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사는 지난 6월 18일 정부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공정거래위원회와의 협의를 통해 2021년 1월 1일 0시부로 소멸되는 항공마일리지의 사용 기한을 1년 연장하기로 했다. 그러므로 2010년에 소비자들이 항공마일리지는 2021년에 소멸되지 않고 소멸 기간을 1년 연장하여 2022년 1월 1일 0시부로 소멸될 예정이다.

언뜻 보기에는 항공사들의 소비자들을 배려한 시혜적 조치로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지난 1월 이후 급속히 확산된 코로나19로 인해 각 국은 여행객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입국이 가능하더라도 입국 후 약 2주간의 의무적인 자가 격리 기간을 거치도록 함으로써 정상적인 여행 자체가 불가능 해진 상황이었다. 2021년으로 예정된 마일리지 소멸을 피하기 위해 미리 예약한 여행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 상황에서 항공사가 취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이었을까. 특별한 조치 없이 버려 둔 채 소비자들의 재산인 마일리지를 소멸시키는 것과 미봉책이라도 세워서 소비자들의 불만을 잠재울 것 등 둘 중 하나.

물론 항공사는 후자를 선택했다. 가뜩이나 항공마일리지 소진처도 제한 된 마당에 항공기 운항은 물론이고 각 국에서 여행객의 입국까지 금지하는데 마일리지까지 소멸 시킨다면 그 비난은 고스란히 항공사로 쏟아질게 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지난 1월 이후 한국소비자원에 항공관련 피해 신고 사례가 전년도에 비해 4배나 폭증했다고 한다. 결국 항공편의 결항과 취소 등 출국은 물론이고 입국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 주무부처가 나서서 중재한 끝에 두 항공사가 마지못해 소비자들의 요구를 수용 한 것이다.

천재지변에 준하는 상황에 의해 항공사들이 등 떠밀리듯 2010년도에 적립된 항공마일리지 소멸을 1년 연장하였다고는 하지만 항공마일리지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한다. 아직도 항공사들은 항공마일리지를 소비자의 재산이 아닌 항공사가 승객들에게 베풀어주는 보너스 상품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아울러 일부 외국 항공사의 마일리지 사용 기한과 비교해서 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두 항공사가 예로 든 항공사는 물론 대부분의 외국 항공사의 경우 소멸 시효는 정해 놨으되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통해 연장 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가령 두 국적항공사가 자주 예를 들고 있는 루프트한자의 경우 국내 카드사의 카드를 사용하는 승객의 경우 소멸 시효가 없다. 하지만 항공사는 이런 내용은 전혀 밝히지 않는다. 또한 대부분의 선진국 국적항공기가 기부나 양도를 할 수 있도록 했으며, 부족한 마일리지를 현금으로 구입 할 수도 있다. 마일리지를 통한 항공권 구매 시도 자체가 항공마일리지의 시효를 연장하는 새로운 기산점이 되기도 한다. 또한 여유좌석에 한해서만 사용 할 수 국내 항공사와는 달리 외국 항공사의 경우 마일리지를 통해 전 좌석 구매를 할 수 있다. 이렇듯 다양한 소진처와 사용 수단을 확보 한 외국 항공사와의 두 국적 항공사는 비교자체가 되지 않는다.

마일리지는 단순히 항공권 구입을 통해서만 적립되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경제적 활동을 통해 마일리지를 적립하고 있다. 우리가 항공사가 아닌 특정 카드사의 카드를 사용하거나 은행에서 송금을 할 때, 그리고 환전시에도 마일리지는 적립된다. 이러한 마일리지를 항공사는 은행이나 카드사, 그리고 기타 제휴사에 현금을 받고 판매하고 있다. 본인들은 현금을 받고 마일리지를 거래 하면서, 또 다른 경제주체인 소비자가 다양한 경제적 활동을 통해 적립한 마일리지를 항공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소비자들은 항공마일리지를 장기적 계획을 위해 적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증이 장기화 일상화 되고 있음으로 해서 장기적인 계획조차 세울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코로나19 감염증 치료제나 백신이 나오지 않는 한 어느 나라든 상황에 따라 입국을 금지하거나 여행을 금지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소비자 개인이 적립한 마일리지의 사용 가능성 역시 불확실해질 수밖에 없다.

필자가 소속한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2018년 5월부터 항공마일리지를 소비자의 재산으로 인정하고 소비자에게 지극히 불리하게 되어있는 불공정한 약관을 개정하도록 하는 항공마일리지 약관 개선운동을 해 왔다. 작년에는 불공정한 약관에 근거해서 마일리지가 소멸된 7명의 소비자를 원고로 해서 항공마일리지 지급청구소송을 남부지방법원에 제기 했고 다음달 7월 17일 선고를 남겨두고 있다. 또한 조만간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약관심사청구를 할 예정이다. 이러한 법적 제도적 공방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적립한 마일리지는 매년 소멸된다.

코로나19 감염증의 장기화, 일상화는 과거와 달리 여행의 불확실성을 높였다. 또한 코로나19감염증에 대한 각 나라의 대처 또한 불확실 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적립한 항공마일리지의 소멸 기한을 정해놓고 운용 한다는 것은 현실을 무시 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반증이다. 올해와 같은 미봉책으로 소비자들의 요구를 담아낼 수 없다. 코로나19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는 다르다. 마일리지 사용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만큼 소멸시효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맞다. 코로나19 이후 시대에 맞는 항공사의 태도 변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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