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사랑방’ 방향 전환…젊은층 공략법 제시해야 지적도

▲ 서울 종각역 부근에 위치한 민들레영토 종로점 입구 모습

[소비자경제=서예원 기자] 최근 한 대학교의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잃어버린 민토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사라진 ‘민토’를 그리워하고 당시 추억을 나눈 동기들을 찾는 99학번 어느 졸업생의 이야기였다.

민토는 1990년대 후반부터 빠르게 성장해 2000년대 초반 국내 카페 문화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민들레영토’의 줄임말이다. 미국에 스타벅스가 있다면 한국엔 민토가 있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니 그 인기가 가늠이 안된다.

기자가 추억하는 민들레영토 신촌 본점은 사라진지 오래다. 2009년 ‘민들레영토 어머니점’으로 불리던 모점이 문을 닫고, 대규모의 매장을 자랑하던 신촌 분점 역시 지난해 한 브런치 가게에 자리를 내줬다.

▲ 민들레영토 종로점은 테이블이 아닌 카운터에 직원을 부르는 벨이 있다.

민들레영토의 역사는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목사였던 지승룡 대표가 10평 남짓한 신촌 기차역 근처 무허가 건물에서 영업을 시작한 이후 인근에 분점을 내 800평 빌딩 전체를 카페로 만들었다.

지난 2008년까지만 해도 민들레영토는 21개 지점을 거느린 기업형 카페로 자리 잡았고, 독특한 운영방식으로 ‘한국형 카페’의 표본이 됐다.

5000원의 문화비를 내면 커피, 홍차, 아이스티 등 여러 음료를 마음껏 리필 받을 수 있었고 컵라면과 빵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했다.

연인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해 영화와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고, 별개의 방으로 분리된 세미나실에선 각종 스터디나 단체 모임이 이뤄졌다.

고객들은 층마다 빼곡히 전시된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고 구매할 수도 있었다. 인간치료라는 개인 상담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었다.

특히 당시에는 민토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심층적' 면접과 교육을 받고, 민토에서 아르바이트생은 전부 예쁘고 잘생겼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이곳은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낭만적인 '일자리'로도 인기가 높았다.   

이처럼 민들레영토는 다른 카페와는 확연히 다른 행보를 걸으며 젊은이들을 위한 ‘문화 공간’을 자처했다.

그런 민토를 최근에는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되자 아쉬움을 토로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현재 서울에는 종로점, 경희대점, 기독교회관 3곳이 남아있다. 인천, 안양, 대전, 광주, 제주도에 각각 1곳, 전국적으로 총 8곳이 남은 셈이다.

▲ 민들레영토의 대표 메뉴인 치킨커틀렛과 민토차
▲ 분리된 공간에는 스터디룸과 세미나실이 갖춰져 있다.

서울 종로점에는 아직 민들레영토 고유의 분위기가 물씬 남아있다. 치킨커틀렛, 치즈 오븐 떡볶이, 까르보나라 스파게티 등 어릴 적 즐겨먹던 경양식이 대표 메뉴다.

곳곳에 책과 잡지가 배치돼있고 원두커피와 빵, 크래커 등 간식이 무료로 제공되는 등 기존 서비스 정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탁 트인 공간에 위치한 일반석은 물론 룸 형태의 스터디실, 세미나실 등 단체석까지 있어 소비자들의 선택 폭을 넓혔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과거와는 다르게 현재 주 고객층이 40~60대 중장년층이라는 점이다. 식사는 물론 다양한 차 종류가 준비돼 있고 다른 카페들과 달리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 주는 이가 없으니 어른들이 담소를 나누기 제격인 셈이다.

민들레영토 종로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상호 대표는 “실제 주 고객층은 꾸준히 찾아오시는 40~60대 단골들”이라고 소개했다.

번잡하지 않고 조용한 매장 분위기, 아늑하고 여유롭다는 이미지 덕에 ‘사랑방’ 느낌을 추구하는 고객들이 찾는다는 것.

▲ 민들레영토 종로점은 벽면과 천장을 한 폭의 그림으로 꾸며 옛스러움을 연출했다.
▲ 매장 곳곳에 책과 잡지가 배치돼 있다.

그러나 일부 소비자들 중에는 젊은층에서 중장년층으로 옮겨간 민토의 주고객으로 인해 안타까워 하거나 재방문을 망설이는 목소리가 있다.

얼마전 민토 종로점을 방문한 적이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사는 한 모(31)씨는 “남편과 경복궁 나들이를 나왔다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민토를 방문하게 됐다”며 “예전 대학생 때 자주갔던 장소를 오랜만에 들러 기대했지만, 내 또래 사람들은 없고 어르신들이 많아 기분이 어색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인테리어 등은 예전 그대로라 좋았지만, 입구부터 낡은 느낌이 났고 어르신 손님들이 오랫동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부부끼리 대학생 때처럼 뭔가 편하게 있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왠지 다방같은 느낌이 나서 다시 오고싶은 마음보다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고 전했다.       

한씨의 말대로 민토는 다른 커피전문점이나 북카페처럼 시간 제한제를 운영하고 있지 않다. 때문에 회전율에 대한 우려가 있고 음료 한 잔을 시키고 4~5시간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으면 다른 손님들을 받을 수 없어 매장에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커피나 차 종류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메뉴들이 있기 때문에 단가를 어느 정도 맞출 수 있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잊지 않고 찾아주시는 고객들이 편안함을 즐길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종로점을 방문한 고객들이 메모지에 글을 적어 남겼다.

사실 민토의 예전모습이 점점 사라져가는 이유는 민토가 소위 잘나가던 시기 중고생들과 비슷한 또래의 소비자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국내 최초 생과일 전문 프랜차이즈 '캔모아'가 '레드망고'나 '설빙' 등에 설자리를 잃어간 것과 같은 이유다.    

스타벅스 등 대형 커피전문점이 전국적으로 매장을 확대해나갔고, 커피 등 음료뿐만 아니라 다양한 디저트용 메뉴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심지어 할리스커피나 카페베네 등의 프랜차이저는 '북카페'를 선보이며 민토만이 가지고 있었던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거나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독특한 장점을 잃어갔던 것이다.

이렇게 대기업들이 외식업에 본격 들어서며 가격경쟁력과 접근성에서 밀리고, 다양해진 먹거리로 소비자들의 마음에서 자연스레 멀어진 민들레영토는 이제 전환점을 앞두고 있다.

이 전환점에 있어서 문영주 BKR 버거킹코리아 대표의 성공사례는 해답을 제시해줄 수 있다.

문영주 대표는 '베니건스'로 유명한 오리온 외식사업계열사 '롸이온즈'의 대표로 성공가도를 달려오다 지난 2009년 돌연 대표직을 사퇴하고 외식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기능성 신발 관련시장에 뛰어들었다.

문 대표가 개발한 제품들은 대형 스포츠 의류 브랜드에서 전략상품으로 채택하고 TV광고에도 나올 정도로 히트를 쳤지만, 얼마 가지 못해 비슷한 상품들이 생겨나며 그만의 특별한 경쟁력을 잃어간 끝에 1년만에 사업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문영주 대표는 실패 후 다시 외식업계로 돌아왔고, 지금까지 동종업계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다. 자신이 가장 잘 알 수 있는 분야 그리고 본래로 돌아가 그만이 가지는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했기에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민들레영토도 마찬가지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저 바라만보거나 높은 장벽같은 대기업을 넘을 수 없기 때문에 현재에 안주할 것이 아니다.

젊은이들에게 문화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초기 정체성과는 달리 어른들의 사랑방으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지만, 이를 아쉬워 하는 그때의 젊은 고객층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대형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 식상함을 느껴가고 있는 현재의 젊은층을 민토의 주요고객으로 세운다는 전략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과거를 추억하고 그리워 하는 팬들을 떠올리며 추억 그때의 춤과 음악을 선사하기 위해 다시 뭉쳐 멋진 무대를 만들었던 젝스키스처럼, 그때 그 민토의 모습을 그리워 하고 안타까움마저 느끼는 고객들을 위해 민들레영토도 추억 그때의 모습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서예원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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