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남성 우월주의자 마초로 살다 갈 뻔했다.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 스걸파(스트릿 댄스 걸스 파이터)를 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스우파는 지난 8월 24일부터 Mnet에서 방영했던 여자 댄스 크루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주로 그동안 백댄서로서 말 그대로 가수의 보조자(back)로서 가수의 그늘에서 존재감을 잘 드러내지 못했던 춤꾼들을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게 한 프로그램이다. 스걸파(스트릿 댄스 걸스 파이터)는 이런 스우파의 뜻밖의 흥행에 힘입어 지난 11월 30일부터 편성된 10대 여고생 댄스 크루를 뽑는 스핀오프(파생작, spin-off) 프로그램이다. 스스럼없이 쏟아내는 대화 속에 담백하고 솔직한 수평소통의 리더십 진수를 볼 수 있었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깔끔하게 갈등을 비켜가는 세련된 경쟁 매너가 돋보였다. 그들 속에 잠재된 용암 같은 뜨거운 에너지와 끼를 보면서 왁킹·락킹·보깅·잼 등 춤의 다양한 용어도 자연스럽게 익혔다.

우리가 남성과 여성의 일반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면 선천적인 신체적 차이에 기반하여 여성의 존재는 부드럽고 섬세하지만 물리적으로는 남성의 도움이 필요한 나약한 이미지로 고착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스우파와 스걸파를 보면서 그동안의 편견과 일방의 관점에 반전이 일어났다. 그들의 재기와 열정과 힘은 놀라웠고 남자를 능가했다. ‘파워풀(Powerful)’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 새로운 역사의 서막이 시작된 것이다. 시대 흐름을 넘어 거대한 쓰나미다. 성경에서조차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었다고 했는데, 이 말을 단순하게 받아들여 물리적인 힘 외형의 논리로만 보게 되면 관점의 오류다. 남녀는 우월과 열등의 불평등 창조가 아니라 특성이 다르게 창조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또 다른 백(back)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등반가의 그늘 셰르파들이다. 100년 전인 1921년 영국의 에베레스트 1차 원정대 맬러리 이후, 에드먼드 힐러리(1919∼2008), 우리나라의 박영석(1963∼2011), 엄홍길 등 많은 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를 올랐다. 그들과 함께 오른 수많은 네팔의 셰르파가 있었지만, 이들 등반가들의 그늘에 가려 조력자로 오르내리는데 그쳤다.

그런데, 최근 반전이 일어났다. 2019년 네팔인 셰르파들로 원정대가 꾸려졌고 6개월 6일 만에 8000m급 14개 봉우리를 올랐다. 이전 14좌 등정 최단 기록은 7년이었다. 나르말 님스 푸르자가 이끄는 네팔 원정대는 2021년 1월 16일 세계 최초로 K2 동계 등정에도 성공했다. 님스는 “우리의 모든 산을 외국인들이 올랐지만, 마지막 난제인 겨울의 K2는 우리가 올랐다”며 감격했다. 네팔인 셰르파들이 에베레스트의 주연임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전혀 다른 지점의 백(back)인 스우파와 셰르파 원정대의 공통점은 back에서 front로, 음지에서 양지로, 조연에서 주인공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없었던 그들의 능력이나 존재가 새삼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역할이나 능력이 새로워진 것도 아니다. 단지 조명의 방향만 바꿔졌을 뿐이다. “대한민국 댄서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돼 있었습니다.” 스우파 최종 우승 크루 타이틀을 거머쥔 홀리뱅의 리더 허니제이가 한 말이다. 이것은 주연, 주류만 인정받는 세상에서 조연, 비주류 모두가 인정받고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신호탄이다.

흔히들 삶을 바둑으로 비유한다. 바둑에서 모든 돌은 똑같다. 무게도 모양도 크기도 같다. 다만, 두는 순서 타이밍에 따라 힘의 흐름과 판도가 달라진다. 이제 세상의 시선과 조명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덕분에 늘 그림자로 있던 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인생에서 처음부터 미리 정해진 주인공은 없다. 스우파와 스걸파에게 무한한 박수를 보낸다.

글 : 최송목 『사장으로 견딘다는 것』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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