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하고 싶은 일 맘껏 하면서 살라” 기죽어 있거나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격려 삼아 하는 말이다. 정말 좋은 말이다. 그런 말 들으면 없던 용기도 불끈 생긴다. 그러나 듣기 좋은 말이라고 다 좋은 말은 아닌 듯싶다. 그리고 이런 말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성공확률이 있을까? 워런 버핏은 “능력의 범위(Circle of Competence)를 알고, 그 안에 머물러라. 범위의 크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범위의 경계를 아는 것이다”고 말했다. 능력 안에 놓인 것은 훌륭하게 해낼 수 있겠지만 능력 밖의 것은 잘 모르거나, 일부분밖에 모른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재능이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능력 밖에서 행복을 추구하면 헛발질만 하다가 짧은 인생이 끝날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먼저 주어진 일을 잘해야 하고, 다음은 해야 할 일을 잘해야 한다. 맨 마지막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가장 어리석고 최악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거나 힘(능력)은 없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 때나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요즈음 자기 욕구 표현이 자유로워지고 각자 개성을 존중하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자녀나 후배들에게 아무 조건도 달지 않고 ‘하고 싶은 거 맘껏 하고 살아라’라고 방임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시대적인 유행어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현실적인 조언은 아닌 듯하다. 이것은 마치 준비되지도 않은 아마추어 댄서를 무대복만 입혀 카네기홀에 내보내는 것과 같은 방임이다. 엄청난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전조다. 하고 싶다고 해서 열정과 용기만으로 실현 가능성이나 조건을 따지지 않고 내달리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욕구와 표현의 자유는 어느 정도 여건이 갖추어졌을 때, 힘이 있을 때 하는 것이고 그래야 결과도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다. 힘이 부족했을 때 약자의 용기는 죽음이거나 한 번 도전해 봤다는 기록만 남을 뿐이다. 시작할 때 잠시 행복할 뿐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 과거 총도 제대로 쏠 줄 모르면서 전장으로 내몰렸던 학도병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들은 단지 “용감했다”는 전장의 희생자들로 무명용사비에서 기억될 뿐 더 영웅으로 구체화하지 않는다. 영웅은 전공(戰功)이 있어야 하고 가능하다면 살아남아야 빛을 발한다. 한여름 밤 형광등으로 몰려드는 불나방에게는 형광등 그림자 밑으로 수북이 쌓여가는 주검의 무더기가 보이지 않는다.

“패가 나쁘면 죽어라” 포커 게임에서 흔히 하는 말이다. 자기 패만 보고 게임에 몰두하는 것은 하수다. 모든 일은 상대적이고 상황이 좋지 않으면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무모함과 모험은 구분되어야 한다. 무모함은 생각 없이 용기 하나로만 질러는 것이고, 모험은 철저한 기획으로 다져진 준비와 노력이 어우러지는 것이다.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힘을 기르고 확률을 높인 뒤 내질러야 한다. 그래야 고생도 덜하고 성공 가능성도 높다. 패가 나쁜데도 질러는 것은 모험이 아니라 무모함이다. 바둑에서 세고취화(勢孤取和)라는 말이 있다. 형세가 외로우면 화평을 취하라는 뜻이다. 자칫 비겁하고 약하고 졸장부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내가 약할 때는 넘쳐나는 열정과 희망을 잠시 눌러줘야 한다. 욕망을 추스르고 세상과 화평을 취해야 한다. 자세를 낮추고 시간을 벌면서 힘을 길러야 한다.

TV 오락 프로그램에서 흔히 몇 번의 작은 연습 끝에 ‘도전!’이라 외치고 시도하는 걸 자주 봤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도전은 힘을 기르고 난 뒤 집중하여 한 번에 끝내야 한다. 실력도, 준비도 되지 않으면서 경험 쌓자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흔히 있다. 괜히 힘만 낭비하고 쉬 지쳐 의욕을 잃게 될 뿐 아니라 그 실패로 인해 그나마 남아있던 작은 신뢰조차도 소진하고 만다.

프로는 경험을 쌓기 위해 무대에 서는 사람이 아니다.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무대에 서는 사람이다. 프로는 연습하는 사람이 아니라 뭔가를 증명하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참 친하지만 일은 같이하고 싶지 않아”라던가, “저 사람이 한 일은 반드시 다시 확인해 봐야 해”라는 등의 평을 듣는다면 그는 프로가 아니다. “저 사람 성격은 좀 까칠해도 일 처리 하나는 깔끔해, 믿을 수 있어”라는 평을 듣는다면 그는 진정한 프로다. 일 처리의 완결성, 무결성이 프로의 조건이다. 그러자면 불필요한 동작이 최소화되어야 하고 일도양단해야 한다. 이 세상에 경험 쌓으라고 자기 소중한 자산이나 프로젝트를 당신에게 맡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특히 사장, 리더는 크건 작건 식솔들을 거느리는 책임 있는 프로다. 그런 프로가 경험 쌓자고 어설프게 무대에 올라선다면 따르는 직원들은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은 연습장이 아니라 실전장이다. 미리 시뮬레이션할 수 없는 곳이다. 모든 기회는 단 한 번이고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은 내가 넘어져서 나를 실패 교훈 삼아 타산지석으로 ‘남들이’ 성공하는 것을 바라보는 그 심정이다. 이때 손뼉 쳐줘야 하는 건 알겠는데 솔직히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 게 우리네 속마음이다. 예컨대, 1:1 데스매치(death match) 프로그램에서 승자를 향해 억지 미소와 박수를 치고 있는 패자만큼 비참한 심경도 없을 것이다. 실패했다가 다시 성공하면 스릴 있는 일이지만 한 번 실패하면 되돌리기가 어렵고 일어서기도 힘든 게 인생길이다. 그래서 실패하지 말아야 하며 실패한다 해도, 가능하면 작은 실패로 그치는 게 좋다. 무슨 일이든 시작할 때는 확률 높은 구도를 짜고 움직이는 프로가 되어야 한다. 최고가 되는 바람과 꿈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아무 때나 자기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하면 다칠 확률이 높고, 최고는커녕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바닥에서 인생을 마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최송목 ■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기술지도사/신지식인 ■저서 <사장의 품격>, <사장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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