있지만 대부분은 현재 야자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자율권을 뺏고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재정 교육감의 야자폐지 발언 이후 “야자 폐지는 교육감이 일률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교육구성원들의 의사에 따라 학교가 자율 운영해야 한다”며 “9시 등교제 강행 실시 때와 마찬가지로 야자 폐지에 대한 교육구성원 의견조사 및 부작용에 대한 대책은 매우 미흡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체할 교육프로그램도 현실성이 없다. 입시공부가 급한 고교생들이 매일 저녁 시간을 프로그램에 할애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 교육 당사자 의견 무시된 채 강압적으로 시행될 수도

▲ 경기도 야자폐지에 대해 사교육 확산을 우려하는 학부모들의 불만이 높다. (출처=픽사베이)

문제는 야자 시행여부가 학교장 고유 영역이라는 교육청의 발표와는 다르게 경기도 교육청에 의해 강압적으로 시행 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학교 현장의 인사와 재정을 관할하는 교육감의 방침에 대부분의 학교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재정 교육감은 9시 등교제 때도 학생, 학부모, 교사 등 당사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강압적으로 이를 추진한 바 있다.

설문 솔루션 기업 서베이몽키와 학교 알림장 서비스 아이엠스쿨이 경기도 지역 학부모를 대상으로 9시 등교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9137명 가운데 58.06%(약간반대 19.09%, 매우반대 38.97%)가 9시 등교에 대해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경기도 교원 14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9시 등교에 대해 82.9%가 반대한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애초 학교장 재량에 맡기겠다는 발표와는 다르게 대부분의 학교가 교내 찬반 조사에서 반대표가 더 많음에도 추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교원의 85.8%가 9시 등교제 시행이 사실상 강제 시행이었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경기도에서는 지난해 3월 기준 94.7%의 중등학교가 9시 등교를 시행했지만 똑같이 자율 시행을 조건으로 내건 서울지역에서는 시행률이 2.1%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내 고등학교 한 관계자는 “사실 9시 등교제때도 그렇고 강압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우리는 사립학교였는데도 직접 교육청에서 나와 강요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 학생과 학부모만 울상 “현실과 다른 정책, 사교육만 부추길 뿐”

특히 이번 야자폐지는 학교와 교사보다는 교육 당사자인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더 큰 불편함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경기도 용인시에 사는 학부모 황 모씨는 “야자가 폐지되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또 다른 사교육이 필요하다”며 “학생들을 관리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교사나 학교는 편해지겠지만 돈 없는 학부모들은 학원도 과외도 보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야자폐지는 학교에 믿고 학생을 보냈던 우리들에게 의견조사없이 학교장 재량에 맡긴다는 것도 웃기다”며 “야자폐지 전에 교육정책 전체를 손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과거 9시 등교 시행 때에도 교사나 학교는 수업 준비 시간이 넉넉해지고 등교시간이 늦춰져 긍정적인 효과를 얻은 반면, 학생들과 학부모는 갑자기 늦어진 수업시간에 맞추다보니 일하는 학부모들의 불편을 초래했고, 이 문제는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생과 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경기도 안산에 사는 학부모 유 모씨는 “9시 등교제 때, 나는 직장을 다니지 않아서 오히려 편했고, 좋은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하지만 주변 직장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불편한 점들도 많았다더라”고 말했다.

이어 “대책도 없이 무조건 등교시간을 늦추고 야자를 폐지하는 게 학생과 학부모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며 “교육시스템은 그대로인데 경기도 내에서만 진보를 지나치게 추구하려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 도내 고등학교 “사교육 안받는 아이들 갈 곳 없어⋯그렇지만 시행할 수 밖에”

▲ 야자폐지가 학교장 권한이지만, 사실상 인사권을 교육감이 갖고 있어 대부분의 공립학교는 이에 강압적으로 따를 것으로 분석된다. (출처=픽사베이)

그러나 교육부 관계자는 일각에서 불거지는 야자폐지의 부작용에 대해 현재 논의 중이라며 이재정 교육감의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동조했다.

사사건건 대립했던 교육부와 야권 성향 경기도교육청이 이번에는 어느정도 의견일치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 관계자는 “야자폐지와 관련된 내용은 지난 29일 이후 현재 정책부서와 실무부서가 협의를 진행중이다”며 “학교장의 재량에 맡기는 부분과 의견을 수렴하는 부분 등 일각에서 나오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시행안이나 대체 방안을 논의 중이다”고 말했다.

이어 “사교육이 증가한다는 것은 사실 충분히 예상되는 부분이다”며 “그 건에 대해서는 야자 폐지 이후 어떻게 공교육 정상화를 이룰 지에 대해 폭넓게 논의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기도 내 교육 관계자들은 저마다 야자폐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며, 강압적인 시행에 대한 우려를 내보였다. 또, 결국 학부모들에게 고스란히 부담이 전가될 것이라며 교육청의 배려없는 야자폐지 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경기도 한 고등학교 교감은 “야자라는 자리를 제공해줘도 모자란데 이걸 폐지하고 문 닫으면 사교육을 안 받는 아이들은 갈 곳이 없다. 사교육 부추기게 되고 학부모들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예비대학 교육과정도 일단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끔 성적이 나와야 하는 건데 순서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 “공립학교의 경우에는 교장을 정하고 연임하는 등 인사권에 교육감이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 현재 야자폐지를 안하고 버틸 공립 고등학교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며 “이번 야자폐지도 자율적으로 시행하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기자회견 통해서 말할 정도면 사실상 시행하라고 강제하는 꼴이 아닌가”고 말했다.

공교육살리기 학부모연합 관계자는 “교육감은 멋대로 야자폐지 여부를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다”며 “학부모,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해줘야 하고 행정을 하더라도 권한의 범위가 있는 건데 이걸 무시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단일학교에 맡기고 권한을 준다고 하면 각 학교 실정에 맞게 이뤄지도록 지켜봐야하는데 강압적으로 하고 있다”며 “사실 전국에서 경기도가 학업성취도 꼴등인데 야자까지 못하면 어떡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안 그래도 공교육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교육 시장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학교 안에서 교사들이 교육적 사명을 갖고 교육을 해줘야 하는데 이것은 공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야자폐지 전에 학원을 없애고 학교 안에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지연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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