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의 세계적 석학 ‘필립 코틀러’ 교수는 마케팅의 지향점을 ‘고객을 알고 이해하여 내 제품이나 서비스를 고객에게 맞추어 저절로 팔리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관심, 무표정이라고 한다. 사람의 얼굴 근육은 80가지며 이 얼굴 근육이 만들어 내는 표정은 7000~8000가지나 된다. 고객을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고객에 대한 관심과 호감의 표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표정없는 얼굴로 다가간다면 그 얼굴은 로봇의 얼굴이나 다름없다.

장사가 안되는 이유 70%가 무표정이라는 조사 통계도 있다. 음식점에 방문했을 때 직원이 하던 일을 멈추고 반갑게 영접인사를 해야 하지만 무표정의 얼굴로 말로만 ‘어서 오세요’라는 말만 하는 음식점 또한 적지 않다. 고객은 점주의 표정을 통해 자신의 관심 여부를 판별한다. 자신의 매장에 방문한 고객의 관계를 만들어 가려면 우선 고객에 대한 관심표현이다. 관심 표현은 표정에서 시작된다.

고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를 기억하는가? 내가 고객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 고객은 이미 내 가게로 와 충성고객 즉 꽃이 되었다는 의미는 아닐까?

1953년 영국 왕립 런던 대학에 근무하던 콜린 체리(Colin Cherry)는 인간의 집중력을 실험한 바 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대화를 하는 가운데 상대방과의 대화에만 집중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수많은 대화로 실내가 아주 시끄럽다고 해도 들리는 말들은 따로 있다. 인간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다양한 목소리가 귀를 통해 들어와도 인간의 뇌는 그 중에 한 목소리만 선택해서 처리를 한다.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누군가 멀리서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면 자연 그 방향으로 고객을 돌리고 귀를 기울이기 마련이다.

이처럼 자신의 이름만큼 익숙하고 소중한 것 있을까? 태어나면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불려졌던 이름, 이름을 불러주는 만큼 기분좋은 일 없을 것이다. 필자는 서울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했다. 세탁소를 방문해서 양복과 와이셔츠를 맡겼다. 3일 후에 찾으러 오라고 했지만 지방 출장으로 바빠서 10일 후에 다시 갔다. 세탁소에 들어서자 마자 그 주인은 필자의 얼굴을 보더니 환한 화색의 표정으로 반갑게 맞이했다. 두 번째 보는 얼굴인데 말이다. 필자의 이름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그 주인은 필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세탁된 옷을 포장해 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세탁소 여러 곳 다녀봤지만 이렇게 기분좋은 경험은 하지 못했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만큼 기분좋은 일 또 있을까? 이름은 사람을 구분하고 가려낼 수 있는 그 사람의 개인화된 고유성이다.

필자가 대학교 강의를 할 때 둘째 주 강의시간에는 얼굴만 보고 이름을 불러준 적이 있었다. 학생들과 금방 가까워졌고 학생들도 기분 좋아하고 만족했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에 대한 최고의 관심 표현이다.

음식점에서 그 많은 고객의 이름을 어떻게 아느냐고 질문을 한다면 답을 할 방법이 없다. 필자가 강조하는 것은 고객의 이름을 알만큼 관계지향의 서비스를 하라는 말이다. 고객을 하나의 그룹(1+N)으로 보지 말고 고객을 한사람, 한사람으로 보면서 고객의 말과 행동을 통해 고객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 고객에 맞는 서비스를 연출해내야 한다. 로봇처럼 무표정의 얼굴로 획일화된 서비스가 아니라 진정 고객이 바라고 원하는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매뉴얼화된 뻔한 서비스는 만족하지 않는다. 뻔한 서비스는 영혼없는 빈 껍질이다. 고객의 각기 다른 고객의 입맛을 반영하고 고객의 선호를 기반으로한 고도의 개인화된 서비스가 전달되지 않는다면 결국 경쟁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소비자는 이제 초개인화된 서비스를 요구하고 있다. 취향 소비사회라고 불릴만큼 소비자는 점점 각자의 일상의 취향과 관심사에 기반한 자신에게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요구한다.

우리가 고객의 이름을 알 정도로 가까워진다면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를 알고 이에 보다 적극적인 응대로 고객맞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객을 개인이 아닌 고객 전체의 집합체로 본다면 천편 일률적인 서비스로만 일관할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고객의 요구를 섬세하게 파악하여 이에 잘 응대를 한다는 것은 디지털 환경에서 큰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객의 이름을 알고 기억할 정도로 고객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서는 노력을 한다면 고객과의 지속적인 유대감 증진을 통해 고객으로부터 보다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인간의 내면 욕구에서 가장 큰 욕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만큼 인정욕구가 충족되는 것 또 있을까? 판매자와 소비자가 아닌 점주와 000님 고객으로 관계지향의 서비스를 연출해야 고객은 다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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