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200조원 규모 결제성 '예금계좌시장' 요동칠 전망

▲ 지난달 25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5년 하반기 우리은행 경영전략회의'에서 이광구 은행장(사진 가운데)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우리은행은 계좌이동제 실시에 대한 다양한 대응방안을 토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자경제=김정훈 기자] 지킬 것인가, 빼앗길 것인가.

올해 10월부터 시행되는 계좌이동제로 은행권이 들썩이고 있다. 시행 후 최대 200조원에 달하는 결제성 예금계좌시장이 요동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금융소비자들은 주거래은행이나 주거래 통장(가장 많이 쓰는 수시입출식 통장)을 바꾸는 게 쉽지 않았다. 월급, 통신비, 공과금 등 주거래계좌와 연결된 각종 자동 출금이체를 다른 계좌로 바꾸려면 일일이 직접 변경해야 해 무척 번거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10월부터 계좌이동제가 시행되면 각종 자동이체를 간편하게 옮길 수 있게 된다. 계좌이동제란 기존 주거래 은행 계좌를 다른 은행으로 옮기면 기존에 연결돼 있던 각종 이체 항목을 자동으로 일괄 이전하는 제도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계좌이동제도는 고객 입장에서 타 은행의 좋은 상품을 선택하기 편리해지며 혜택을 더 받을 수 있는 곳을 갈아탈 수 있어 소비자에게 유용한 제도"라며 "반면 은행 입장에서는 예금규모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이를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금, 예금 등의 금리가 높아질 가능성도 있어 고객붙잡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계좌이동제가 실시되면 226조원 규모의 은행권 수시입출금식 계좌를 두고 은행들 간의 쟁탈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핵심은 고객이 어떤 은행을 선택하느냐다. 대부분의 예금고객들은 주거래은행을 정한 후 이 틀안에서 예금을 인출하고 결제하는 경향이 컸다. 하지만 계좌이동제 실시 후 기존 고객들이 더욱 편리하고 혜택이 많은 타 은행으로의 이동이 용이해지면서 고객이탈률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설문에 따르면 은행 이용자 중 절반이 넘는 51%가 다른 은행의 서비스와 예·적금 금리가 유리하다면 낫다면 주거래은행을 바꿀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해외사례를 둘러봐도 지난 2013년 9월 계좌이동제를 도입한 영국은 제도 도입 1년 반 만에 약 175만건의 계좌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결국 금융소비자들이 나에게 더욱 유리한 예금계좌를 찾아 이동할 확률이 높아짐에 따라 은행들 간의 고객지키기 경쟁이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국내 시중 은행들은 관련 상품을 내놓고 금융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 KB국민은행은 계좌이동제를 대비 다양한 수수료 우대 혜택을 담은 'KB국민ONE라이프 컬렉션(통장∙카드∙적금∙대출)'를 출시했다.

국민은행은 최근 계좌이동제에 특화된 상품 'KB국민ONE라이프 컬렉션'을 출시했다. 이 상품은 통장·카드·적금·대출이 패키지로 구성됐으며 공과금 이체나 카드결제 실적이 1건만 있어도 수시입출금 예금인 'KB국민ONE' 통장의 수수료를 면제 받을 수 있고 기존과 신규 고객 모두 대출금리 할인 서비스도 누릴 수 있다.

앞서 우리은행은 지난 3월 시중은행 중 가장 먼저 계좌이동제에 대비한 '우리 주거래 고객 상품 패키지 상품'을 출시했다. 고객이 급여 및 연금 이체, 관리비 및 공과금 자동이체, 카드결제계좌 가운데 2가지를 이용할 경우 우대 혜택을 주는 상품이다.

입출금통장의 월 15회인 수수료 면제 혜택을 사용하지 않았을 경우 다음 달로 이월해 유효기간 없이 사용할 수 있고, 6개월 동안 우리 주거래 카드를 300만원 사용하면 연간 카드 포인트로 3만 포인트를 적립해준다.

신한은행의 경우 '신한 주거래 우대통장·적금 패키지' 상품을 출시했다. 

신한카드 결제실적이 월 30만원 이상이거나 공과금 자동이체를 하면 전자금융수수료와 자동화기기(ATM)를 이용한 인출수수료를 일부 면제해준다. 아울러 적금 상품은 거래 실적에 따라 주거래 고객에게 최고 연 1.30%포인트 추가 이율을 제공하는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한다.

이처럼 은행들은 수수료 면제나 포인트 우대 적립, 우대금리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해 기존 거래고객의 이탈을 막으면서도 계좌 이동이 쉬워진 신규 고객을 더 많이 모집할 계획이다. 시중은행 뿐만 아니라 한국씨티은행,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등 외국계 은행도 내부적으로 상품 준비 중이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현재 은행권들의 고객 붙들기 전략의 핵심은 예적금 금리를 높여주거나 대출금리를 깎아주는 금리유인전략, 수수료면제횟수, 면제대상고객범위확대, 계열사카드의 적립포인트 증대 등이다"라며 "어찌됐든 은행권의 경쟁에 금융소비자들은 권리와 편의성이 크게 증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앞으로 계좌이동제가 시행되면 수신 규모가 큰 은행들은 고객 이탈 우려가 심화되는 반면, 지방은행이나 외국계 은행 같은 소규모 은행들은 신규 고객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가능성이 크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계좌이동제는 오는 10월부터 온라인에서, 은행 창구를 통한 변경 신청은 2016년 1월부터 가능하다. 시행 초기엔 카드·보험·통신사 등 대형 회사들의 자동이체 항목이 우선 적용된다. 2016년 6월까지 자동이체 내역을 바꿀 수 있는 기관이 전체로 단계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단, 기존 계좌에 들어 있는 돈을 옮기려면 통장 가입자가 직접 새 통장에 돈을 이체해야 한다.


김정훈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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