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악용 사례에 부정적 인식만 늘어…대안은 양심뿐?

▲ 여전히 많은 여성 근로자들이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인 생리휴가 사용을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픽사베이)

[소비자경제=서예원 기자] 모성 보호와 여성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시행되고 있는 생리휴가 제도가 여전히 실효성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생리휴가가 유급에서 무급으로 바뀌며 사용률이 줄어들고, 일부 악용 사례가 알려지며 휴가 사용자 전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많기 때문이다.

생리휴가는 한 달에 한 번 생리를 겪는 여성 근로자를 보호하고자 도입된 제도다. 생리 기간 무리한 근로 탓에 여성 근로자가 건강을 해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 63년전 도입된 생리휴가…‘유급’에서 ‘무급’으로

생리휴가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거나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생리휴가가 최근 들어 생겨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생리휴가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6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3년 처음 제정된 근로기준법 제59조에는 ‘사용자는 여자가 생리휴가를 요구하는 경우에는 월 1일의 유급생리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최초에는 생리휴가를 사용해도 월급이 깎이지 않는 ‘유급휴가’였던 반면 2003년 ‘무급휴가’로 개정됐다.

이는 노동시간 단축이나 모성보호법 등의 제·개정이 논의될 때마다 기업 경영자들이 생리휴가 제도 폐지를 주장한 영향이 컸다.

유급휴가 일 때도 사회적 인식 미비로 사용하는 여성이 많지 않았던 생리휴가는 2003년 ‘주5일 근무제(주40시간 노동제)’가 시행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당시 경영계는 “유급생리휴가를 주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근무시간을 줄이는 대신 생리휴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논란 끝에 유급이었던 생리휴가를 무급으로 바꾸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1000명 이상 사업장부터 무급이 된 생리휴가는 300명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된 데 이어 2012년부터는 20인 이상 사업장에서도 무급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유급생리휴가’는 그냥 ‘생리휴가’가 됐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73조에서는 ‘사용자는 여성 근로자가 청구하면 월 1일의 생리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전히 연·월차와 무관하며, 고용형태나 사업장의 크기와도 상관없는 ‘강행 규정’이다. 사용자가 생리휴가를 청구하면 회사는 따라야 한다.

이처럼 생리휴가가 시행된 지 역사적으로 오래지만 여전히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 생리공결·생리휴가 “눈치 보여 못 쓴다”…‘그림의 떡’

서울 시내의 한 대안학교에서 1년간 교사생활을 하다가 올해 대학교 상담센터로 직장을 옮긴 최정인(29·여)씨는 “이전 직장이나 지금 직장이나 한 번도 생리휴가는 써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최씨는 “생리휴가가 있으니 쓰라는 고지를 들어본 적도 없고 쓰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며 “이전 직장의 한 동료는 생리통을 겪을 때면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 몸이 안 좋았지만 주변 눈치가 있어 꾹꾹 참곤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4년 유한킴벌리가 20~30대 여성 직장인 1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생리휴가를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했다’는 응답이 76%였다. ‘1년에 한두 번 사용해봤다’는 응답은 12%로, 사실상 제대로 쓰는 사람이 없었다.

생리휴가를 알고 있다는 이는 92%, 법적으로 보장돼 있음을 안다는 이는 76%로 높게 나타났음에도 생리휴가를 사용하는 것을 주저한다는 것이다.

생리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42%는 ‘상사에게 눈치 보여서’를 꼽았다. 36%는 ‘주위에서 아무도 안 써서’라고 응답했다.

▲ (자료출처=동아제약)

올해 초 동아제약의 경구피임약 마이보라와 리서치 플램폼 오픈서베이가 20~39세 여성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공동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도 많은 여성 근로자들이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인 생리휴가 사용을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 실제 응답자의 85.4%가 ‘생리휴가 사용에 부담을 느꼈다’고 답했다. ‘회사 내에 생리휴가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거나 적기 때문’(41.7%), ‘생리휴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주변에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느낌(32.3%)’ 등을 이유로 들었다.

◆ 부정적 여론 부추기는 생리휴가 ‘악용’

여학생이 생리통으로 수업에 빠질 경우 공적 결석으로 처리해주는 생리공결제나 여성 근로자가 법으로 보장된 생리휴가를 망설이는 이유는 ‘부정적인 사회 인식’ 때문이다. 일부 악용 사례가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을 부추기기도 한다.

일부 남성들은 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하면서도 생리휴가 등에선 불편한 시각을 드러내기도 한다.

경기도 안산시에 거주하는 직장인 정 모씨(28)는 “직장 동료들이 생리통을 호소하면 당연히 쉴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남자들은 잘 모르는 고통이라 조심스럽지만 솔직히 생리휴가를 악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대학교 졸업반인 이 모씨(24)는 “전날 술을 많이 마셨거나 하루에 수업이 3~4개 있어 힘든 날에 주로 생리공결을 사용한다”며 “다른 여자친구들도 많이들 그렇게 한다”고 고백했다.

대학 교수들도 일부 여학생들이 생리공결을 악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확인할 길이 없어 ‘그냥 넘어간다’는 입장이다.

이씨가 재학 중인 사회과학대 교수는 “일부 여학생들이 엠티를 다녀온 다음날이나 공부할 것이 많은 시험 전 주에 생리공결을 몰아 쓰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일부 남학생들이 이를 두고 투덜대기는 하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어 모르는 척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악용 사례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생리휴가를 월요일이나 금요일에 연달아 쉬고 싶을 때, 징검다리 연휴 중간에 사용해 일부러 연휴를 만드는 일부 여성의 사례가 퍼지면서 주변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

실제 생리공결이나 생리휴가의 악용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이를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인권 유린 문제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 ‘생리휴가를 잘못쓴 예’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한 게시물. 이에 따르면 상당수 여직원들이 추석 연휴를 앞두고 보건휴가를 사용했다.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 증거 제출하는 것도 ‘인권 유린’… 양심에 맡길 뿐

이달 초 전남 순천시의 한 청소용역업체는 생리휴가를 신청한 여성 노동자에게 ‘폐경진단검사’ 결과표를 요구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생활폐기물을 수집·운반 대행업체 S환경은 환경미화원 A(52·여)씨와 B(60·여)씨가 보건휴가를 신청하자 이들에게 폐경진단검사 결과표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임신이나 폐경 등 생리현상이 사라지면 생리휴가를 주지 않아도 위법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여성 노동자와 S환경 노동조합은 “임금 협상 결렬후 사측이 보건휴가를 문제 삼고 있다”면서 “여성 노동자가 스스로 폐경인지 아닌지를 증명해야한다는 요구는 인권유린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여교사가 보건휴가를 사용할 때 폐경 여부 등을 담은 문진표를 작성·제출하도록 지시한 서울시내 일부 학교에 대해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중단과 재발방지를 권고한 바 있다.

법 제정 당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논란에는 일부 여성들이 생리휴가를 악용한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일부 여성의 ‘꼼수 사용’에 대한 비판 여론으로 인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생리휴가가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다.

한국여성노동자회의 한 관계자는 “생리휴가는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경우 꼭 필요한 사람이 쓸 수 있어야 한다”며 “불안정한 고용 상황과 남성 중심적 고용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생리휴가를 쓰기는 어려운 현실”이라고 씁쓸해했다.

고용노동부 한 관계자는 “보건 휴가는 근로기준법에서 보장하는 당연한 권리이지만 또 다른 대안도 필요하다는 입장은 충분히 공감한다”며 “실질적으로 제도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는 개인의 양심에 달려 있는 만큼 스스로 올바르게 사용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예원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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