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 중심 업무 개시 조금씩 늘어나…원유와 철강은 반출불능 여전
ILO, 화물연대 업무개시명령에 개입…정부 “개입 아닌 의견 전달일뿐”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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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가 총파업을 개시한지 12일째에 들어서면서, 물류 피해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철강과 타이어 업계에서는 물량을 반출하지 못해 재고를 내부에 쌓아두고 있으며 기름이 동난 주유소도 속속 나오고 있다.

다만 정부가 시멘트 운수종사자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지난달 29일 이후 시멘트 출하량이 점차 늘고 있으며, 주요 항만의 컨테이너 반출입량이 회복세에 들어섰다. 그러나 ILO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국제 노동 규약 위반으로 보고 긴급 개입하면서 상황이 악화되는 모양새다. 

경북지역 철강산업 피해는 5일 기준 약 1400억원 규모로 추정되고 있다. 포항 철강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출하 차질을 빚고 있는 업체들은 긴급 물량에 대해 경찰 협조를 받아 출하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회사 안에 쌓아두는 실정이다.

광양제철소 역시 매일 1만 7000t가량의 철강을 반출하지 못해 쌓아두고 있다. 거기에 임시 야적장까지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보여 일부 공장 가동 중단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을 비롯한 현대제철 전국 5개 공장에서도 하루 5만t가량의 제품 출하에 차질을 빚고 있다.

타이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타이어 대전·금산 공장은 평소 하루 150여대의 컨테이너를 반출했지만 현재는 40%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반출되지 못한 타이어는 빈 컨테이너에 채워 넣고 있다. 만약 파업이 장기화하면 이마저도 어려워 생산마저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파업 첫날부터 서산 대산공단 내 하루 150∼200대가량의 탱크로리가 한 대도 못 나가 석유류 운송이 전면 중단됐다. 이러한 여파로 지난 4일 14시 기준 88곳의 주유소에서 기름이 바닥 났으며, 지역별로는 서울 34곳·경기 20곳·강원 10곳·충남 10곳 등에서 품절 안내문을 붙였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서울 시내 주유소에 휘발유 품절 표시문이 부어있다. [사진=연합뉴스]
화물연대 파업으로 서울 시내 주유소에 휘발유 품절 표시문이 부어있다. [사진=연합뉴스]

다만 시멘트는 평소의 70~80%로 유지되고 있다. 이는 지난달 29일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으로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 출하가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으로, 성신양회 단양공장은 5일 오전 BCT 414대분 1만 770t의 시멘트를 출하했으며 아세아시멘트 제천공장은 1만600t을 출하했다. 전남·강원·울산·경북지역에서도 파업 직후 하나도 없던 시멘트 출하가 업무개시명령 이후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인천항의 컨테이너 반출량도 회복 추세에 있다. 부산항은 지난 4일 오후 기준 1만862TEU로 평시 대비 42.4%까지 반출량을 회복했으며 장치율은 68.3%로 평소 수준을 ㅇ지하고 있다. 인천항은 같은날 690TEU를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달 주말 평균 반출량인 244TEU의 2.8배에 달하는 수치다. 장치율 역시  76.7%로 평시와 비슷한 것으로 확인됐다. 

삭발하는 이봉주 화물연대 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삭발하는 이봉주 화물연대 위원장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이같은 업무개시명령에 유엔의 산하기관이자 국제 노동기구인 ILO가 개입해 정부의 의견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국제운수노련이 지난달 28일  ILO에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개입해줄 것을 요청한데 따른 것으로 카렌 커티스 ILO 국제노동기준국 부국장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현정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귀하가 제기한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에 즉시 개입하고, ILO 입장을 전달했다”면서 “앞으로 한국 정부가 제공하는 모든 정보를 귀하에게 전달할 것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이같은 ILO의 개입을 사실상 의견 조회라고 일축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일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대책회의 브리핑에서 관련 질의를 받고 “ILO로부터 사무총장 명의로 서한이 온 것은 맞다”면서도 “다만 이는 단순한 의견조회에 불과한 것으로 저희는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순히 넘겨 짚기에는 그렇게까지 녹록한 상황은 아니다. 한국은 ILO 전체 회원국 중 평균 47개에도 못미치는 29개의 협약만을 비준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반드시 비준해야 하는 8개 협약중 4개 협약을 비준하지 않아 30년 가까이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올해 3월 ILO 총재에 선출되지 못한 이유도 한국이 노동 후진국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 이유 중 하나로 작용했다. 

정부가 비준하지 않은 핵심협약은 단결권과 단체협상권, 강제노동금지에 관한 협약으로  2021년에도 강제노동 금지 협약만은 끝까지 비준하지 않았다. 특히 이번 업무개시명령은 강제노동 금지 조항에 포함되는 사례이기 때문에 추후 한국이 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정부가 강제노동금지협약에 비준하지 않는 이유는 사회복무요원 제도 운용 등이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남준 화물연대본부 부위원장(오른쪽)이 5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화물노동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과 노조 탄압과 관련해 국가인권위가 나서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남준 화물연대본부 부위원장(오른쪽)이 5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화물노동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과 노조 탄압과 관련해 국가인권위가 나서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화물연대는 5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기본권 침해라는 의견을 표명해달라는 진정서를 내고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업무개시명령 철회를 권고하는 의견표명이나 인권위원장 성명을 내달라”고 요청했다. 

화물연대는 진정서 제출 앞서 국제민주연대,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등과 함께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위는 화물노동자 파업에 대한 행정권 발동이 헌법상 기본권과 국제기구 협약을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살필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들은 “업무개시명령은 2004년 도입된 후 국내외에서 노동3권을 침해한다고 비판받아 지난 18년간 한 번도 발령된 적이 없다”면서 “이는 헌법은 물론 단결권 보호 의무를 규정한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 협약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오남준 화물연대 안전운임추진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정당한 사유 없이 집단으로 화물 운송을 거부한 게 아니라 화물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다”면서 “화물연대 파업은 정당한 노동조합의 권리행사다”고 말했다.

소비자경제신문 권찬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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