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의원 임기 시작 40일 만에 법안발의 건수가 1,676건(7월 8일 기준)에 이른다. 정부 발의를 제외한 의원들의 법안발의 건수만 따지면 1,543건이다. 20대 국회는 같은 기간(2016년 7월 8일까지) 전체 784건이었다. 이중 의원들의 법안발의 건수는 675건이다. 20대 국회와 비교했을 때 2.3배에 달하는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역대 법안 접수 현황은 17대 7,489건, 18대 1만 3,913건, 19대 1만 7,822건, 20대 2만 4,141건이다. 이대로라면 21대 국회 법안은 3만 건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과연 내실 있는 법안이 발의됐을까?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이 법안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했을까?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40일 동안 무려 62건의 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송옥주 의원은 57건, 박용진 의원은 52건을 발의했다.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법안을 베끼기 한 것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20대 국회에서 폐기된 법안만 1만 5,002건이다. 역대 법안 처리율은 17대 국회 57.7%, 18대 국회 54%, 19대 44.9%, 20대 국회 37.8% 수준이다. 갈수록 처리율이 떨어지고 있다. 물론 20대 국회에서 폐기된 법안 중에는 여야간 합의를 이루지 못해 폐기된 의미있는 법안도 있다. 하지만 법률안을 조항별로 쪼개 건수 쌓기식 발의가 이루어지고, 일부 부실하고, 위헌적인 요소가 포함돼 있는 법률안, 실현가능성 없는 과도한 예산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법안들이 다시 발의됐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국회의원들은 다양한 이익집단의 민원에 의해 국가이익, 국민이익에 반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입법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집값 폭등으로 내집 마련이 어려워지고, 주거불안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기득권층에 유리한 보유세 완화를 추진하는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이 중복발의 돼 있다.

현안 이슈인 코로나19에 대한 「감염병예방및관리에관한법률」 개정안도 우후죽순 발의됐다. 방역지침위반 과태료부과, 유급휴가지원, 취약계층지원, 자영업·소상공인 지원, 감염병 치료 병상확대·의약품비축·치료경비지원 등 내용적으로 큰 차이 없고, 재정투입도 필요한 법안들을 20명이 넘는 의원들이 발의했다. 일부 의원은 동일 법안의 조항을 여러 개로 쪼개서 건수쌓기식으로 발의하는 경우도 있다.

내실 있는 법안발의를 위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법률안이 국민들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국민들이 법안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해야 한다. 국민들 역시 선거 때만 관심을 갖는 유권자를 넘어 법률안 발의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정치소비자가 돼야 한다. 동료 국회의원 10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법안을 발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의원들의 선심성 법안, 특수이익을 위한 법안들을 차단하기는 어렵다. 법안의 투명성과 절차적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치소비자들이 나서야 한다.

국회에도 정부와 마찬가지로 법률안이 성안되기 전에 사전적인 ‘입법예고제’를 도입하는 것이 시급하다. 국회 입법예고제는 1994년 도입됐지만 활용되지 못했다. 2012년 2월 「국회 입법예고에 관한 규칙」이 제정되면서 제도적으로 안착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국회법 제58조 제6항에는 “위원회는 제정법률안 및 전부개정법률안에 대하여는 공청회 또는 청문회를 개최하여야 한다. 다만 위원회의 의결로 이를 생략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 입법예고에 관한 규칙」 제2조는 “위원장은 위원회로 회부된 법률안에 대하여 「국회법」 제82조의2 제1항 본문에 따라 간사와 협의하여 지체없이 입법예고를 하여야 한다. 다만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간사와 협의하여 그 시기를 따로 정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위원회에 회부된 법률안에 대한 입법예고만 규정하고 있고, 실질적으로 공청회나 청문회를 개최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법안이 아닌 이상 국민들의 의견수렴 절차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입법과정에서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의원들에게 법안에 대한 연구를 진행토록 할 것이다. 사회적 환경변화 속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입법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정당의 정책조율에도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다. 규제심사, 입법예고 등을 피해 국회의원을 통해 우회청부입법에 나서는 정부의 폐단도 극복할 수 있다. 소비자주권 실현을 위한 「집단소송법」과 같은 중요한 법안들이 조속히 통과될 수 있는 여론도 형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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