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는 두 가지 상반된 슬로건을 동시에 외치고 있다. 하나는 정치, 사회, 기업 등에서 말하고 있는 청년 기수론이다. 기존의 구습을 벗어나 새로운 4.0 시대에 적응하려면 젊고 신선한 세대가 이 시대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수명도 늘어났으니 60세 정년으로 물러날 것이 아니라 80세, 90세, 100세까지 은퇴 없이 현역으로 활동하자는 슬로건이다.

다 설득력 있고 맞는 말이지만 모순의 충돌이다. 이 둘의 슬로건 중 어느 쪽을 따라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각론과 상황에 따라 달리 적용되어야 할 주제이고 이분법의 분리 배척이 아니라 통합의 융복합 문제다. 순발력을 근간으로 하는 논리 기술적 판단 결정은 젊은 청년들이 잘 할 수 있는 기능이고, 경험과 통찰을 근간으로 하는 지혜의 판단 결정은 노련한 시니어들이 잘 할 수 있는 기능이다. 그리고 이 모든 기능의 지향점은 조직의 영속적 발전이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변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시대에 연로한 오너가 판단 결정하는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무르는 것은 당사자는 물론이고 조직의 효율적 운용 측면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한다. 오너들은 보통 자기는 변화하지 않으면서 조직만 바꾸려 한다. 그럴 경우 기업 당대는 유지할 수 있지만 2대, 3대 지속을 담보할 수 없다. 시대가 변하고 상대가 변하며 자신이 변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로병사가 있듯이 기업도 흥망성쇠의 사이클이 있다. 자연법칙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한다. 누구나 현역으로 오래 머물고 싶고 80대, 90대 나이에도 젊은 직원들과 함께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개인적으로는 아름다울 수 있지만, 물리력만 강조하는 그런 노익장은 한편으로 개인의 이기심으로 비칠 수 있으며 조직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부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특히 자수성가형 사장이 그 자리에 오래 머물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다. 자기 손으로 회사를 일궜기에 본인 삶의 일부로 생각하고 애착이 누구보다도 강하다. 나이는 결코 숫자에 불과한 게 아니다. 나이가 들면 육체적·정신적 전반적으로 기능이 떨어진다. 큰 분노는 잘 다스리지만 작은 분노는 다스리기 힘들어진다. 큰 분노는 이성으로 다스릴 수 있지만, 작은 분노는 대개 간 기능이 쇠퇴해서 감정이 예민해진 결과이기 때문에 자신도 통제하기 어렵다. 특히 판단력과 순발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기능은 사장에게 가장 필요한 핵심 기능이다. 물리적 신체를 아직 조금 더 움직일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장 자리를 끝까지 꿰차고 있다면, 뜻밖의 돌발 사태에 대응하지 못하고 단번에 몰락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 한 사람의 노쇠한 뇌 활동에 수많은 직원과 그 가족이 생사를 걸어야 한다면 그것은 러시안룰렛 같은 일종의 도박이다. 논리 기술적 판단과 발 빠른 결정은 젊은 청년들에게 맡기고 통찰과 지혜를 나누는 훈수꾼 자리로 서서히 역할 이동을 해야 한다.

스스로 물러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엄청나게 두려운 선택이다. 그것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수성가형 사장이나 오너가 위임과 승계를 미루거나 꺼리는 이유는 대략 4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 영예를 잃을 것에 대한 염려다. 둘째는 좋아하는 일을 계속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 욕심이다. 셋째는 후계자의 능력에 대한 불안감이다. 넷째는 당장 매출 올리기에도 시간이 빠듯한데 따로 훈련을 시킬 여유가 없다는 현실적 초조감이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권력자가 많았다. 하지만 그 당시 모두가 그렇게 믿었던 그 권력자의 사후에 무엇이 달라졌는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조직이든 세상이든 리더 한 사람이 큰 흐름을 바꾸지 못한다. 설령 그의 사후 세상이 변한다 해도 그것은 역사의 변곡점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사장은 어느 정도의 역할이 끝나면 후계자를 세우고 물러나는 것이 리더의 도리다. 그것이 조직의 연속성을 위해 리더가 취해야 할 마지막 책무이며, 세월과 세대의 고리를 이어가는 지도자의 덕목이다.

한편 승계하고 물러나는 것이 신구(新舊) 물갈이 같은 단순 이분법적인 시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신구의 이별이 아니라 신구의 새로운 만남이다. 청년과 노익장의 신구 조합을 통하여 각자 잘하는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열정과 순발력으로 무장된 젊은 청년과 경험과 통찰로 다져진 시니어 베테랑이 뭉치는 것이다. 최근 일부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에서는 은퇴한 전문가를 자문이나 고문으로 위촉하고 그들의 오랜 경험을 기업의 방향 설정과 지혜의 소중한 셰르파로 활용하고 있다. 회사 후계 구도에서도 회장과 사장, 이사회의장과 대표이사 등의 관계로 열정과 경험이 조합을 이루는 융복합 조직으로 가고 있다. 이때 조직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성숙한 구조로 익어가는 것이다.

미래경영컨설팅 최송목 대표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소비자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