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내부 깔끔해 읽는데 지장 없어도 폐기

[소비자경제=정명섭 기자] 인터넷 서점의 중고책 검수 기준이 석연치 않고 그 기준에 대한 명확한 표시가 없어 중고책 판매자가 혼란을 겪고 있다.

마음의 양식을 쌓을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은 중고로 책을 구매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중고책은 시중가보다 절반에 가까운 가격으로 팔기 때문에 독서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요즘은 대형 서점들이 중고책을 일반 판매자들에게 직접 구매해 이를 검수한 뒤 재판매하고 있어 누구나 손쉽게 중고책을 사고 팔 수 있다.

독서가 취미인 전남 순천에 사는 박 모(38)씨는 평소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11권의 책을 중고로 팔기 위해 대형 인터넷 서점 'YES24'에 보냈다. 평소 책을 깨끗이 읽는 습관이 있는 박 씨는 당연히 최고 등급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서점 측에서 받은 중고책을 검수한 뒤 ‘최상·상·중·하’ 등으로 등급을 매겨 차등적으로 가격을 책정한다).

그러나 2권의 책을 제외한 나머지는 제일 낮은 등급인 ‘하’를 받아 ‘폐기’ 처분을 받았다. 겉표지에 표기한 이름 때문이었다.

▲ 이름 표기 때문에 폐기된 책들

박 씨는 “조그맣게 이름을 써놓긴 했지만 책 내부는 깨끗해서 읽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며 “멀쩡한 책을 폐기 처분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폐기 처분이 들어가게 된 건 박 씨의 선택이었다. YES24 홈페이지에 접속해 중고책 판매를 신청할 때 YES24 측이 구매 하지 않는 중고책들에 대해서 판매자가 ‘폐기’와 ‘반송’ 중 선택할 수 있다.

▲ 폐기 또는 반품을 신청할 수 있지만 폐기 기준에 관한 내용은 명시돼 있지 않아 판매자 측이 오해할 여지가 있다. (출처=YES24 홈페이지)

박 씨는 “상태가 너무 심각한 책들에 대해서만 폐기처분 하는 줄 알았다”며 “이름 하나 썼다고 상태가 양호한 책들이 폐기될 줄 누가 알았겠냐”고 말했다.

돌려받고 싶었지만 업체 측으로부터 이미 폐기 창고로 옮겨져 해당 책을 찾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박 씨는 “이럴줄 알았으면 차라리 도서관에 기부할 걸 후회하고 있다”며 “멀쩡한 책들을 과연 YES24 측이 폐기하는지, 다시 중고책 판매에 재사용 하는지 의심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현재 한국소비자원에 해당 사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상태며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YES24의 한 관계자는 “중고책 관련 정책상 이름이 써 있는 것은 낙서로 간주돼 저희가 중고책으로 받지 않는다”며 “중고책 판매 신청을 진행할 때 저희가 명시한 부분”이라고 답했다. 폐기 처분한 것에 대해서는 “이미 폐기 창고로 넘어가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홈페이지상에 이러한 내용이 명시돼 있지만 판매자 입장에서 이를 놓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도서 주인의 이름이 책 표지 혹은 내지에 표지된 경우’라는 이용안내를 보려면 ‘바이백 불가 상품 보기’라는 메뉴를 따로 눌러야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확인하지 못하면 박 씨와 같은 피해자가 더 나타날 수 있는 부분이다.

▲ '바이백 불가 상품 보기'라는 메뉴를 눌러야만 '도서 주인의 이름이 책 표지 혹은 내지에 표기된 경우'라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YES24 홈페이지)

본지에서 다른 대형 중고 서점에 같은 문의를 했다. ‘인터파크’ 측도 YES24와 같이 “책 상태에 상관없이 이름이 써 있으면 최소 등급인 ‘하’ 판정을 받을 수 있고 100원이라는 가격으로 책정될 수 있다”며 “가급적 이름을 쓴 책은 보내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이어 “반송을 받고 싶으면 입금되기 전에 신청을 하셔야 한다”며 “개별적으로 연락을 드리지 않아 판매자 측에서 확인해야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대형 서점인 ‘알라딘’ 측의 입장은 달랐다. “이름이 써 있어도 받는다”며 “상품 등급이 떨어질 순 있으나 책 내부에 심각한 이상이 없으면 구매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또한 “폐기 처분은 하지 않고 다시 판매자에게 반송한다”며 “도착품의 상태가 신청한 내용과 현저히 차이가 나는 경우 반송비를 일부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 한 관계자는 이번 사안에 대해 “판매자측이 중고책 매입 기준을 제대로 확인 안한 잘못도 있지만 YES24에서 확실하게 이를 명시하지 않은 잘못도 있는 것 같다”며 “서점마다 규정이 다르지만 판매자 측이 꼭 알아야 할 주요 사항에 대해서 쉽게 눈에 띄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명섭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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