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의 제자들, “이태석 신부처럼 살고 싶어서”
한센병 마을, 전쟁터 등 의료선교 통해 스승 기려
영화 ‘부활’ 구수환 감독, 사명 간직한 저널리스트

남수단 톤즈에서 의료 봉사 활동 중이던 고 이태석 신부의 모습. 사진 이태석재단
남수단 톤즈에서 의료 봉사 활동 중이던 고 이태석 신부의 모습. 사진 이태석재단

코로나 19로 떠들썩한 가운데 지난 7월 9일 개봉한 영화 <부활>이 눈길을 끈다. 이 영화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헌신하다 마흔 여덟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故)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의 후속 편이다. 

“30년 넘게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PD로 일하면서 사회 부조리를 파헤쳤지만 어느 순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한계를 절감했어요. 그런데 10년 전 <울지마 톤즈>와 이번에 <부활>을 제작하면서 깨달았어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은 분노가 아닌 사랑이라는 사실을요.”
부활은 이태석 발자취를 더듬고, 그로 인해 파생된 결과를 통해 누군가의 희생이 희망으로 싹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전작인 울지마 톤즈가 남수단의 톤즈에서 10년 가까이 의료 봉사 활동을 펼치다 2010년 암투병 중 숨진 고(故)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그렸다면, 후속편인 부활은 그가 뿌린 결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구수환감독은 100여편의 시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낸 베테랑으로, 이태선 신부의 일대기와 그 후를 담을 영화 ‘울지마 톤즈’ 와 ‘부활’ 을 연출했다. 사진 천주교부산교구
구수환감독은 100여편의 시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낸 베테랑으로, 이태선 신부의 일대기와 그 후를 담을 영화 ‘울지마 톤즈’ 와 ‘부활’ 을 연출했다. 사진 천주교부산교구

이태석 신부의 삶과 그 이후를 녹여낸 2개의 영화를 연출한 구수환(62) 감독은 KBS PD출신으로 <추적 60분>과 <일요스페셜> 등 100여편의 시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구 감독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가 2007년 처음 톤즈를 찾았을 때 60명이 정원인 교실에서 180명이 모여 공부하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그는 “꿈이 뭐냐”고 물었고, 90%가 “의사가 되겠다”고 답했다. 오직 이유는 한 가지 “이태석 신부처럼 살고 싶어서”였다. 

이태석 신부는 2001년부터 의료 봉사를 목적으로 남수단에 발을 내딛었다. 배움터를 잃은 학생을 위해 학교와 기숙사를 짓고 공부도 가르쳤던 이 신부는 한센병이 창궐하고 전쟁이 끊이지 않는 남수단을 찾은 최초의 의사였다.

이태석 신부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구 감독은 “한 사람의 삶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진리를 체득했다”며 “수십 년째 이어진 남수단의 내전이 잠시 멈췄던 유일한 순간이 올해 초다. 바로 이 신부의 선종 10주기였다”고 말했다.

구 감독은 이태석 신부가 퍼뜨린 선행이 어떻게 뿌리내렸을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영화 부활을 기획했다. 이 신부와 함께 지낸 톤즈의 아이들이 성장한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구수환 감독과 의료진으로 성장해 스승읠 발자취를 따르는 이태석 신부의 제자들. 사진 이태석재단 
구수환 감독과 의료진으로 성장해 스승읠 발자취를 따르는 이태석 신부의 제자들. 사진 이태석재단 

10대였던 아이들은 성년이 되었고, 그중 45명은 남수단에서 의과대학을 다니거나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으로 건너와 학업을 이어간존 마옌 루벤 씨는 인제대 의과대학에서 수학 후 최근 ‘제84회 의사국가시험’ 합격증을 받았다. 의사가 된 이 신부의 제자 중 일부는 이 신부의 뒤를 이어 남수단의 한센병 환자가 모여 사는 마을로 의료 봉사를 떠났다. 

구 감독은 이 신부의 제자들이 한센인을 만나면 “어디가 아프냐”고 확인하기 전에 먼저 손을 꼭 잡고 쓰다듬는 모습을 인상깊게 봤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이 신부가 보여준 모습이 었기 때문이다. 

이 신부의 영향으로  전쟁터를 다니며 아동 인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하는 언론인으로 성장한 제자도 있다. 그 역시 이 신부의 영향으로 선택한 길이었다. 영화 제목을 영화제목으로 처음 구상했던 것은 <위 아 닥터 이태석(우리는 이태석)>이었지만 부활로 정한 사연도 여기에 있다. 
구 감독은 “지금처럼 이 신부가 남긴 사랑과 희생 정신이 이어진다면 그게 바로 부활이 아닐까 싶었다”며 “울지마 톤즈는 슬픔의 눈물이지만, 부활은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그의 인생에 있어 영화는 전환점이 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사명을 간직한 저널리스트’로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개선해 나갈수 있길 바란다.
“영화를 만드는 내내 행복했던 이유도 그 사명을 지켜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돕겠다는 각오로 PD 일을 시작했던 그 순간의 각오를 되새김질하게 됐죠.”

구 감독은  “1만명의 관객 중 이 신부의 뜻을 따라 기부나 도움을 주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며 “선한 영향력이 더 크게 퍼져 나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그는 4∼5년 뒤에 의대를 졸업하는 이 신부의 제자들이 얼마나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갔을지 확인하는 차기작을 구상 중이다.

소비자경제신문 김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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