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 2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경제6단체장들과 오찬 회동을 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 2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경제6단체장들과 오찬 회동을 했다. [사진=연합뉴스]

규제가 공공의 적이 되는 분위기가 또 다시 연출되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정권은 기업의 환심을 사려는 듯이, 아니면 지지에 대한 화답이라도 하듯이 ‘규제를 풀 것’을 새롭게 약속하며 임기를 시작한다.

이번이라고 다를까. 어김없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민간 주도 시장경제를 경제 정책의 대전제로 삼아 추진할 의사를 밝히면서 최우선 과제로 규제 개혁을 선언했다. 아직 일종의 규제 개혁을 알리는 캐치프레이즈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앞서 경제 6단체장을 만난 뒤 “신발 속 돌멩이 같은 불필요한 규제들을 빼내겠다”고 밝혔으니 ‘신발 속 돌멩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매번 정권이 탄생할 때마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특히나 어김없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 규제 완화와 규제 개혁을 입에 달고 시작을 했던 기억이 우리에게는 있다.

이명박 정부 때 ‘전봇대’를 비롯해 박근혜 정부에선 ‘손톱 밑 가시’로 비유됐던 규제 개혁은 문재인 정부에선 ‘붉은 깃발’ 등으로 표현만 바뀌었을 뿐 그다지 달라지거나 새로운 것은 없었다.

규제는 이제까지 기업들의 성장을, 나라 경제 발전을 위한 손발을 묶은 수갑과 족쇄처럼 치부되면서 다시금 혁신의 대상이자 모든 산업경제 위험신호의 원흉이 됐다.

규제에게 죄가 있을까. 규제는 활용 여부에 따라 애초 원론적 가치와 실질적 수치 사이에서 양의적 의미를 가진 단어일 수밖에 없었다. 무형의 기준을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면서 동시에 유형의 실물 효과를 위한 최대한의 프런트라인으로써 역할을 수행했다. 그럼에도 규제는 언제나 타파의 대상인 것처럼 소환을 반복해 왔다.

그렇다면 규제는 천덕꾸러기인가. 규제를 풀면 다양한 경제 지표가 달라질 것처럼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은 한 목소리로 규제 개혁을 외치고 있다. 지난달부터 시행된 탄소중립기본법으로 철강, 자동차, 전자 등 국내 주력 제조업체들이 당장 가격 급등이 예상되는 탄소배출권을 더 많이 구입해야 해 재무 부담이 부는 만큼 비상이 걸렸다고 하는 한편, 중대재해처벌법에 이어 사망 사고 발생 때 영업정지 등의 벌칙을 규정한 건설안전특별법 도입이 논의되자 원자재난과 금리 인상 그리고 안전규제 강화에 건설사들이 ‘3중고’에 빠졌다고 우는 소리를 내고 있다.

기업이 살려면 규제는 없어져야 하는 그 무엇이 되는 것처럼 ‘규제를 폐지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규제의 완화, 개혁을 외치는 이들은 규제가 왜 만들어졌는 지에 대해선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탄소중립기본법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탄소)를 감소하자는 전 지구적 의제에 동참하고자 정부가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내용을 법제화 한 것이고, 중대재해처벌법은 말 그대로 산업현장의 안전 의무를 소홀히 한 최고책임자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뿐이다. 말 그대로 규제는 ‘환경’·‘안전’ 등 이상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마지막 행동 준칙의 매뉴얼이고 약속이다. 이마저도 기업과 개인의 습관이 돼야만 그 실효를 조금이나 감지할 수 있는 미약한 원칙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쏟아지는 십자포화는 규제의 취지가 무색하게 적을 대하는 듯한 모습을 띠고 있다. 최근 카페와 PC방 등에서 일회용 용기 규제가 다시 부활했다. 환경부는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며 현장 혼선을 최소화하려고 하는 등 일회용 줄이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일회용 용기 규제의 뜻에 공감, 다 같이 작은 불편을 감수하면서 동참하고 실행에 옮길 때 환경 규제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일회용 용기 제작업체의 앞날을 걱정하지는 않는다. 일회용 제조업의 경기를 생각한다면 환경 규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뚫고도 국내 상장사들은 지난해 역대 최고의 실적을 거두며 잘 나갔다. 규제에 묶여 있다는, 그래서 풀어줘야 한다는 그 산업경제 시스템에서 매출·이익의 최고점을 찍은 것이다. 규제 때문에 더 할 것을 못 했으니 더 풀어야 한다면 나름 논리는 성립할 수 있다.

규제는 죄가 없다. 규제의 존재 이유는 시장 만능주의와 자유방임의 확대를 막기 위한 마지막 보루이자 규칙의 다른 이름이다. 규제를 풀기 이전에 규제가 필요한 이유에 대한 심도 있는 숙고와 시장이 마냥 풀려서 초래할 수 있는 과잉, 과열, 환경 파괴, 무한 경쟁이 가져올 다수의 피해 등 부작용을 막을 최소한의 장치로써 의미를 재차 되새겨야 한다.

규제는 시대적 흐름과 요구에 따라 어떻게 활용하고 보완하느냐의 문제이지 폐지하고 없어져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규제 그 자체는 산술적·기계적 가치를 따질 수 없다. 규제는 다수의 부를 위해서도 존재해야 하고 ‘보이지 않는 손’처럼 시장 균형과 분배, 안전과 공존을 위해서도 마땅히 있어야 할 규범적 자연적 가치이다.

소비자경제신문 노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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