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가 장기화하면서 발생 년 초만 해도 수개월 내 금방 개발될 듯이 떠들어 대던 정치권과 제약사들의 공언과는 달리 백신은 쉽게 개발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 신기루 같은 약을 기대하기보다는 코로나와 함께하는(With Corona, WC) 시대를 인정하고 인내심을 가져야 할 듯싶다. 결국은 개발되겠지만 그 또한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사이 또 다른 변종이 나타나는 현상이 반복된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의 의견이다. 처음에는 뉴스거리로 막연히 남들 이야기로만 다가왔던 코로나가 이제는 가까운 주변의 부담스러운 동반자가 되는 요즈음 생활고 차원의 현실적 고민이 생겼다. 코로나 확산에 따른 전반적인 경기침체와 연동된 노동시장의 지각변동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한 언텍(비대면, untact)이 그동안의 기술발전과 맞물려 우리들의 취업과 일자리에 큰 위협과 변화로 다가 온 것이다.

먼저, 노동 유랑민 (labor nomad)의 증가다. 제러미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에서 말했듯이 첨단 기술과 정보화 사회, 경영 혁신 등이 인간의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 우리의 경우 정부가 그동안 지속해서 추진해 왔던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정책들이 그 하방 경직성과 시장현실과의 괴리로 기업들은 신규인력의 채용보다는 기계화와 자동화로 로봇과 인공지능을 대체 활용함으로써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무인화·자동화 속도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언뜻 보기에 코로나19가 직접적 원인처럼 보이지만 이전부터 진행되던 거대한 트렌드가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촉발된 거라고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노동방식은 바뀌고 일자리가 감소해도 노동자는 여전히 계속 일해야 한다. 극히 일부 엘리트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놀고 싶을 때 노는’ 자유로운 노동의 당초 의미는 퇴색되고, 오히려 한 가지 일로서는 생활이 어려워 두세 가지 일을 감당해야 하는 노동자가 늘어난 것이다. 소위 노동 유랑민(labor nomad) 시대가 된 것이다. 특히 생계형 노동자, 단순 하위직일수록 각 개인은 한 업무 한 회사에 집중이 아니라 여러 회사 여러 업무를 하는 ‘멀티잡’이 보편화하였다. 회사도 정규직 고용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임시직과 비정규직, 프리랜서, 긱워커 비중을 늘림으로써, 지금까지 논란의 중심이었던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도 그 의미가 대폭 축소되거나 퇴색되고 있다. 공공기관이나 일부 대기업에서 논란거리일 뿐 대부분 중소기업에서는 코로나로 일거에 잠잠해졌다.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되는 노동자는 공유경제의 플랫폼 노동자들이다. 배달의 민족이 4조8000억에 매각되고, 쿠팡, 요기요가 천문학적인 성장을 거듭해도 혜택은 그들 몇몇 창업자와 오너들의 잔치일 뿐이다. 현장에서 악전고투 그림자 노동을 하는 ‘유령노동자’들은 오히려 기업이 성장할수록 더욱 노동 상황이 악화하는 역설을 낳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J. 래브넬는 그의 최근 저서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에서 이용료만 내면 안 되는 게 없는 공유경제 환상의 희생자가 되는 ‘유령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모순을 비판했다. 필요한 시점에만 임시 노동자를 호출하는 방식의 적시 일정 관리, 잠재적인 대량 정리해고를 채택하고 있는 공유경제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최적의 기술 혁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은 온갖 차별과 성희롱, 언어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고, 노조를 결성할 권리가 없으며, 업무상 재해에 대한 보상요구조차 할 수 없다. 예컨대 공유경제 시스템 기업 입장에서는 아무런 책임이나 의무도 지지 않고 1만 명을 10~15분간 고용할 수 있지만, 그 일이 끝나면 그 1만 명 노동자는 “증발”한다. 혁신이라는 미명하에, 착취가 만연했던 고대 노예노동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두 번째는 노동의 유연성이 높아질 것이다. 노동 유랑민 (labor nomad)의 증가로 값싼 노동력이 풍부하게 된 유휴 노동시장은 저임금의 노동력을 쉽게 구매할 수 있고, 코로나19 같은 재난을 핑계로 쉽게 해고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기업이 주도권을 가지는 ‘노동의 유연성’이 높아진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OECD 36개국 중 노동 유연성이 34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즉,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 노조와의 협의, 고용노동부 장관의 허가 등 까다로운 조건으로 사실상 정리해고가 불가능한 구조다. 여기에다 최저임금, 호봉제까지 겹쳐 고용 기간이 길어질수록 생산성이 떨어지고 신규채용을 꺼리게 되어 전체적으로 청년실업률이 올라가는 악순환 구조다. 하지만 이런 인위적인 버팀목도 결국은 시장의 거대한 흐름을 이겨내지는 못할 것이다. 예컨대, 최저임금을 맞출 수 없는 영세 회사와 적은 돈이라도 벌어야만 하는 화급한 노동자가 만나면 시간제,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최저임금법을 상호합의로 피해 가는 웃지 못할 비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합법적인 비합법’이 상호합의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AI 등 기술진보와 비대면 고용이 보편화함으로써 노동시장도 집단적 관계 중심에서 개별적 관계로 전환되어 집단 노동운동도 점차 힘을 잃어가게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채용시장의 양극화가 심화할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화상 면접이나 AI 신기술이 접목된 온라인 면접 등 채용방식이 발 빠르게 언텍으로 전환 확산하고 있다. 이미 국민은행은 온라인 코딩 시험, 카카오는 수시채용, 현대자동차는 온라인 시험을 진행한 바 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다른 한편으로 실력이 검증된 경력자 위주의 채용이나 우대로 단순직과 전문직, 미숙자와 숙련자로 인력의 차별화를 추구할 것이다. 따라서, 초보자, 업무 미숙자는 고숙련자, 전문가 문턱 넘기가 종전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다.

대면으로 능력을 검증하던 방식에서 비대면으로 걸러내는 방식은 회사 사용자의 편의 추구로 취업기회의 불평등을 초래할 것이다. 신입직원일 경우 여전히 스펙, 학벌 우수자를 선호하게 될 것이고, 실력 미검증으로 인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하여 하이앤드 기술 분야는 사전 실기테스트나 단위 프로젝트 테스트를 통한 실력 위주의 인재 채용을 선호하고, 관리직은 스펙이나 학벌, 평판이 여전히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이다.

외주화가 일반화되면서 조직구조가 단순화하고 최소 핵심인력으로 조직 운영을 하게 됨에 따라 충성도 높은 인재에 대하여 관심이 높아지고 패밀리적, 폐쇄적 조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따라서 공개채용이나 블라인드 면접보다는 헤드헌팅이나 소개를 통한 맞춤식 채용이 증가할 것이다. 모순적이게도 언텍시대 취업자는 다양한 인맥 관리의 필요성이 종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나아가 아빠 찬스, 도제 방식의 직의 대물림 등이 더욱 심화하여 불공정이 굳어질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노동시장이 정치나 사회에서 그토록 부르짖고 있는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과는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사무공간의 축소.소멸과 도심 이탈화 현상이다. 종전까지 대면 위주의 사회에서는 대면의 편의성, 시간 절약, 회사 브랜드 등을 고려하여 사무실은 교통 요지의 도심에 있는 것이 대세였고 당연시되어 왔다. 하지만 인터넷 발달과 언텍으로 회사 출퇴근 빈도가 급격히 감소하거나 불필요해짐에 따라 회사는 고임대료의 도심 대형사무실을 유지할 필요성이 점차 없어지고 있다. 종전같이 직원들에게 일대일 개인 공간을 제공할 필요성이 없어지고 복잡한 도심에 위치할 이유도 없어진 것이다. 직원도 상사의 직접적인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노트북으로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형태로 근무가 가능해졌다. 그동안 비대면 시스템 구축의 비용과 리스크 부담으로 시행을 꺼려왔던 기업들도 최근 강제적인 재택근무 실시로 의도치 않은 실험을 하게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이런 흐름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점차 사무실 공간은 줄이게 될 것이고 도심을 탈피하여 저비용의 근교 사무실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이미 이런 시장의 흐름에 반응하여 자율출퇴근, 원격근무를 근간으로 스마트워크(100% 재택근무)를 지향하는 회사가 한국에서도 많이 생겨났다. 쿠팡, 토스, 프로토파이, 센트비, DeepSearch, 스켈터랩스, 센드버드, 호갱노노, 29CM 등이다. 에이치비스미스는 사무실도 출퇴근도 없다.

다섯 번째는 성과 위주의 관리평가 강화다. 지금까지 성과 평가에 따른 인센티브 시스템은 많은 부작용을 낳아왔다. 평가의 정확성과 직원 만족도 간의 괴리 때문이다. 상식처럼 되어 있는 평가 등급제와 보상의 연계는 극소수 우수인재에 대한 동기부여와 보상에는 기여했으나, 전체 조직의 성과에는 효과적이지 못했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각 기업이 그동안 개별과 집단 소통의 강화로 조직 전체의 성과를 내고자 했던 노력이 이번 코로나 언텍으로 한꺼번에 리셋되었다. 대면 시대의 중요한 덕목의 하나였던 성실보다는 보이는 결과의 수치와 성과로만 회사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된 것이다.

‘성과’는 원격지, 보이지 않는 인력의 근무실적을 평가하고 판단하기 위한 유일한 물증이다. 언텍으로 인해 일정 관리, 적시 공정관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보니 단계별 산출물 점검과 성과 위주의 관리기능이 더욱더 촘촘해지고 강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결과적으로는 극소수 엘리트, 숙련자만 살아남는 승자독식의 노동시장이 되기 쉬운 구조가 될 것이다. 비대면 성과에 익숙해진 회사(사용자)는 결과를 내는 노동자에 익숙하게 되어 신규 채용으로 겪게 될 새로운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다. 따라서, 능력자는 계속 성장하고 약자는 계속 저임금의 단순직 바닥을 헤매야 하는 불평등의 극단적 양극화 구조가 심화할 것이다. 프로젝트별 업무분장과 보상이 일반화됨에 따라 보상체계도 결과에 대한 성과급이 증가할 것이고, 시간 경과에 따른 호봉제는 자연스럽게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종합하면, 향후 비대면 AI 시대는 개인 사고의 편향화, 사회의 양극화로 조직 통합이 점점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졌다. 언텍으로 인해 친구나 사람을 가려 만나는 것이 보편화하므로 좋아하는 친구, 취향에 맞는 정보만 접하게 되어 자기중심적으로 빠지게 된 결과다. 각 개인은 정보의 편식으로 정보의 편향성, 기울어진 의사결정을 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고, 기업들은 소규모 충성조직으로 패밀리적, 폐쇄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회사가 늘어날 것이다. 노동시장에서도 성과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성향이 커짐에 따라 직장 분위기가 한층 더 건조해질 것이다.

이런 어두운 전망속에 다행스럽게도 역설은 있다. 아무리 비대면을 강조하고 코로나가 무섭다 해도 만날 사람은 꼭 직접 만나 소통한다는 점이다. 우리 삶에서 대면은 여전히 중요한 소통의 축이고, 사람은 천성적으로 스킨십을 해야 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과거 점염병들이 그랬던 것처럼 머잖은 장래 코로나는 반드시 퇴치될 것이고 우리는 ‘새로운 소통’으로 일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늘 그랬듯, 동이 트기 전이 가장 어두웠다.
 

칼럼니스트 최송목

■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기술지도사/신지식인

■저서 <사장의 품격>, <사장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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