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삼신불좌상 2008년 보물 지정 이후 13년 만에 국보지정
최근 복장 유물 등 통해 시기와 제작 이유, 제작자 등이 알려져
17세기 불교사상과 미술사 연구의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아

문화재청은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시켰다.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은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시켰다. 사진=문화재청

국내 유일의 삼신불이자 조선 후기 불상 가운데 우수한 조형미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화엄사(華嚴寺) 목조비로자나불삼신불좌상(木造毘盧遮那三身佛坐像)이 국보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28일 보물 제1548호 화엄사 목조비로자나불삼신불좌상을 국보로 승격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화엄사 목조비로자나불삼신불좌상은 전라남도 구례군 화엄사 대웅전에 봉안된 3M가 넘는 크기의 3개의 조선시대 불상으로 지난 2008년 보물로 지정되어 조선 시대 17세기 불교사상과 미술사 연구의 중요한 사례라는 평가를 받았다. 

삼신불은 법신(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보신(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 화신(化身) 석가불(釋迦佛)로 화엄사상에 기반한 그림과 조각상을 말한다. 국내 유물에서는 변상도(變相圖, 불교 경전 내용을 소재로 한 그림)나 사경(寫經, 손으로 베낀 경전)등 불화(佛畵)로 주로 존재하나 조각으로는 화엄사 목조비로자나불삼신불좌상이 유일하다. 특히 화엄사 목조비로자나불삼신불좌상의 노사나불은 삼신불 중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문화재청은 “17세기에 제작된 목조불상 중 가장 크고 조각으로 삼신불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불교조각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크고 중요하며 예술·조형적 수준도 조선 후기 불상 중 단연 돋보이므로 국보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다.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의 정면 모습. 왼쪽부터 석가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이다. 사진=문화재청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의 정면 모습. 왼쪽부터 석가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이다. 사진=문화재청

화엄사 목조비로자나불삼신불좌상이 국보로 지정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불상 내의 복장유물 등을 통해 제작자와 후원자, 제작 시기, 제작 과정, 제작 이유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화엄사 목조비로자나불삼신불좌상은 지난 1635년~1636년(인조 13년~14년) 경 수화승(首畵僧) 청헌(淸憲)을 비롯하여 부화승(副畵僧) 영이(英頤), 인균(印均), 응원(應元)이 화엄사 대웅전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했다.

이들이 화엄사 목조비로자나불삼신불좌상을 제작한 이유는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화엄사를 재건하기 위함으로 당시 국내 불교의 대표였던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 벽암 각성(1575년∼1660년)의 주관으로 선조의 8번째 아들인 의창군 이광(1589년∼1645년) 부부와 선조의 사위 동양위 신익성(1588년∼1644년) 부부 등 총 1320명이 시주자로 참여했다.

문화재청은 발견된 복장유물 등 기록을 토대로 “당시 가장 유명했던 조각승 집단인 청헌파와 응원·인균파가 참여한 만큼 표현에서도 각 유파의 조각 특징을 잘 보여준다”면서 “근엄한 표정의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상은 청헌파가 제작한 것으로 판단되며 부드러운 얼굴에 작은 눈과 두툼한 눈두덩이가 표현된 노사나불상은 응원과 인균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문화재청은 이날 신규 보물로 울진 불영사 불연(1670년 제작·현종 11년), 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소조십육나한상 일괄(1656년 제작·효종 7년), 우암 송시열(1607년∼1689년)의 초상화를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중 불영사 불연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소조십육나한상 일괄은 조선 후기의 불교 공예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소비자경제신문 권찬욱 기자

문화재청은 울진 불영사 불연 등 문화재 3종을 보물로 지정했다.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은 울진 불영사 불연 등 문화재 3종을 보물로 지정했다. 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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