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선한 중재도 무시한 LG· SK…이제는 구광모, 최태원 회장이 나설 때

어느날 조개가 껍데기를 벌리고 햇볕을 쬐었다. 갑자기 도요새가 날아와 부리로 조갯살을 쪼자 깜짝 놀란 조개는 조가비로 부리를 잡았다. 도요새가 “비가 오지 않으면 너는 말라서 죽는다”고 말했다. 조개도 지지 않은 채 “내가 놓아주지 않으면 너야말로 굶어죽는다”고 대답했다. 새와 조개가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지나가던 어부는 힘들이지 않고 새와 조개를 모두 잡았다.

중국 전국시대 종횡가 소대는 연(燕)나라를 위해 조(趙)나라 혜문왕을 설득했다. “조(趙)가 연(燕)을 정벌하려는데 두 나라가 오랫동안 버텨서 백성이 지치면 강한 진나라가 어부가 될까 걱정입니다.” 어부지리(漁父之利) 이야기를 들은 혜문왕은 “옳은 말이다”며 전쟁을 포기했다. 그러나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선도하는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과 SK이노베이션(이하 SK)의 작태를 보면 중국과 일본 배터리 회사가 어부지리를 누릴까 걱정된다.

LG가 조(趙)를 닮았다면 SK는 연(燕)과 비슷한 처지다. LG는 2019년 4월 배터리 관련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SK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했고 올해 2월 승소했다. SK가 LG 직원과 함께 배터리 공정기술도 빼갔다는 LG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판결이 확정되면 SK는 앞으로 10년 동안 리튬이온 배터리를 미국에 수출할 수 없게 된다. 비가 오지 않는다면 조개가 말라죽을 거라고 생각한 도요새처럼 LG도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만 없다면 SK에 완승을 거둘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소송은 끝났으나 동상이몽은 여전하다. LG는 2조원대 합의금을 바라지만 SK는 약 8천억원대로 마무리하길 바란다고 알려졌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 공장을 짓기로 한 SK는 미국 대통령이 ITC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기를 바란다. 약 3조원에 육박하는 SK 투자를 유치한 조지아주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공화당)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SK 배터리 수입금지 조처에 거부권을 행사해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도요새 부리를 꽉 물며 저항한 조개처럼 SK는 ‘조지아주 투자로 거부권이 행사되면 오히려 네(LG)가 망한다’는 속셈이다.

오죽 했으면 정세균 총리가 약 2,300년 전 소대처럼 나섰을까. 정 총리는 지난달 LG와 SK 소송에 대해서 “정말 부끄럽다.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소송비용만 수천억원을 들여서 미국에서 다투는 사이에 경쟁자인 중국 회사만 반사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LG와 SK 최고 책임자에게 합의를 권유했던 총리는 “낯 부끄럽지 않느냐? 국민 걱정을 이렇게 끼쳐도 되느냐”고까지 말했다. 독일 자동차 회사 폭스바겐도 “두 회사의 싸움에서 폭스바겐이 의도치 않은 희생자다”면서 “두 회사가 법정 밖에서 합의하길 희망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LG와 SK는 마치 도요새와 조개처럼 물러서지 않았다. LG는 최근 조지아주 상원의원(민주당)에게 편지를 보내 SK 조지아주 공장을 인수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ITC 결정으로 SK가 공장을 짓지 못할 경우 LG가 투자할 수 있다는 제안이다. 미국 정부가 투자유치와 고용창출 때문에 거부권 행사를 고민한다면 LG가 해결하겠다는 뜻이다. 가뭄에 단 비로 상징되는 거부권이 흔들리자 SK는 16일 LG의 제안을 비난하면서 거부권 행사를 막기 위한 이간질이라고 단언했다.

정세균 총리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세계 자동차 판매 1위인 폭스바겐은 2023년부터 단계적으로 각형 배터리를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LG와 SK가 생산하는 파우치형 배터리를 중국 CATL 등이 생산하는 각형 배터리를 바꾸겠다는 뜻이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 1위인 CATL은 어부지리를 통해 점유율을 높일 기회를 잡았다. 이쯤 되면 LG그룹 구광모 회장과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나서야 한다. 그동안 실컷 싸웠으니 합리적으로 협의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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