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익은 녹색 토마토, 맛과 영양 ‘뚝’

▲ 덜 익은 녹색 토마토에는 토마틴, 솔라닌 등 독성 성분이 포함돼 있다. (출처=픽사베이)

[소비자경제=서예원 기자] 여름철 제철 채소인 토마토의 인기가 높은 가운데 맛과 영양이 뒤떨어지는 ‘덜 익은 토마토’가 빈번히 유통되고 있어 소비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토마토는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음식으로 세계 10대 푸드에 선정된 채소다. 토마토에는 비타민과 무기질, 미네랄은 물론 강력한 항산화 효과를 가진 ‘리코펜’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토마토의 리코펜 성분은 암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활성산소와 노폐물을 제거하고 세포가 노화되는 현상을 늦춰주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토마토는 연중 재배되지만 햇빛이 강렬한 6~8월 여름철에 가장 맛이 좋고 영양가가 풍부하다. 햇빛을 많이 받을수록 감칠맛을 내는 글루탐산과 리코펜이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맛있고 싱싱한 토마토는 과실이 크고 단단하며 무겁다. 껍질이 탱탱하고 꼭지가 시들지 않은 초록색을 띠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붉은 빛깔’이 짙고 선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록빛의 토마토보다는 붉은빛의 토마토가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건강을 위해서라도 붉은 색의 완숙 토마토를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 덜 익은 토마토에 독성이 있다?…토마틴, 해충퇴치 원료로 사용되기도

토마토를 처음 본 유럽 사람들은 토마토에 독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 꽤 오랜 기간 먹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마토는 가지과에 속하는 식물인데, 당시 가지과 식물 중에는 독이 들어 있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실제 아직 익지 않은 푸른 토마토에는 알칼로이드의 일종인 토마틴(tomatine)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토마틴은 약한 독성을 띠는 알칼로이드로, 항곰팡이성이 있어 화농균이나 잔균 등에 대해 항균작용을 한다. 여드름 치료나 해충퇴치에 이 성분을 사용하기도 한다.

토마틴은 토마토가 빨갛게 익으면서 없어지기 때문에 빨간 토마토에는 토마틴이 거의 없는 반면 익지 않은 토마토에는 미량의 토마틴이 남아있기 때문에 독성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덜 익은 토마토에는 감자의 싹에 있는 독성분과 같은 솔라닌(solanine)도 포함돼 있다. 감자 싹에 있는 독성으로 잘 알려져 있는 솔라닌은 식중독을 일으키는 독성으로, 잘못 섭취했을 경우 복통이나 설사, 심할 경우 전신마비를 불러 올 수도 있다.

간혹 덜 익은 녹색 토마토를 구입해서 며칠 냉장고에 두고 익은 후에 섭취하는 소비자들이 있는데, 면역력이 취약한 어린이나 노인이 덜 익은 토마토를 먹을 경우 그 안에 포함된 솔라닌이라는 독성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

중독 증상이 발생하는 솔라닌의 양은 체중 1kg당 1mg이며, 1kg에 3~6mg의 솔라닌이 들어있을 경우 치사량에 해당될 정도로 무서운 독성이다.

덜 익은 토마토에 들어있는 솔라닌은 1g당 9~30mg이 들어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체중 15kg정도의 약 3세 아이가 덜 익은 토마토 1개를 섭취했을 때 중독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국내에선 자동화 선별기, 보관기간 등을 이유로 덜 익은 녹색 토마토가 높은 가치를 받고 있다. (출처=예천군청)

◆ 자동화 선별장에선 빨간 토마토가 ‘불량품’

그런데 이상하게도 푸른빛이 도는 덜 익은 토마토는 낯설지가 않다. 마트나 시장에서도 쉽게 볼 수 있어서다.

우리나라에선 덜 익은 녹색 토마토를 딴다. 이 토마토들은 유통 중에 빨갛게 변하는데, 이는 엄연히 말하면 ‘익은’ 것이 아니라 ‘색이 변한’ 것이다.

안 익은 토마토를 수확해 유통하는 ‘이상한 구조’는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현실이다. 해외에서 볼 수 있는 일부 녹색 토마토는 품종 자체가 다른 것으로, 맛과 영양이 떨어지는 미숙 토마토를 취급하는 것과는 구별된다.

실제 국내 한 건강식품업체는 자사의 ‘떠먹는 토마토’ 제품을 홍보하면서 “국내에서 유통되는 토마토의 경우 덜 익은 녹색 토마토를 수확해 리코펜 함유량이 미비하기 때문에, 미국 캘리포니아산 완숙 토마토만을 엄선했다”고 꼬집을 정도였다.

이처럼 맛없는 미숙 토마토를 수확하고 유통할 수밖에 없는 원인 중 하나로 자동화 선별장이 꼽힌다.

토마토 선별장에서는 수확한 토마토를 씻어 말리고, 크기별로 나누어 포장하는 모든 과정이 기계화 작업으로 이뤄진다.

세척과 선별을 거치는 동안 토마토는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옮겨지는데, 이 과정에서 토마토는 멍이 들 수밖에 없다. 익은 토마토를 선별기에 올리면 멍투성이가 돼 상품성을 잃기 때문에, 선별장에서만큼은 익은 토마토가 ‘불량품’으로 분류된다.

즉, 농업도 국제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지은 대규모 자동화 선별장이 토마토의 품질을 오히려 떨어뜨리고 있다는 말이다.

◆ 유통업자·소매상인 “너무 익으면 안 사가요”

유통업자 입장에서도 덜 익은 토마토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 덜 익은 토마토는 겉면이 단단해 오래 보관할 수 있고, 며칠 지나면 토마토 끝부분이 빨갛게 변색되기 때문에 ‘익은 것처럼’ 보인다.

충북 괴산에서 토마토를 비롯해 배추, 감자, 사과 등을 유통하고 있는 김 모씨(61)는 최종 소비자에게 상품이 넘겨지는 기간을 고려해 ‘완전히 빨갛게 익은’ 토마토는 취급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김씨는 “최근 농수산물 직거래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토마토 같은 채소나 과일은 농가에서 경매단체로, 큰 도매상에서 다시 작은 도매상이나 영세업자들로 짧지 않은 유통과정을 거친다”며 “특히 토마토는 아주 연약한 채소이기 때문에 물건을 싣고 나르는 과정에서 무르고 터지는 등 상품가치가 크게 떨어진다”고 말했다.

때문에 초기 유통과정에서 비교적 단단하고 크기가 큰 ‘초록빛’ 토마토에 높은 가격이 매겨진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농민들은 덜 익은 토마토를 수확해 하는 실정이다.

지친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충북 청원으로 귀농한 4년차 농민 안재선(남·56)씨는 귀농과 동시에 집 앞 텃밭에 토마토 농사를 시작했다. 평소 토마토를 좋아하는 아내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품화할 수 있는 채소류 중 쉬운 편에 속하는 작물이기도 해서다.

대량으로 재배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확하고 나면 멀리 사는 친척들에 보내주고, 남은 것은 마을 어귀에 나가 판매하기도 한다.

안씨는 “서울이나 부산처럼 멀리서 오는 도시 손님들은 완숙 토마토를 사가면 오래 먹지 못한다며 조금 덜 익은 토마토를 선호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보통 시장이나 마트에서 파는 토마토는 덜 익은 상태에서 따서 유통과정에서 익어가기 때문에 당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국내 유통과정에서조차 덜 익은 토마토가 높은 가치로 평가되고 있으니, 다른 나라로 수출되는 경우 수확시기가 더 앞당겨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김종원 농림축산식품부 검역정책과 사무관은 “대부분 신선 농산물은 너무 익을 경우 일반적으로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푸른빛이 도는 상태에서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며 “어느 시기에 수확해야 한다거나 어떤 색깔을 띨 때 시장에 내 놓아야 한다는 기준이 없기 때문에 판매업자 스스로 상품의 가치를 보존하는 차원에서 결정되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서예원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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