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준강간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성범죄를 강력히 처벌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준강간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성범죄를 강력히 처벌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5년간 법원의 수수료 인지 수입액이 1조 5,000억원에 달해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재판청구권과 충돌한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특히 행정소송과 공익소송, 징벌적 손해배상소송 등은 국민이 국가를 상대로 침해된 권리를 구제받기 위해 제기하는 것인 만큼, 인지 첨부는 무상으로 해야한다는 것이 시민단체의 중론이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수수료의 기능을 초과하는 과다한 인지액을 납부하라는 것은 소송당사자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면서 “소송의 심급이 높아질수록 인지액도 늘어나, 수수료의 성격을 넘어서는 현행의 ‘다액 인지제도’를 개선해 ‘인지정액제’ 또는 ‘인지액 상한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사사건 1조3,737억원으로 가장 많아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법원연감 등을 참조해 최근 5년간 전국 법원의 각 사건별 인지 수입액 현황과 현행 인지제도의 문제점을 조사했다. 이번 조사는 법률소비자들의 인지 첨부로 인한 경제적인 부담을 줄이고 법원으로부터 법률 해석과 판단을 통해 법원의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데 의의가 있다.

조사에 따르면, 2015~2019년 5년간 전국 법원의 인지수입 총액은 1조4,823억3,082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 보면 2019년 3,116억9,148만원, 2018년 2,837억9,289만원, 2017년 2,852억5,049만원, 2016년 2,945억3,275만원, 2015년 3,070억6,320만원으로 2015년 3천억원이 넘었다가 그 이후 점차 줄어들다가 2019년 다시 3천억원대로 상승했다.

법원별로 보면, 지방법원이 1조997억3,958만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고등법원 2,616억4,228만원, 대법원 1,209억4,895만원으로 나타났다.

사건별로 보면 민사사건이 1조3,737억5,708만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행정사건 748억8,721만원, 가사사건 311억8,660만원, 특허사건 21억4,382만원, 가족관계등록 비송사건 7억9,987만원, 형사·소년사건 5억6,594만원 등으로 나타났다.

고액의 인지대, 국민의 재판청구권 침해

‘인지대’는 법원이 제공하는 일정한 역무에 대한 수수료의 성격인데, 소송의 남용을 막기 위한 명목으로 고액의 인지대를 부과하는 것은 법률소비자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현재 민사소송 등 인지법과 인지대 규칙은 재판청구권과 인지제도 법익과의 균형을 상실해 소송 당사자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고 보고 있다.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공정하게 해소할 수 있는 사법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사회발전의 핵심적인 기반임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인지액이 사실상 사법제도를 활용하는데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심급이 올라갈수록 인지액이 배가되는 것은 경제적 여력이 없는 국민들에게는 더욱 법적 불균형을 초래한다. 현재 항소장에는 통상인지액의 1.5배, 상고장에는 2배의 인지대를 첨부해야 한다. 심급에 따라 인지액이 달라지도록 한 목적의 정당성을 가질 수는 있으나, 상소제도를 둔 이상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킴으로써 상소를 제한하는 것은 재판청구권의 보장과 역행한다는 것. 고액의 인지액을 부담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상소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행정·공익소송,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무상주의’ 바람직

국민이 국가를 상대로 하는 행정소송, 소수 약자를 위한 공익소송,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경우 인지 첨부를 무상으로 해야한다고 시민단체는 지적했다.

최근 5년간 행정소송으로 국민들이 법원에 납부한 첨부인지액 중 본안사건이 737억3,197만원, 신청사건이 1억1,528만원, 기타사건이 3995만원으로 행정소송 인지수입 총액이 748억8,721만원에 이르고 있다.

행정소송의 인지제도는 민사소송의 인지규정을 준용함으로 인해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은 그 성격이 다름에도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행정소송은 국가가 우월적 지위에서 행하는 법 집행에 대해 국민이 국가를 상대로 침해된 권리를 구제받기 위하여 제기하는 것인 만큼 대등한 사인 간의 분쟁인 민사소송과는 그 성격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약자 및 소수자의 권익 보호, 국가권력으로부터 침해된 시민의 권리구제 등을 통해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개선하고 국가권력의 남용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공익소송의 인지액도 소송의 연동제에 따라 계산되는 것도 공익소송에 반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가해자가 고의로 피해자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악의를 품고 비난받아 마땅한 불법행위를 한 경우, 가해자를 징벌하기 위해 실제 손해보다 훨씬 많은 금액(실제 손해액의 3배 내지 그 이상의 배수)을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따라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하면서 납부할 인지액의 상한을 두지 않고 있는 현행 정책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취지를 살리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인지정액제’ ‘인지상한제’ 도입 등 인지법 개선해야

소비자주권시민회의 박순장 팀장은 “행정사건은 국가의 우월적 지위에서 행하는 법 집행에 대해 국민이 국가를 상대로 침해된 권리를 구제받기 위하여 제기하는 것인 만큼, 인지첨부는 무상으로 해야 한다”면서 “행정소송의 목적, 기능, 행정재판을 받을 권리의 실질적인 보장, 민사소송과의 본질적인 차이 등에 비춰 행정소송의 경우 재판무상주의를 채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팀장은 “수수료의 기능을 초과하는 과다한 인지액의 납부를 요구하는 것은 소송당사자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현행 다액의 인지제도를 개선해 ‘인지정액제’ 또는 ‘인지액 상한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면서 “과도한 인지액으로 국민의 청구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시급히 민사소송 등의 인지법을 개정할 것”을 촉구했다.

소비자경제신문 노정명 기자

저작권자 © 소비자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