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판매 업체 "중소 유통점 상황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 단통법으로 지원금 상한제가 시행됐지만,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은어'를 통해 불법 보조금을 지급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출처=포커스 뉴스)

[소비자경제=공동취재팀]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 시행되면서 소비자들은 휴대전화 구입 시 투명하게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지만 오히려 시장에서는 은어를 통해 불법 보조금을 지원받는 등 암암리에 불법 행위가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단통법’ 지원금 상한제 유명무실⋯교묘하게 주고받는 페이백과 현금완납

2014년 10월, 정부는 이동통신사 간 지나친 보조금 경쟁을 막고 소비자들이 전국 어디서든 같은 가격에 휴대전화를 구입할 수 있도록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단통법)’을 시행했다.

이 단통법의 핵심은 휴대전화를 구매할 때 지원하는 보조금을 제한하는 ‘지원금 상한제’로, 휴대폰 보조금은 요금제 등에 따라 최고 33만원까지만 공식적으로 지원된다. 이동통신사는 일주일마다 홈페이지를 통해 지원금을 공시하고 대리점·판매점은 공시된 지원금을 바탕으로 휴대전화를 판매해야 한다.

그러나 단통법이 오히려 시장에서 불법 행위를 양산하는 등 역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매장에서는 인터넷 커뮤니티 및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접속한 사람들에게 자신들만의 은어를 공유하고 은밀하게 불법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휴대전화나 결제 방식을 지칭하는 은어 등 눈속임 용어를 사용해 현금완납(단말기 할부원금을 나눠 내지 않고 소비자가 개통시 일할계산 한 뒤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나 페이백(정가에 개통했다가 일정 기간 후 추가 보조금을 계좌이체로 돌려주는 수법)을 지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현금완납’의 경우 ‘현아’나 자음만을 딴 ‘ㅎㅇ’로 통용된다. 현아가 33번 춤을 추거나 싸인을 해줬다면 단말기를 33만원에 구입했다는 뜻이다. ‘페이백’은 ‘표인봉’이나 ‘ㅍㅇㅂ’으로 불려진다. 표인봉이 32번 악수를 하거나 싸인을 받았다고 하면 개통 이후에 32만원을 되돌려 받기로 했다는 뜻이다.

◆ 제 값 주고 구입하는 소비자, “불공정해”⋯2차 피해도 확산

▲ 일부 이통사 대리점의 불공정한 행위에 제 값을 주고 구매한 소비자들이 불만을 호소하고 있다. (출처=포커스뉴스)

보통 이러한 정보는 비공개로 운영되는 네이버 밴드나 카카오톡 채팅방을 통해 공유된다. 몇 번의 절차를 거치고 초대를 받아야만 가입할 수 있고, 앱 진동 알림이나 LED 점멸만으로 휴대전화 단말기 가격 정보가 제공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15만원을 지원해준다면 이진법을 바탕으로 짧은 알림 1번, 짧은 알림 5번, 긴 알림 4번이 이어진다. 교묘하게 자신들만의 암호로 불법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공시지원금인 33만원을 초과해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기기값 전액을 지원해주는 경우도 있어 정당하게 제 값을 주고 휴대폰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온라인 내방 유통점 제보 및 국민신문고 민원접수 등을 통해 신고된 155개 유통점(대리점 15개, 판매점 140개)가운데 96개 유통점이 이동통신사의 공시지원금을 초과한 금액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부터 온라인 내방 유통점 제보 및 국민신문고 민원접수 등을 통해 신고된 155개 유통점(대리점 15개, 판매점 140개)을 대상으로 사실 조사를 한 결과를 토대로 했다.

이와 관련해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현아, 표인봉 등의 은어가 쓰인다고 하는데 사실 통신사에서 은어를 만든 것도 아니고 우리가 불법 행위를 주도한 것도 아니다”며 “페이백은 불법이라 규정하고 강력하게 모니터링 하고는 있지만 이러한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교묘하게 저지르는 불법 행위를 완벽 차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게다가 직영점의 경우 한 통신사의 휴대폰만 판매해 관리가 되지만 신도림과 같은 복합 판매점은 계약관계가 없어 규제를 직접적으로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일명 ‘먹튀’와 같은 2차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계약 이후 기기값의 일부를 다시 돌려주는 페이백은 행위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피해가 발생해도 보상을 받기가 힘들다.

이를 이용해 판매자가 가입자에게 이면계약서 등을 통해 페이백을 약속하고 지급하지 않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들보다 저렴하게 휴대폰을 구입하고자 했던 소비자들은 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손놓고 페이백 먹튀를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이렇듯 휴대폰 불법 보조금과 관련한 문제는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정부도 이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입장이다. 은밀하게 개별 거래를 통해 이뤄지는데다 알아듣기 힘든 은어로 계약이 이뤄지다보니 증거가 불충분해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불법 보조금이 계속 성행하고 있는데 보조금 상한제로만 그 원인을 돌릴 수는 없다”며 “워낙 법 시행 전부터 이통사 간의 경쟁이 치열했고 이것이 과열되면서 이러한 은밀한 거래가 성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 값을 주고 산 소비자들이 억울한 것을 알고 있다. 꾸준히 방통위 차원에서도 조사를 하고 있고 위법행위 근절을 위해 신고도 받고 있다”며 “하지만 조사인력에 한계가 있어 매번 일일이 잡아내긴 힘들다”고 덧붙였다.

◆ 불법 보조금 원인, “단통법이 부추기는 꼴”

▲ 단통법은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시행됐지만, 업체들간의 자율경쟁을 막아 불법적인 형태의 보조금 경쟁이 발생하고 있다. (출처=미래창조과학부)

이처럼 휴대폰 불법 보조금을 주고받는 행위로 인해 피해를 보는 소비자가 늘자, 일각에서는 단통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존 이동통신사들이 보조금과 지원금을 통해 가입자들을 자율적으로 유치해왔는데 이를 억지로 제한해 오히려 음지에서 불법 보조금 거래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지원금 상한제는 이동통신사들 간 경쟁을 사라지게 만들어 소비자 모두가 비싼 가격에 휴대전화를 사게 만들고 있다”며 “경쟁을 제한하고 소비자 권익 증진에 도움 되지 않는 지원금 상한제를 폐지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동통신 유통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 시행된 단통법이 오히려 좀 더 저렴하게 휴대전화를 구입하고자 하는 소비자들과 번호 이동 등을 미끼로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려는 이통사 대리점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강제로 경쟁을 제한하다보니 오히려 불법적인 형태의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종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이사는 “소비자에게 일정 금액만을 지원금으로 제한하고 있는 단통법이 사실상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지원금과 유사한 형태로 장려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 딱히 규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로 자기들끼리 불법 보조금에 대해 신고하고 있는데, 이건 눈 가리고 아웅 식이다. 오히려 장려금을 많이 지급해 페이백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셈이다”고 말했다.

◆ 대형 이통사 배만 불려주는 단통법, “제조 단계부터 투명성 확보해야”

▲ 단통법이 오히려 대형 이통사들에게만 이익을 가져다주기때문에 중소 유통업체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페이백을 내주며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픽사베이)

또 다른 문제는 단통법 시행으로 오히려 대형 이통사들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문지현 KDB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단통법은 이동통신사들의 마케팅 비용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다”며 “오히려 단통법으로 이통사들의 실적이 높아질 것이다”고 전했다.

실제로 정부는 처음 단통법을 추진할 때, 이통사의 수익이 증대되면 요금 인하가 일어나 소비자들이 장기적으로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월 평균 통신비가 전년 대비 감소했다며 단통법을 비롯한 통신비 인하 정책이 효과가 있다는 자체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2014년 15만 400원이었던 월 평균 통신비가 14만 7700원으로 1.7% 감소하는 동안 지난해 이통 3사의 연간 마케팅비는 7조 8619억원으로 전년보다 12%나 절감됐다. 또 3사의 영업이익도 1년 만에 3조 6332억원대로 42%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처음에는 소비자를 위해 요금을 인하하고 공정한 시장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시행된 법이 오히려 이통사들의 이익만 올려준 셈이 됐다.

게다가 대형 이통사의 직영점의 경우 판매 장려금 형태로 지원금이 나와 이를 페이백 형태로 소비자에게 돌려주지만, 일반 중소 유통업체의 경우 장려금이 없어 어려움에 처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대전화 판매업체 한 관계자는 “대형 이통사들뿐만 아니라 중소 유통점들도 단통법 시행 이후 페이백 등의 불법 행위를 공공연하게 저지르고 있다”며 “중소 유통점의 경우 지원금이 없어 무리를 해서라도 페이백을 내주고 있고, 이에 중소 유통점들의 상황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에 따르면 단통법 시행 이후 중소 판매점 매장 수는 1만2000개에서 약 10% 감소한 반면 이통 3사의 직영점은 2014년 1100여개에서 지난해 1480여개로 약 35% 늘었다. 또 대형 유통점 내 휴대전화 매장 수 역시 2013년 322개에서 단통법이 실시된 지난해 440개로 약 37% 늘었다.

일각에서는 휴대전화 단말기의 유통과정의 투명성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휴대전화 출시 과정부터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심현덕 참여연대 간사는 “현재 공시지원금은 제조사와 이통사가 함께 지원하고 있다. 이중 제조사의 지원금은 사실상 처음부터 단말기를 저렴하게 낼 수 있는 금액이다”며 “제조사가 지원하는 지원금에 대해 명확히 공시해 단말기 출고가를 낮춰야한다. 불법 보조금을 줄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부분부터 단통법이 변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단통법을 폐지하기에는 득보단 실이 크다. 현재 소비자들이 고가의 스마트폰 단말기 대신 저렴한 단말기를 선택하고, 낮은 요금제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며 “사실상 이통사가 이득을 보는 동안 실제 가계 통신비는 떨어지지 않은 만큼 단통법 개선 방안에 대해 생각해야 할 차례다”고 덧붙였다.

 

김은희·이지연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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